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 무라카미 씨에게 나다운 삶의 태도를 묻다
두 작가의 굳건한 생활 감각 들여다보기
이 책은 작가 임경선의 단단한 생활철학에 대한 이야기이자,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꼼꼼하게 쓴 산문이다. 특유의 직관과 감수성이 돋보이는 ‘관계’와 ‘태도’에 관한 꾸준한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임경선. 그녀가 “내가 글을 쓰게 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유”를 말한다.
노벨문학상 후보자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방식은 음악, 그림, 요리, 달리기 등 정말 다양하지만 여기에 임경선은 ‘작가가 말하는 나의 작가 이야기’라는 특별한 방법을 더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반듯한 생활 규칙, 임경선의 성실하고 솔직한 삶의 방식을 살펴보며 독자는 ‘나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충실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두 작가의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을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의 색다른 즐거움 중 하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은 임경선이 철저하게 실시한 ‘무라카미 씨 뒷조사’라고도 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2015년 현재까지, 책.신문.잡지.방송 등 다양한 매체의 방대한 자료를 샅샅이 살피고 그의 행적을 빈틈없이 기록했다. 일본의 도서관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자료관 등 그에 대한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들뜬 마음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최근 그녀는 트위터에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거처그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연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질문과 답을 번역해서 연재하며, 많은 국내 독자에게 환호를 받았다.) 이렇게 촘촘한 1년 반의 집필 기간을 거쳐 탄생한 이 책을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투덜거림’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고, 임경선의 재치 있는 입담까지 더해져 두 작가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임경선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북극성”이다. 그녀가 하루키를 만난 것은 교복을 입고 머리에 리본을 매고 삼각함수, 미적분과 씨름하던 일본 고등학교 재학 시절. 표지의 새빨간 색이 궁금해서 펴보았던 『노르웨이의 숲』을 부모님 몰래 매일 밤 조금씩 나눠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녀는 “그 이후 삶의 모든 슬프고 힘들고 기쁘고 먹먹했던 세월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로 위로받고 지탱하며 살아왔다”고 담담하게 털어놓으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그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작품을 써준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이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라면 그의 독자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은 그의 글을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10쪽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책을 손꼽아 기다리는 오랜 독자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를 기리며 꼼꼼하고 성실하게 책을 쓰는 일”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의 당연한 수순이라고 고백하면서.
임경선은 8년 전 출간했던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의 개정판인 이 책의 내용을 더하고 새로 쓰면서 다시 한 번 무라카미 하루키로부터 영감을 받고 삶을 돌아보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동안 쓴 책들과는 문체와 결이 다르다. 그 다름은 정말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을 조심조심 다루는 겸허한 마음과 닮아 있다”고 하며 더없이 행복한 작업이었다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독자에게 전한다.
나에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특별한 의미인 것은 그 덕분에 부족한 재능으로 글을 쓰다 막막해지면 다시 한 번 일어서서 걸어 나갈 힘을 얻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라는 인간 본연의 선의도 품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아주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10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작가
부조리한 사회의 상식에 저항하는 법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우연히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 선배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미 제국주의와 종속론을 논하던 골수 운동권 선배가 다국적기업의 명함을 건네며 한번 찾아오라고 말할 때, 열혈 데모 청년이었던 남자 동기의 핏기 가신 얼굴을 은행 창구에서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은 역시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었다. 시대가 달라지면 사람의 생각도 자의든 타의든 바뀌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변화는, 때로 인간의 무력함과 유한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쓸쓸한 감정을 느낀다.
-46쪽
임경선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여섯 살, 세계관이 형성될 무렵 일본 요코하마로 떠났다. 일본에서 3년을 지내고 한국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 이후에도 브라질 상파울루, 일본 오사카, 미국 뉴욕 등지로 열한 번의 전학을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우리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대학 초년병 여학생을 바라보던 선배들의 곤혹스러운 표정. “너, 된장찌개는 먹을 줄 아니?”라는 말로 시작된 대학 생활이었다. 모처럼 귀국한 조국에서 따돌림을 받고 싶지 않아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려서는 그저 부모님을 따라 옮겨 다녔지만, 커서는 스스로 ‘경계인의 삶’을 택했다고 말한다.
장발에 수염을 기른 아웃사이더, 무라카미 하루키의 와세다대학 시절은 그녀의 대학 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하루키가 대학을 다니던 때는 한국의 1980년대처럼 학생운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학생운동 방식에 환멸을 느꼈고 학생운동이 몰락하자마자 대기업에 서둘러 취직해버리는 운동권 학생들을 보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정의롭지 못함, 공정치 못함, 부조리함… 임경선은 그의 작품에 배어 있는 깊은 상실감과 허무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두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고독의 모습은 책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학교에 안 나간 것은 잦은 휴강과 데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에게 대학 강의는 중고교 시절의 수업만큼이나 재미가 없었다. 실망스러웠던 연극영화과 수업에 가지 않는 대신 하루키는 신주쿠로 열심히 영화를 보러 다녔다. (…)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 때면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에 처박혀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시나리오를 무차별적으로 읽으며 지냈다.
-49~50쪽
자신만의 원칙에 충실한 하루
주어진 자원으로 최고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하여
주로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오전에 하루의 집필 분량을 다 채운다. 오후에는 볼일을 보거나 운동을 하며, 해가 지면 절대 일을 하는 법이 없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맥주를 한 병 마시거나 적포도주 혹은 위스키를 조금 마시면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 주로 10시쯤 되면 잠자리에 들지만 가끔은 8시 반에 잘 때도 있다. 그리고 이 패턴은 주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222쪽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더 개인으로 설 수 있고 더 관대하게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임경선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주목한 점은 자신만의 원칙에 충실한 하루다. 상쾌한 바람을 쐬며 달리고, 빳빳하게 셔츠를 다림질하고, 생선 가게에 들러 그날의 가장 신선한 생선을 골라 심플한 식사를 한다. 체력을 기르면서 몸이 변하고, 문장에 점점 힘이 붙고 호흡이 길어지는 것을 느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작업을 “내 안의 우물에 들어갔다가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생각 속 깊이 들어가서 이야깃거리를 퍼 오는 행위에는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자원으로 최고의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라며 고독하게 운동을 하고 신체를 단련시킨다. 자신의 한계까지 시험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그로 인해 더욱 깊은 사색에 빠진다.
임경선의 방식이기도 한 이러한 건전한 생활의 신조와 사색하는 삶은 거창한 데 있다기보다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 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것’들이 세상을 간접적으로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작가는 이렇게 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