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4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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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영국에서 '서프러제트'로 불리는 전투적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끈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여성참정권 문제를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냈고, 남성과 동일한 한 표를 갖는 우리 시대 '여성'의 모습을 최초로 빚어냈다고 평가받는다.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내는 전략에 대해 현재 한국사회에 유효한 참조점을 제공하는 책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차별받는 사람들이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고자 한다면 선한 권력자의 호의에 기대서는 안 되며, 직접 나서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 억압과 차별을 상기시키며,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왜 종종 과격한 전략을 펴는지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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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1부 전투파의 탄생 1장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안됐어’ 2장 빈민구호소의 여성과 아이들 3장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합니다 4장 서프러제트가 왔다 2부 4년간의 비폭력 투쟁 1장 벌금을 낼 바에야 감옥행을 2장 온 도시가 우리와 함께하다 3장 법을 만드는 사람 4장 정치범으로 대우하라 5장 단식 투쟁과 ‘병원 처치’ 6장 자유당도 우리 편이 아니라면 7장 암흑의 금요일 8장 투표권이 없다면 인구조사도 없다 3부 여성 혁명 1장 가장 전통적인 시위 방법 2장 누구의 음모인가? 3장 ‘그렇다면, 제가 선동하겠습니다’ 4장 재산권에 맞선 인간의 권리 5장 1913년 4월 2일의 재판 6장 고양이와 쥐 7장 여성에겐 상원도 하원도 없기에 8장 어떻게 사람들을 살해하는 정부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9장 네 가지 해결책 옮긴이 후기 연보

출판사 제공 책 소개

★ 《타임》 지 선정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 ★ 미국 CNN 선정 ‘세계 역사를 바꾼 여성 7인’ ★ 영국 BBC 선정 ‘100명의 위대한 영국인’ 27위 ★ 스코티시위도스 선정 ‘지난 20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위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싸움에 전부를 걸었던 서프러제트 운동가들의 실제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우리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세라 개브런 (영화 <서프러제트> 감독) “우리는 전투 속에서 평화를 꿈꾼다” 인류의 절반을 혁명가로 만든 여성운동의 ‘대모’ 천대받던 사람들이 이기는 세상을 만들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서프러제트’(suffragette)로 불리는 전투적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끈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이 100년 만에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되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여성참정권 문제를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냈고, 남성과 동일한 한 표를 갖는 우리 시대 ‘여성’의 모습을 최초로 빚어냈다고 평가받는다. 싸우는 여성들의 승전보와 같은 이 책은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내는 전략에 대해 현재 한국사회에 유효한 참조점을 제공한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차별받는 사람들이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고자 한다면 선한 권력자의 호의에 기대서는 안 되며, 직접 나서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 억압과 차별을 상기시키며,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왜 종종 과격한 전략을 펴는지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인류의 절반이 자유롭지 못할 때, 진정한 평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여성이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1910년대까지도 영국 여성들은 정당에 가입할 수는 있지만 투표는 할 수 없는 기이한 신분이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보수당이든 진보당이든 노동당이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해 일을 하면서도 정작 그들을 의원으로 뽑거나 스스로 의원이 될 수는 없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가지려면 법이 바뀌어야 했다. 1872년에 결성된 전국여성참정권협회(National Society for Women’s Suffrage) 등 기존의 운동가들은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참정권법안을 발의해줄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들을 설득하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의원들은 자신이 여성들에게 공감하는 입장이며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할 뿐, 법안을 발의하는 이는 없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인간이라는 가족의 절반인 여성이 이 세상에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면 진정한 평화는 존재할 수 없”(18쪽)다는 명분을 가지고,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 여성이 자유를 획득함으로써 인류의 다른 절반을 구하는 것”(343쪽)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오랫동안 아무 진척이 없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팽크허스트는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합(Women’s Social Political Union)을 창설해 여성참정권 획득이라는 단 한 가지 목적 아래 “여성 노동자부터 영국 왕족과 인도의 공주에 이르는, 계급과 인종을 망라”(473쪽)한 여성 결집체를 만들었다. 