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소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텍스트 힙’ 다음은 ‘사운드 힙’
경계를 넘나들며 나만의 소리 세계를 구축한 음악가들
동시대 음악가 열 명이 말하는 열 가지 소리
뮤지션 안상욱이 채집한 음악과 소리 이야기
음악가와 소리 ― 소리가 있는 장소를 찾아 떠난 소리 채집
노이즈 캔슬링이 필수인 시대다. 미국의 음악 관련 데이터베이스 기업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스트리밍 사이트에 등록되는 신규 음원은 하루에 12만 개 정도다. 음악을 잘 듣고 싶어 소리를 없애야 할 만큼 우리는 시끄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듣기 좋은 음악이 또 다른 이에게는 시끄러운 소리가 된다. 너무 많은 소리는 창작자와 청자를 모두 피로하게 한다. 음악도 소음인 요즘, 소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듣고 무슨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할까? 또는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어떻게 잘 들어야 할까?
뮤지션 안상욱은 이런 물음에 답하려고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음악가 10명을 만나 음악가와 소리에 관해, 음악가들이 내는 소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안상욱은 10대 시절 힙합을 시작해 20대에 브라질 타악기를 공부하며 인디 음악 신에서 연주하고, 크로스오버 그룹 ‘고래야’의 멤버가 돼 정규 음반을 네 장 발표하며 30여 개국에서 공연한 뒤, ‘플랑크톤 뮤직’을 설립해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전통 음악의 경계를 넓히다가,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타악기와 전자 음악, 오픈 소스 기술 등을 활용해 ‘음악하기’가 지니는 의미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뮤지션이다. 음악가들이 나눈 이야기에서는 삶을 닮은 리듬과 사람을 담은 가락이 들린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 소리란 무엇이고 음악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소음과 소리 ―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음악하기
인터뷰는 ‘음악가를 하나의 장소로 가정하는 필드 레코딩(field recording)’이라는 설정 아래 진행됐다. 어떤 소리를 채집하려고 산과 바다, 공장과 도시로 향하는 소리 채집가처럼 음악가들이 내는 소리를 좀더 풍부하게 담으려는 마음을 품은 채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뒤에는 ‘자기에게 의미 있는’ 소리를 하나씩 전달받기도 했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하임은 ‘소리를 고르는 출발부터 고유한 색깔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자기가 들어온 모든 음악, 자기 안에 있는 소리 데이터베이스가 바로 동시대성이기 때문이다.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가 추구하는 소리는 ‘정직한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솔직한 소리’다. 그런 소리에서 시대를 느끼고 악기를 연주하며 나만의 세상을 만든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소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이해동은 예술이란 지금 이 시대의 사회적 쟁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타 연주자 이태훈은 ‘어떻게든 손과 줄로 해결해 보고 싶다’면서 연주 때 노트나 화성, 리듬보다는 톤을 중요하게 고민한다고 털어놓는다. 작곡가 겸 사운드 아티스트 조은희는 함께 만나서 음악을 할 때 특정한 소리보다는 ‘서로의 소리를 듣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도 협업할 때 느껴지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동시대성을 이해하는 핵심이라는 뜻이리라. 소리의 ‘울림 자체가 좋아서’ 음악을 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남메아리는 누가 만들어 준 소리를 그냥 치기보다는 자기만의 톤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작은 어쿠스틱’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금 연주자 유홍은 서양 클래식 악기와 여러 나라 전통 악기들이 음악적 경계를 넘어 어우러질 때 나타나는 ‘조율’과 ‘어울림’이 인상 깊었다. 디제이 겸 프로듀서 정상권은 ‘음악을 많이 들어야 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디제이이니까 그런가 싶지만 모든 음악가에게 통하는 말이다. 작곡가 겸 서울대학교 교수 최우정은 음악과 소리의 경계가 없어진 지금도 ‘듣지 않는다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노이즈 캔슬링 시대에 음악이 갈 길을 고민한다. ‘소리랑 쉽게 사랑에 빠지는’ 기타 연주자 정중엽은 그래서 다양한 악기와 사운드를 즐기고 모은다.
사람과 소리 ― ‘음악하기’와 ‘음악의 소음화’ 사이
이 인터뷰집은 서문이 둘이다. 〈나에게 들리는 소리의 배경을 찾아서〉와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한 가이드〉다. ‘음조의 확장’부터 ‘사운드스케이프’를 거쳐 ‘전자 음악과 기술의 대중화’까지 서양 음악사를 관통하는 몇몇 장면을 톺아본다. ‘음악하기’와 ‘음악의 소음화’ 사이에 자리한 우리들에게 지난날 음악이 숱한 도전을 물리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온 과정을 보여 준다. 오늘날 음악가는 어느 때보다 많은 소리 재료들을 손에 쥐고 있으며 그런 재료를 사용할 다양한 기법을 안다. 따라서 아름다운 멜로디나 화성적 치밀함을 넘어 소리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핵심이다. ‘톤’, ‘울림’, ‘퀄리티’, ‘솔직함’, ‘깨끗함’ 같은 요소는 결국 음악가의 소리란 소리 ‘듣기’와 소리 ‘내기’가 결합해야 경험된다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진실로 우리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