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과 명성은 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집중되는 것일까?
1956년에 발표된 책이라서 글 속에서 논의되는 인물이나 사건들이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벼이 볼 책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견해가 분명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라이트 밀스가 주장하는 바와 사회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지금도 그리 퇴색되지 않았다. 이 책이 고전으로 불리며 미국에서 사회학 서적으로 드물게 지금도 많이 읽히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라이트 밀스가 말하는 파워 엘리트는 군부와 경제와 정치의 지휘부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로 권력이 집중되고 있고, 이들이 계급의식이나 이해관계의 일치를 통해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영구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반 국민들은 자신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결정에 휘둘리며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이 밀스의 주장이다. 굳이 지휘부를 차지한 사람만을 파워 엘리트라고 볼 필요도 없다. 그 기준을 크게 낮추면 불평등이 심화되는 우리 사회에 유익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1920년대만 해도 미국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돌아갔다. 경제는 소도시 중심으로 또 소기업가 중심으로 돌아갔고, 정치에서는 의원들이 의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민의를 반영할 수 있었다. 이때는 작은 단위들 사이에 권력이 분산되었으며, 권력의 균형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권력 집중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매스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비롯하여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크게 일어나면서 1950년대 들어서는 모든 것이 확 바뀌었다.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권력의 ‘전국화’ 현상이 나타났다.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기업들 대신에 전국 중심의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했다. 군부에도 그 못지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냉전이 끝없이 전개될 듯 보이면서 경제를 포함한 모든 것이 전쟁 체제로 돌아갔다. 그 결과 군부가 파워 엘리트의 맏형이 될 기세를 보이게 되었다. 정치 쪽에서도 의회의 권력이 크게 약해지고 행정부의 권력이 막강해졌다. 국방부 장관 같은 중요한 자리를 기업 출신이 차지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밀스가 이 책에서 던지는 물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의 현실이 이론에서만큼 실제로 민주적인 국가가 맞느냐는 것이다.
밀스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권력은 경제와 정치와 군사 영역에 있었다. 한때 중요했던 종교와 교육과 가족제도는 국가권력의 핵심에 서기는커녕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경제와 군사와 정치 영역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부와 군대와 기업이 현대생활의 형태를 형성해 나가면, 가족과 교회와 학교가 그 형태에 적응해가는 형국이었다. 더 나아가 3개의 중요 영역들 사이에 상호단결이 이뤄지면서 권력 집중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여기에는 그들만의 계급의식도 작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부와 권력과 명성이 대물림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우리의 현실을 보도록 하자. 밀스의 책이 출간되고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에도 밀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적용될 것 같다. 고전의 힘이 느껴진다.
지금 한국은 이론적으로 보면 민주국가이다. 정당이 존재하고 삼권분립이 유지되고 자유선거가 치러지고 거기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선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도 국민이 실제로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 계층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인 양 경제적 구속을 전혀 받지 않고 사는데 반해 대다수가 생활고로 힘들어 한다면 그 주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청문회가 열려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적어도 청문회의 대상이 된 인물들을 기준으로 볼 때는 비리나 부적절한 행태의 도가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또 국민들 대부분이 불황으로 신음하고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허덕이는데도 유독 공직자들만은 재산을 불리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면 많은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그들의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보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물론 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지금과 같은 세상을 계속 이어가겠다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을 어기지 않는 한 도를 넘은 축재도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누구 할 것 없이 국민을 앞세우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또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정의를 외치면서도 부의 분배 등에 나타나는 이런 극단적인 불평등을 바로잡겠다고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식인들도 침묵하고 정치인들도 침묵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도 라이트 밀스가 말하는 파워 엘리트에 속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엘리트들이 공공심과 의무감을 앞세울 것 같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미덕에 앞서서 이기심과 그 사람의 몸에 밴 습성이 먼저 작용하게 되어 있다. 어지간한 사명감으로 노력하지 않고는 심리적으론 당연히 그렇게 된다.
밀스가 책을 발표할 당시 미국 상하원의 의원들 거의 전부가 상류층 출신이었다. 아마 그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국민들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하기 힘든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일반 국민들은 정말 난감해진다. 무엇인가를 하려 해도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 밀스의 표현을 빌리면, 일반 국민은 ‘정치인에 아첨하는 행위’인 선거가 열릴 때에만 주권자로 떠받들어지지만 평상시에는 엘리트들에게 조종만 당할 뿐이다. 그런데도 국민들 사이에 공중(公衆)이 대중(大衆)으로 바뀌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라이트 밀스는 사회의 불평등을 그나마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가 제시하는 기회의 구조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