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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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황대권이 감옥에서 띄운 들풀 향기 가득한 생명의 고백서 1.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1985년부터 13년 2개월 동안 양심수 생활을 한 황대권의 옥중 서간 중 야생초에 관련된 것만을 골라 펴낸 것이다. 놀랍게도 이미 20년 전부터 생태학에 기반을 둔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두어왔던 저자는 아주 사소한 풀 한 포기를 제대로 바라보는 일을 통해 온전한 자기 혁명과 전혀 다르게 세상 보는 법을 일깨워 주고 있다. 국내보다는 이미 국외에서 더 많이 알려져 버린 저자는 2001년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40주년 기념 달력 1월의 인물 모델로 선정돼 살아 있는 양심으로 국제 사회에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대안사회 운동의 핵심 관심사인 생태공동체 운동의 구심 역할을 하고 있는 저자는 최근 펴낸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한겨레, 2002.8)의 필자이며 〈생태 공동체 연구 모임 www.commune.or.kr〉의 리더이기도 하다. 이 책은 80년대와 90년대의 자본과 정보의 홍수 시대에 풀꽃처럼 살아남은 양심의 현주소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는 희귀한 서간 자료이다. 또한 아직 이 땅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풀 공부와 먹거리와 볼거리와 영성 그리고 대안적 삶의 방식이 편지 속에 어우러진 가장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인 자연 이야기이다. 책에 수록된 모든 그림 역시 미대를 지망했던 저자의 솜씨로, 감옥에서 그린 그대로이다. 그토록 평화롭고 아름다운 글과 그림들이 감옥 속에서 쓰였다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 감옥에서 생태주의자로 변신한 저자 황대권은 누구인가?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1985년 어느 날, 황대권은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01년 6월 8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극이었다고 그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널리 밝혀졌지만, 그때는 이미 그가 서른이던 1985년부터 1998년 마흔 네 살이 될 때까지, 황금 같은 청춘의 13년 2개월을 징역에서 보낸 후였다. ‘내 인생을 내 의지로 내가 바꿔나갈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젊은 시절, 무기징역 선고는 날벼락 같은 것이었고 그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살아온 길과 세상의 이치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연히 교도소 벽에 도배된 가톨릭신문의 천주교 순교사를 읽고 자신 또한 분단된 국가의 희생자 또는 순교자라는 생각에,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고문을 견디다 순교한 유대철 성인의 세례명인 베드로를 우리말로 바꾸어 바우(Bau)라는 이름으로 종교 생활을 시작하였다. 60일 동안의 모진 고문과, 추가징역도 두려워하지 않고 난동을 부린 죄로 온몸과 팔마저 묶어 가두는 두 달간의 징벌방 생활로 체험한 두 번의 죽음. 당시 하염없이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노래를 부르며 기도했지만, 그는 신으로부터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이 좌절되자 그는 고정된 인격신을 넘어 모든 것에 편재한 하느님을 추구하게 되었다. 도가사상은 그런 생각의 변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사소한 물건이나 벌레, 풀 같은 존재들이 신령스런 존재, 생명을 가진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감옥 안에 야생초 화단을 만들어 100여 종에 가까운 풀들을 심어 가꾸며 징역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감옥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감옥은 더 이상 그에게 투쟁의 장소가 아니라 존재를 실현하는 곳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이후 많은 문제들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앰네스티(Amnesty)에서 지원이 들어오고 외국으로의 서신 왕래가 허락되어 영국 펜클럽 회원 자격으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마침내 1998년 오랜 영어 생활에서 풀려나 전남 영광에서 농사를 지을 때, 노르웨이 국영방송(NIR)이 찾아와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영하여 노르웨이 전역에 알려지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1999년부터 2년 동안은 유럽에 머물며 영국의 임페리얼 대학에서 생태농업을 공부하면서, 변화하는 세계의 모습과 유럽의 대안공동체들을 살펴보고 돌아왔다. 귀국 후 그는 이근행, 유정길, 정호진 목사 등과 함께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고, 2004년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과 이병철 귀농운동본부 대표를 만나며 ‘생명평화운동’에 투신한다. 그동안 <생명평화결사>에서 교육위원장, 운영위원장 등을 지냈고, 지금은 출소 후 최초의 정착지인 영광에서 <생명평화마을>을 일구고 있다. 3. 야생초는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옥중 동지 “도대체 이 몸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겨 먹었으며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그걸 관찰하게 됩니다. 저는 생태주의를 여기서 출발했습니다."(p.275) 그는 감옥에서 생태주의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한 평짜리 방안에 혼자 딱 앉아 있으면 자기 몸밖에 갖고 놀게 없다고 말하면서. 한 평짜리 방안에서 내가 우주라는 것을 깨달으면 주변의 사물이 달라 보이고, 파리도, 거미도, 모기도 내 몸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즉 내가 접하는 모든 것이 내 몸의 확장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만성 기관지염에 요통에 치통에 고생하다 몸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요법을 시작했고, 운동시간에 나가서 운동장에 난 풀들을 내 몸의 일부로 깨닫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몸을 고치기 위해 풀들을 먹기 시작하고, 관찰하면서 점점 생태주의자가 되었다. 안동을 고향이라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7년을 안동교도소에서 있으면서 운동장 한구석에 야생초 화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잡초를 도대체 왜 화단에 심어 놓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이들에게 야생초가 뿌리 뽑혀 인재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록 교도소에서 자라는 풀은 10여 종에서 20여 종을 넘지 않지만 사회참관을 하며 땅만 보며 뽑은 풀들로 가꾼 야초들은 100여 종 가까이 되었다. 심고 기른 것뿐만 아니라 일일이 ‘식물지'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자기 글을 써서 가지고 있지를 못하기 때문에 편지 형식으로 기록하여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다. 이 책의 야생초 편지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느긋하게 즐기는 데 시간을 더 쏟았을 것이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귀중한 ‘옥중 동지'가 아닐 수 없다.(p.76) 4. 야생초와 더불어 짓는 농사를 꿈꾸는 이상주의자 야생초는 ‘잘못된 곳에 난 잘못된 풀??이 아니다. 이는 인간중심적 정으로 오늘날 농사짓는 사람들의 마음이 일반적으로 이렇다고 말한다. 그래서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뽑고, 베고, 약을 치고, 태우고, 하여튼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여기서 환경오염이나 식품오염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구상에 다양한 생물종들이 현저하게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종이 약 35만여 종인데, 인간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이 약 3천여 종이라 한다. 나머지 34만 7천여 종의 식물들은 잡초라 하여 없애버리는 잘못을 인류는 지금 범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 황대권은 잡초가 아니라 야초라는 말을 쓴다. 야초는 하나하나가 모두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가치가 아직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이다. 야초가 쓸데없이 그 자리에 난 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