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하는 공동체

조르조 아감벤
1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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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가장 왕성한 후계자인 아감벤의 여섯 번째 책. ‘호모 사케르’ 연작을 포함한 일련의 저작들이 정치철학적인 관점에서 현대의 인간 삶/생명이 처한 주권의 아포리아적 상황을 규명하려는 비평이론서에 가깝다면, 『도래하는 공동체』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삶의 형태/형식을 존재론의 관점에서 정식화하는 책이다. 전자의 저서들에서 부정성/수동성의 형태로 암시되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 내지는 새로운 삶의 형식이 오히려 출발이 되는 저서에서 긍정성/적극성의 형태로 명시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이후의 다른 저서에서 방사되던 사유의 물줄기에서 거슬러 올라 시원에서 다시 재사유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부호' 잇는 독보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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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목차

임의적 008 고성소로부터 012 예 018 자리 잡음 024 개체화의 원리 030 아죠 038 습성 044 악마적 050 바틀비 054 만회불가능한 060 윤리 064 딤(DIM) 스타킹 068 후광 076 가명 084 계급 없이 088 외부 094 동명이의 098 셰키나 108 톈안먼 116 단상 만회불가능한 것 122 2001년판 후기 어둠의 구원 148 옮긴이의 말 153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벤야민의 가장 왕성한 후계자인 아감벤, 그의 정치철학의 시원과 만나다 “이 작은 책은 지성적 영혼의 천국, 파라디수스 아니마이 인텔리겐티스라 불린다Dit buchelin heizit ein paradis der fornuftigin sele, paradisus animae intelligentis”라는, 마치 신비스런 신탁神託과도 같은 울림을 지닌 말로 시작되는 조르조 아감벤의 여섯 번째 책 『도래하는 공동체』. 1990년에 출간된 이래 그저 풍문으로만 회자되던 이 책이 드디어 한국어로 옮겨져 선보이게 되었다. 이미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오늘의 세계에서 새로운 정치적 사유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준거가 되는 사상가 아감벤에게 이 책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아감벤에게 있어(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학과 정치철학은 분리될 수 있거나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 『도래하는 공동체』는 그가 본격적인 정치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처음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개의 함축적인 사유의 단상들로 이루어진 이 작은 책은 한마디로 이후 왕성하게 전개되어온 그의 정치철학서들을 이해하는 ‘원천’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19세기 유토피아의 정향을 거쳐 20세기의 공산주의 실험들(현실사회주의로 나타난)이 공공연한 실패로 입증된, ‘역사의 종말’이 이야기되던 바로 그 시기 우리 앞에 난데없이 도래한 이 책을 우리는 전지구화된 스펙터클―자본주의 질서가 경계영역까지 치닫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호모 사케르’ 연작을 포함한 일련의 저작들이 정치철학적인 관점에서 현대의 인간 삶/생명이 처한 주권의 아포리아적 상황을 규명하려는 비평이론서에 가깝다면, 『도래하는 공동체』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삶의 형태/형식을 존재론의 관점에서 정식화하는 책이다. 전자의 저서들에서 부정성/수동성의 형태로 암시되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 내지는 새로운 삶의 형식이 오히려 출발이 되는 저서에서 긍정성/적극성의 형태로 명시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이후의 다른 저서에서 방사되던 사유의 물줄기에서 거슬러 올라 시원에서 다시 재사유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선善이 악의 포착에 다름 아니고, 진정성과 고유성이 비진정성과 비고유성 외에 어떤 다른 내용도 갖지 않는다”는 말이 암시하듯, 자본주의 디스토피아와 다른 공동성의 유토피아는 대칭의 자리에서 평행을 이루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도래하는’ 공동체는 ‘미래의’ 유토피아로 오해되어서도 안 된다. 혁명은 자본주의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래하는 것이다. 아감벤의 유토피아는 세속화된 세계 밖에서부터 다가오는 어떤 공동체가 아니라 전적으로 세속적인 삶의 형식이며, 자본주의적 물신성의 극한인 ‘정적으로 거꾸로 뒤집힌 사회―스펙터클 시대에서 해방의 계기가 산출되는 비전이다. 마치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연상시키듯, 『도래하는 공동체』는 계시적인 섬광의 논리로 가득 차 있다. 자유로운 인류의 행복 추구가 메시아적 방향과 반대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길을 가는 어떤 힘이 반대로 향한 길에 있는 다른 힘을 촉진할 수 있는 것처럼 세속적인 것의 세속적 질서 역시 메시아적 왕국의 도래를 촉진할 수 있다.”