창설 후 첫 4년 동안 이들은 집회와 선전활동을 벌이고, 공청회에 참석해 의회를 압박하고, 위선적인 의원을 겨냥한 낙선운동을 펴며 싸워나갔다. “여성은 정치권력이 없더라도, 남성에게 실질적인 힘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런 영향력은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았습니다. 의원들은 자신들이 단지 유권자들에 대한 책임만 질 뿐 여성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 그래도 우리는 이 운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의 명예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성 조상들이 그랬듯이, 이 세상을 지금보다는 여성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73~174쪽) “빈민구호소에서 만난 모든 여성과 아이들이 나를 가르쳤습니다” 국가가 버린 여성과 아이들이 탄생시킨 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여성참정권의 중요성을 더욱 확신하고 운동에 더욱 헌신하게 된 배경에는 빈민구제위원으로 일한 경험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참정권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자유당은 여성도 공적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했고, 그에 따라 많은 여성이 빈민구제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지자체에서 무임금으로 봉직했다. 빈민구제위원회의 유일한 여성 위원으로 일하는 동안 팽크허스트는 남자들이 만든 세상의 비참함과 불행을 여성이 고스란히 떠안는 모습을 아프게 확인했고, 암담한 여성의 정치적 현실을 더욱 절감했다. 주로 남편과 아이를 위해 평생 헌신하다 남편 사후 무일푼이 된 여성들과 하녀로 일하다 강제로 임신하게 된 소녀들이 구호소에 왔다. 구호소에서는 음식 배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어린아이들은 계절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한 채 장시간 고되게 일하고 있었다. 특히 임신한 소녀들은 해산 직전까지 일을 해야 했으며, 해산 후 2주가 지나면 아기를 데리고 갈 곳도 없이 구호소를 떠나든지 아기와 생이별을 하든지 해야 했다. 아기를 다른 곳에 보낼 경우, 법은 아기 아버지가 20파운드만 그곳에 내면 아기를 맡아 키우는 “아기농부”(53쪽)는 감독을 받지 않아도 되게끔 되어 있었다. 감독받지 않는 곳의 아기들은 쉽게 죽어갔고, ‘아기농부’는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돈을 챙길 수 있었다.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법률이 개정되어야 했지만, 투표권이 없는 여성들만이 이런 상황을 문제로 여겼다. 여성들은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빈곤과 폭력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작은 법 조항 하나를 바꾸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팽크허스트는 여성에게 투표권이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빈민구호소에서 만난 모든 여성이 나를 교육시켰다.”(54쪽) “유리창을 깨면서 싸울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이루어냈습니다” 왜 ‘집 안의 천사들’은 돌을 집어들어야만 했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이끄는 여성사회정치연합은 1908년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수상의 자유당 내각이 들어선 후, 운동 전략을 바꿔 전투적 전술을 채택했다. 여성들은 그동안 가능한 모든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여성참정권을 주장했는데도 남성 정치인들에게서 아무런 응답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대신 경찰에 체포당해 투옥되는 일이 반복되자 이제 운동을 아예 그만두거나 계속해서 행동하거나 “두 가지 선택 사항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시점이 왔다”(158쪽)고 느꼈다. 여성들이 집회를 열고 경찰에게 진압되는 과정에서 두 여성이 돌을 던져 수상 관저 창문을 깬 것을 기폭제 삼아 여성사회정치연합은 자신들이 ‘전투파’임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연일 공공기관과 상점 창문이 깨졌고, 편지가 가득한 우체통이 불에 타곤 했다. 팽크허스트는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인간의 정치적 진보는 언제나 폭력과 재산 파괴 행위와 더불어서만 가능했기 때문”(276쪽)에 불가피하게 이런 전술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돌을 던지는 것이 더 효과적인데, 왜 여성들이 의회 광장에서 매를 맞고 욕을 먹어야 합니까? 우리는 수년 동안 계속된 모욕과 공격을 인내심을 갖고 견뎠습니다. 우리 여성들의 건강은 손상되었고,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우리 몸을 다치면서 싸울 때보다 유리창을 깨면서 싸울 때 더 많은 진보를 이뤄냈습니다. 결국, 여성의 삶이나 여성의 건강이나 여성의 몸뚱이가 유리창보다 더 귀중하지 않은가요?”(274~275쪽) 실제로 여성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할 효과적인 ‘무기’는커녕, 반격을 막아낼 ‘보호장구’도 갖지 못했다. 맨손으로 정부와 진압경찰에 맞서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단식투쟁으로 목소리를 내고, 고문에 가까운 강제급식을 당해 여성들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사회정치연합 회원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은 여성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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