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 앞에서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작가의 투쟁기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이후 딸이자 여성, 한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 혼란스러운 애도의 과정을 다룬다. 저자 사과집은 줄곧 날카로운 시선과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세상을 바라봐온 작가다.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들과 삶을 바라봄에도 유의미한 통찰을 건넬 수 있었다. 하지만 가까운 죽음 앞에서도 그런 냉소가 가능할까.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당도한다. 작가가 10개월간의 긴 해외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 것처럼. 장례는 단 3일, 죽음을 실감하기엔 지나치게 짧고, 한 인간이 눈앞의 죽음을 버텨내기엔 긴 시간이다. 작가는 엄마와 여동생을 대신해 장례가 치러지는 3일 동안 모든 것을 도맡았다. 그러나 상주 완장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인 사촌 오빠가 찼다. 단지 그가 남자라는 이유로.
죽음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오로지 개인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모두의 삶이 공평하지 않은 듯이 애도도 마찬가지다. 작가와 아버지의 관계는 애증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온전한 슬픔’이 가능할까. 우리에게 정말 애도의 자격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겪고 있을 불안을 작가 사과집이 말한다.
때론 타인의 죽음이 나의 죽음을 깨운다
어쩌면 삶까지도
1부 ‘더 나은 죽음’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그 당시의 기록이다. 부친의 죽음을 받아들일 새도 없이 절차화된 장례를 치르며 그 속에서 느낀 불합리함이 작가 사과집만의 언어로 담겨 있다. 끌려가듯 장례를 치르는 동안 ‘세 모녀’만 남았다는 이유로 “집에 남자가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애도의 과정에서마저 철저히 소외된 것이다.
2부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모르고’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룬다. 고립된 무인도 같던 아버지의 방과 삶을 정리하며 작가는 단숨에 그의 삶과 가까워진다. 한 번도 한국을 떠나본 적 없던 아버지는 어쩌다 여권을 만들었을까? 남겨진 사람의 숙제는 그런 것이었다. 사용기한이 만료된 질문과 수없이 마주하는 일.
3부 ‘세 여자의 애도법’은 남겨진 세 모녀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다룬다. 죽음은 많은 것을 알게 해주고 삶을 재고하게 한다. 부정적으로만 여겼던 제도적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4부 ‘나의 죽음은 나의 생을 깨운다’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이후, 작가가 그려보게 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청사진을 이야기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나아가 구체적으로 죽음을 상상하며 자신의 노년을 꿈꾼다. 잘 죽기 위한 준비는 잘 살기 위한 준비와도 같다.
이렇듯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총 4장으로 나뉘며, 죽음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더불어 애도에 관한 고찰, 나아가 자신의 죽음과 삶을 탐구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에세이다.
왜 우리는 애도의 과정에 집착하는가
사람들은 삶의 경계를 매 순간 분리한다. 가까운 죽음을 경험한 이들에겐 으레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 문장을 불편히 여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와 맞닿아 있는, 내게 영향력을 가진, 나의 소중한 당신이 이젠 죽고 없는데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함께 하지 못한 식사 한 끼와 커피 한잔, 대화 한 마디가 내내 가슴에 남는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내 삶에서 처절한 고립감을 경험하게 한다. 망자를 향한 그리움이 죄책감과 미련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과정마저 애도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작가를 혼란에 빠트렸던 것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에 처절하게 실패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추억이 없는데, 홀로 남아 아버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화목하고 친근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가정들이 많지만, 어딘가 단절되어 있고 단순히 애정만으로는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을 가족과 공유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죽음의 복잡성에 관계의 복합성이 더해질 때 오는 혼란이 오로지 사과집 작가의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죽음을 겪은 사람들에겐 공감 섞인 위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예방 주사를 놓아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끝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금기시하고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죽음을 떠올림으로써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애도의 자격을 묻고, 제대로 된 애도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 처음부터 명확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사과집 작가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