(벤야민) “어떤 실체나 본질이 상정되지 않고 존재의 가능성 그 자체가 긍정되는 인간의 삶이 가능하게 되는 그곳”, “주권도 법도 그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삶”의 형상들이 잠언과 예언처럼 19개의 단편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 신비한 작은 책에서 새로운 공동성의 유토피아로 가는 입구에 다다르기를 바랄 뿐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산문의prose’ 안개의 땅으로 이끌다 우리는 지금의 세계의 질서와는 다른 무엇인가―새로운 공동체와 삶의 형식―가 도래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세상 끝까지 밀어붙인 이 디스토피아적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떤 최후의 공동체의 도래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구원이 도래한다면 그것은 이 어둠의 밖에서인가 내부인가. 아니면 일체의 구분과 단절을 무화시키는 경계의 포착에서인가. 모든 책은 고유한 시간을 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여기 한국어로 선보이는 조르조 아감벤의 『도래하는 공동체La comunit? che viene』는 그 책의 고유한 시간성에 어긋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90년 이탈리아어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그의 초기 저작에 속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스무 권 이상의 단행본을 내놓은 사상가가 여섯 번째로 발표한 작품으로서, 본격적인 정치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처음으로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도래하는 공동체』는 아감벤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 준 ‘호모 사케르’ 연작들이 탄생하는 정치철학 시기의 출발 선상에 있는 책이라 불러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 작가의 책들이 쓰인 순서대로 번역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오히려 드문 일이라 하더라도, 『도래하는 공동체』가 이렇게 그 뒤에 발표된 책들보다 늦게 번역된 것은, 과장하자면 마치 『자본』이 번역되고 난 뒤 『공산당 선언』이 번역되는 상황과도 같은 어떤 뒤늦은 ‘도래’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뒤늦은 도래에 힘입어 번역 독자들은 뜻밖에도, 원문의 독자들과는 다른 시간성을 경험하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아감벤의 유수의 한국어본(현재 번역된 아감벤의 저서들은 『유아기와 역사』를 제외하면 모두 『도래하는 공동체』 이후에 나온 책들이다)을 손에 쥐고 있는 우리에게는 아감벤 정치철학의 원천으로 비약해볼 수 있는 어떤 카이로스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도래하는 공동체』는 많은 것을 약속하는 책이다. 그러나 그 약속을 실현하는 책은 아니다. 즉, 『도래하는 공동체』는 제목이 암시하듯, 어떤 ‘도래하는 공동체’를 모색하고 선언하고 예고하지만, 그 ‘도래하는 공동체’의 모색과 선언과 예고는 필연적으로 아감벤의 앞으로의, 즉 도래하는 저작들에게로 계속해서 전가된다. 이런 점에서 『도래하는 공동체』는 이후 전개될 아감벤의 정치적 프로그램의 ‘모색’이자 ‘선언’이자 ‘예고’로 읽힐 수 있다. 이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이 작은 책에는 그가 그 후 집필한 큼직큼직한 저작에서 상술되고 심화될 테마들, 예컨대 잠재성, 바틀비, 사케르, 예, 삶의 형태/형식, 세속화, 자유로운 사용, 스펙터클 등이 압축적이면서도 암시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의 다수의 저서에서 기다랗고 폭넓게 방사되는 사유의 물줄기들이 『도래하는 공동체』에는 어떤 파편적인 결정 상태로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도래하는 공동체』는 이론적 비판서라기보다는 정언적 선언에 가깝다. 『호모 사케르』, 『예외 상태』와 같은 저작들이 문헌학적이면서도 정치철학적인 비판 정신에서 현대의 인간 삶/생명이 처한 주권의 아포리아적 상황을 논한다면, 『도래하는 공동체』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삶의 형태/형식을 존재론의 관점에서 정식화한다. 그렇다면 전자의 저서들에서 부정성/수동성의 형태로 암시되었던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 내지는 새로운 삶의 형태/형식은 후자의 저서에서 긍정성/적극성의 형태로 명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도래하는 공동체』가 아감벤의 정치철학적 관심이 두드러지는 저서들 가운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도래하는 공동체』는 20세기 공산주의 실험의 공공연한 실패를 목도하면서 1980년대 초 프랑스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 코뮌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던 사유의 흐름에 합류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떻게 특이성(블랑쇼와 낭시에게는 타자)들이 동일성과 전체성으로 환원되지 않으면서도 공동성을 이룰 수 있는지의 문제로 요약된다. 이러한 공동체 논의를 점화한 낭시에게 공동체가 어떤 공통된 실체를 토대로 기획될 수 있는 과제나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것의 한계를 노출하는 무위의 움직임으로 열리는 것이라면, 아감벤이 이 책에서 직접 거론하기도 하는 블랑쇼의 ‘부정의 공동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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