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뜨거운 오늘의 철학자 지젝이 쓴 가장 통렬한 메시지
슬라보예 지젝은 한국에 번역서가 이미 30권이 넘게 소개된 익숙한 철학자이지만, 그가 최근에 화제가 된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자멸을 통렬하게 지적한 월가 시위의 연설 덕분이다. 그는 연설에서 월가 시위가 “그때 우리 정말 대단했지”라는 식의 추억으로만 남게 될 것을 우려하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저항해나갈 것을, 원하고 욕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위험한’ 주장을 할 뿐 아니라 그것을 ‘곧 행동으로 옮기는’ 가장 뜨거운 오늘의 철학자 지젝이 9.11테러와 관련해서 쓴 논문 다섯 편을 엮은 책이다. 9.11테러라는 사건 너머 직시해야 할 세계화 자본주의와 미국 패권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지난 2002년 이미 한국에 소개되었던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L(Verso, 2002)을 저본으로 하여 전면 재번역한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균열 속, 아직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지젝은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통해 9.11테러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진짜 현실’에 대해 말한다. 9.11테러 이후 우리는 다분히 미국적 입장을 반영한 ‘악의 축’이니 ‘무한한 정의’니 하는 말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테러리즘’에 ‘이슬람’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하지만 지젝은 그것을 ‘놓친 기회’였다고 말한다. 우리가 9.11테러를 통해 진정으로 읽어내야 했던 것은 승자 독식의 안온한 자본주의 체제(그는 이것을 매트릭스에 비유하였다)의 균열 그 자체이다. 지젝이 보기에 9.11테러는 우리의 ‘안온한 삶’을 깨뜨리는 ‘악’이 아니었다. 마치 19세기 산업사회의 몰락을 드러내는 ‘타이타닉호’의 침몰처럼,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자기파괴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지젝의 말처럼 “9월 11일, 미국은 자신이 그 일부로 속해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것을 잡지 않았”던 것이다.
지젝이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 담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당신은 지금의 안전하지만 통제되는 삶에서 한걸음 밖으로 빠져나올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자본주의 매트릭스의 안온한 삶에 머물면서 ’호모 서케르‘나 ’최후의 인간‘으로 살아가겠는가?’ 지젝은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독자에게 빨간 알약을 건네면서 그것을 삼키고 밖으로 걸어나와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라고 권한다.
‘지젝 읽기’ 전도사 이현우의 정확한 번역
이 책을 번역한 이현우와 김희진은 지젝의 다른 책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의 공동 번역자이기도 하다. 특히 이현우는 평소 ‘지젝 읽기’의 전도사로 평소 지젝 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해온 학자이자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하다. 이현우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자신이 가진 게 많다고 믿는 ‘대한민국 1%’는 지젝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할까? 바로 “‘이대로는 곤란하다!’라는 절박감에 더하여 ‘제대로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감에까지 시달리며 뭔가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애정을 가진 번역자의 작업 덕분에 이 책은 지젝이 자주 쓰는 복잡한 용어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며, 그것이 최대한 한국어에 근접하게 번역되는 행운을 누렸다. 또 이현우는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의 해제인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하이브리드 총서 7)을 연이어 출간하는데, 기존의 ‘지젝’ 독자뿐 아니라 처음 지젝 읽기를 시도하려는 독자들의 여정에 편안한 입문서로도 활용될 만한 책이다.
새로운 사유의 힘, 자음과모음 뉴아카이브 총서
자음과모음은 한국 내 젊고 의욕 있는 인문학자들을 발굴해 경계 간 학문하기, 새로운 장르 창출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하이브리드 총서’를 기획·출판하고 있으며, 정통 학술서를 표방하는 ‘뉴아카이브 총서’를 통해 동서를 넘나드는 통찰, 사유의 힘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