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죽음에 맞서 미지의 세계를 정복해나가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숭고한 용기에 바치는 찬가
작가이자 비행기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의 페미나상 수상작 『야간비행』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6번으로 출간되었다. 생텍쥐페리에게 비행중의 경험은 많은 작품의 모태가 되었는데, 1931년 발표한 이 소설은 아르헨티나 야간비행 항로 개척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직원들을 단련시키고자 그들을 엄격하게 다스리는 책임자 리비에르와 밤하늘 속에서 고독과 죽음에 맞서는 조종사 파비앵의 모습을 통해, 초기 항공우편산업을 이끌던 사람들의 책임감과 용기를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이들의 강인한 의지와 숭고한 용기에 대한 한 편의 아름다운 찬가라 할 수 있다. 당시 앙드레 지드의 머리말과 함께 출간되어 문단과 독자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 미국과 영국에서 영역본이 출간되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져 생텍쥐페리에게 세계적인 작가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시인의 눈을 가진 조종사 생텍쥐페리
생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의 매력에 심취했던 그는 12세 때 앙베리외 비행장에서 첫 비행을 한 뒤 ‘엔진소리가 노랫소리로 들린다’는 감상을 담아 시를 쓰기도 했다. 스트라스부르에 주둔한 공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던 중 조종사 훈련을 받았고, 1926년 아에로포스탈의 전신인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취직해 툴루즈-세네갈 노선 우편기를 조종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아르헨티나 항공우편회사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파타고니아 노선 확장 업무를 맡았다. 또한 그해 단편소설 「비행사」를 발표하며 직업 조종사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들을 세상에 내보이기 시작했다. 항공사가 폐업한 뒤 생텍쥐페리는 시험비행사, 기자로 일하며 글쓰기에 전념한다. 특파원으로 1934년 베트남, 1935년 모스크바, 1936년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며 인간의 가치에 대해 깊이 성찰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대지』를 집필해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공군 대위로 참전했고, 휴전시에는 뉴욕으로 가 미국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행동하는 작가’의 면모를 보였다. 이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전시 조종사』 『어린 왕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944년 알제리 비행중대에 복귀한 생텍쥐페리는 P-38 라이트닝기를 타고 그르노블-안시 지역으로 혼자 정찰비행을 나갔다 지중해 연안에서 실종되었다.
비행과 문학은 생텍쥐페리를 설명하는 두 개의 큰 축이다. 그는 비행기 사고로 두개골 골절을 입기도 하고 사막에 불시착해 나흘간 물도 식량도 없이 헤맨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코 비행을 그만두지 않았다. 비행에 대한 굳은 의지와 열정은 그의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비행중의 경험과 동료들과의 유대는 그가 쓴 많은 작품의 모태가 되었다. 첫 소설 『남방우편기』에 이어 발표한 두번째 소설 『야간비행』은 아르헨티나에서 야간비행 항로 개척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작품이다. 1931년 앙드레 지드의 머리말과 함께 출간되었고, 생텍쥐페리는 이 작품으로 페미나상을 거머쥐었다. 시인의 눈을 가진 조종사 생텍쥐페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소설은 미지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의 용감한 모습을 그려내며, 초기 항공우편산업을 이끈 이들의 강인한 의지와 책임감을 특유의 시적이고 서정적인 필치로 펼쳐 보인다. 작가의 구체적 경험은 작품에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을 더하며, 이전까지 볼 수 없던 새로운 비행 소설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수시로 나타나는 위험에 맞서본 개인적 경험은 이 책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해준다. 이 책은 내가 찬탄해 마지않는 문학성을 지니고 있는데다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이 두 장점이 아주 잘 융합되어 『야간비행』을 더욱 빛나게 한다.” _앙드레 지드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불러오는 강렬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
『야간비행』은 밤중에도 다른 운송수단과의 속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항공사가 야간비행을 시작했던 초창기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전 항공 노선을 총관하는 책임자 리비에르와 밤하늘을 비행하는 조종사 파비앵의 모습이 교차되어 펼쳐지는 가운데 그 과업에 종사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면면이 생생히 드러난다. 앙드레 지드가 말하듯 그들은 모두 “열정적으로 자기가 해야 하는 일, 그 위험한 임무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임무를 완수했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한 휴식을 얻는”다.
책임자 리비에르의 모델이 된 인물은 생텍쥐페리가 항공사에서 일하던 당시 그의 상사였던 디디에 도라다. 이 인물은 『야간비행』에서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게 인간이란 “빚기 전의 밀랍덩이”에 불과해, 자신이 “이 재료에 영혼을 불어넣고 의지를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고취해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업적을 이루도록 강요한다. 그들을 엄하게 다스려 굴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뛰어넘게 만들어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불러오는 강렬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리비에르가 때로 비인간적이고 과도해 보일 만큼 엄하게 굴기는 하지만, 인정이 메마른 냉혹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다리를 건설하다 얼굴을 심하게 다친 인부를 보고서 같이 걷던 정비사에게 “인간의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 해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값진 것처럼 행동하죠.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라는 물음을 던지고, 승무원들을 떠올리며 혹여나 이 과업이 그들의 개인적인 행복을 파괴할까 마음 저려한다. 그러나 그는 총 책임자로서 자신이 단호하게 행동해야만 그들이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야간비행이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안다. 리비에르는 ‘내가 엄격하게 굴면 사고는 줄어든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비장한 의지로 마음을 다잡는다. 조종사 파비앵과 펠르랭, 감독관 로비노, 정비사, 잡역부 등은 리비에르의 지시를 따르며,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소임에 최선을 다한다. 리비에르와 그들 모두는 “투쟁의 동지”로서 서로 끈끈하게 결속되어 있다.
리비에르는 우편물을 적재한 비행기를 몰고 아순시온으로, 칠레로, 파타고니아로 떠난 조종사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그는 각 우편기의 무선사들이 보내온 전보를 꼼꼼히 확인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파타고니아로 떠났던 조종사 파비앵이 돌아오지 않고, 무선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파비앵은 비행중 뇌우와 맞닥뜨려, 어둠 속에 꼼짝없이 포위된 채 고독과 죽음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는 별들에 에워싸인 채 영원히 그곳에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 사무실에서 철야근무를 하던 직원들이 상황을 인지하고 일을 진척해나가지 못하는 와중에도, 리비에르는 다른 곳에서 온 전보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또다른 우편기의 비행을 지켜보며 다음 우편기의 출발을 준비시킨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자신의 신념에 대한 복수이자 증명이라 믿기 때문이다.
『야간비행』에서 생텍쥐페리는 나약하며 포기하고 타락하는 인간이 아닌, “강한 의지를 통해 자기초월에 이르는” 인간을 그려내 보인다. 그에게 인간의 본질이란 자신과 타자, 소명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또한 자신의 과업에 대한 책임감이다. 미지의 세계를 정복해나가는 모험가이면서 시인의 영감으로 가득한 눈을 가진 이 조종사는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별들의 신호에 언제나 귀를 기울였고, 자신의 눈에 비친 세계를 글로 옮겼다. 비행과 글쓰기, 이 두 가지 행위를 통해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비행과 글쓰기 중 하나만 선택하기란 불가능하다. 행동하는 것과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둘 모두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_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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