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최고의 여성 화가’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최고의 화가’ 중 하나입니다.”
[출간 의의]
20세기 미국 현대미술계를 뒤흔든 불굴의 거장
꽃이 아닌 뿌리가 되고자 했던 화가, 조지아 오키프
조지아 오키프(1887-1986)는 미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독자적이며 독창적인 존재로 꼽힌다. 화가로서 긴 세월 동안 활동하며 수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고 독보적인 양식을 구축했으며, 자신의 독특한 예술관에 충실했다. 이와 같은 성과와 명성에 힘입어 그녀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연 최초의 여성 화가,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갖는 영예를 누린 최초의 여성 화가, 미술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여성 화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세계 미술계의 주변부에서만 논의되고 다루어졌다.
그러나 이 책 『조지아 오키프』는 미국 현대미술사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성큼 들어온 오키프의 작품 세계와 예술관을 집중적으로 조망한다. 그간 오키프를 논의할 때면 오키프보다 크게 다루어졌던 개인사나 스티글리츠와의 스캔들 대신 화가 오키프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오키프와 그녀의 작품에 정통한 큐레이터이자 미술사가인 저자는 오키프가 오랜 시간 되풀이해서 그렸던 꽃, 동물 뼈, 화실 근처의 모습, 이를테면 조지 호수, 뉴욕, 최종적으로 뉴멕시코의 풍광을 포괄적이면서 명석하게 분석해 낸다. 또한 오키프가 남긴 글과 말을 그녀에 대한 평가들과 균형 있게 다루어 오키프의 작품 세계 전후는 물론 그녀의 마음속까지 살필 기회를 제공한다.
[내용 소개]
“나를 ‘최고의 여성 화가’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최고의 화가’ 중 하나입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1946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여성 미술가 최초로 단독 회고전을 열었다. 1986년에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미국 뉴멕시코 샌타페이에 역시 여성 화가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갖는 영예도 누렸다. 그리고 2014년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미술품 경매에서 그녀의 작품인 〈독말풀〉이 무려 4천 440만 달러(약 495억 원)에 낙찰되어 여성 미술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술사라는 분야가 철저하게 ‘남성’ 거장들 위주로 서술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일찍이 1930-1940년대부터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지아 오키프는 예외적인 존재라 할 만하다. 게다가 ‘여성’ 화가 개인을 다룬 책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은 단연 눈에 띈다. 그녀는 장장 70년 동안 회화에서부터 소묘, 조소에 이르기까지 수천 점을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리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세계 미술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떠오른 미국 모더니즘 미술계에서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개척자로 자리 잡았다.
“나는 그림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놔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살아 있을 때든 세상을 떠나서든 작품보다도 20세기 초 뉴욕 아방가르드 예술계를 이끌었던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1864-1946)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파란만장한 사생활이 먼저 도마에 오르기 십상이었다. 그녀는 스티글리츠의 어린 정부며 모델이자 나중에는 아내로 온갖 풍상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작품을 그렸고, 스티글리츠 사후에는 뉴멕시코의 거친 서부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들어 나갔다.
오키프는 일생 ‘언어로는 예술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다’는 신념을 힘주어 말했다. 그런 그녀를 대신해서 스티글리츠를 시작으로 여러 평론가와 기자들이 오키프의 그림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중에서도 오키프가 “꽃과 과일을 통해 자기를 그린다”며 그녀의 그림을 에로틱하다고 한 스티글리츠의 말은 이후의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살아생전 오키프는 수긍하지 않았다. “에로티시즘이라!…, 사람들은 내 마음속에 들어와 보지도 않고 그런 것을 찾아냈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남긴 진짜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키프의 말을 좇아 ‘널리 알려진’ 개인사에는 말을 아끼고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했다. 대평원의 작은 마을 출신 소녀가 가세가 기울어 가던 중에 삽화가와 임시 교사로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고군분투했던 미술 수업기, 이후 뉴욕과 조지 호수를 거쳐 마침내 뉴멕시코에 정착해 그림을 그리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발자취를 차근하게 따라간다. 그러면서 그녀가 거쳐 갔던 장소마다 이정표가 되었던 주요 작품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설명한다. 여기에 미국 모더니즘 미술과 미국의 정체성 형성과 같은 보다 복잡하고 넓은 맥락에서 오키프의 작품을 보는, 비교적 새로운 연구 성과까지 포함시켰다.
“나는 내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키프는 꽃, 짐승의 뼈, 조개껍데기, 작업실 근처인 조지 호수, 뉴욕, 그리고 뉴멕시코 아비키우의 풍경을 수없이 반복하여 그림으로써 유별날 정도로 일관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하나의 연작이 여러 해 또는 수십 년씩 계속되어 수십 개의 연작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머문 장소, 대상의 모습에서 일부를 택해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꽃을 보지 않아요. 제대로. 꽃은 너무 작고, 우리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내가 느끼는 꽃을 크게 그려서 사람들이 놀라서 한참 동안 바라보게 하겠다고. 무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저자는 오키프가 긴 시간을 두고 오랫동안 반복해서 그렸던 풍경과 꽃, 뼈 등 연작의 변화를 끈기 있게 추적한다. 특히 가족과 친구, 동료들과 주고받은 방대한 서신을 비롯하여 오키프의 글과 말을 통해 그 본질을 통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