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서 운명을 감지하다
진실한 사랑으로 성숙해 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박경리의 『푸른 운하』는 스무 살의 꽃다운 아가씨 송은경이 사랑에 눈뜨면서 새롭게 ‘사랑’이라는 신세계를 탐험하고 개척하는 사랑이야기이다. 그러나 『푸른 운하』에 그려지는 사랑이야기는 정열에 사로잡힌 젊은이의 풋사랑을 넘어서 과연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인간 누구나 성장하면서 ‘나’가 아닌 타인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강렬한 이끌림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잃어버린 나의 반쪽을 되찾았다는 충일감은 나를 온전한 주체로 인식하게 한다. 그래서 이제 그 혹은 그녀와의 이별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된다.
자칫 진부하고 통속적으로 보일 수 있는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묻고 있는 이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60년대 초에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시각에서 보아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첫째 남녀 간의 애정 문제에 있어서 주도권을 여성인물이 쥐고 있다는 점, 둘째 남녀의 사랑이 가부장적 가정 구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애정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 셋째 상대방의 신분, 지위, 경제적인 차이 등이 애정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지 않다는 점, 넷째 남성이 그들의 지위나 완력을 사용하여 여성 인물의 사랑을 쟁취하고 있지 않다는 점, 다섯째 각 인물 사이의 애정 관계를 섣부르게 윤리적 잣대로 판단하고 있지 않다는 점 등등 시대를 앞선 사랑의 방식은 현대적 시각에서 보아도 여전히 흥미롭다. 오로지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감정과 확신, 상대방과의 교감이 사랑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고 있다는 점은 독자의 몰입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숙한 사랑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삶의 가치
이 작품에는 송은경, 이치윤과 김남식, 송은경, 이치윤과 경란, 송은경, 이치윤과 박지태와 같이 겹겹의 삼각관계를 이루며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쟁취하고자 애쓴다. 각자 사랑의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에 대한 열정이 사랑의 실마리가 되고 상대방에게 온전한 존재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목표는 공통적이다.
그 중에서도 송은경의 사랑과 김남식의 사랑방식은 성숙한 형태로 표현된다.
결별 상태이긴 하지만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삼십 대의 이치윤과 갓 스무 살이 된 은경과의 사랑은 윤리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군다나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고혹적인 매력을 지닌 이치윤의 전처 경란은 이치윤을 쉽게 놓아주지도 않고 그를 괴롭히고 있다. 여성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은 이치윤은 은경을 통해 따뜻한 모성을 발견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에 흔들리게 되지만 그녀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죄의식도 커지고, 쉽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이치윤은 용기를 내어 마음을 고백하고 이들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후 은경을 위해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을 남기고 시골로 떠난다. 은경은 포기하지 않고 치윤을 찾아나서며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킨다. 조건이나 주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순수한 은경의 사랑은 성숙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며 진정한 삶의 가치를 완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은경의 사랑만큼이나 성숙한 사랑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 김남식이다. 김남식은 자신도 은경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은경과 친구인 이치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또한 치윤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은경의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인간적인 매력도 넘치는 인물이다. 은경에게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은경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숨어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치윤과 은경 사이에 가장 껄끄러운 문제였던 경란과 치윤의 이혼도 남식의 기지로 해결되지만 생색을 내거나 드러내놓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인생의 또 다른 표현, 사랑
사랑은 삶의 중심이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인스턴트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에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진실한 사랑을 절실하게 갈구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 내게 꼭 맞는 짝을 만나지 못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은경과 남식이 보여주는 사랑의 방식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나와 그, 혹은 그녀와 완전한 합일이 아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의 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사랑이 가능해진다. 인간 존재 자체가 각자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존재인데 하나가 된다는 상상은 어불성설이다. 하나처럼 느끼고 보이는 것은 서로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상대방과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을 나에게 종속시키거나 내가 상대방에게 종속되면 동등한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스스로 상대방을 위한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자발적 희생이 아니라면 언젠가 감정적 폭발이 일어나고 관계는 깨지기 마련이다. 사랑의 전제는 자발적이면서 주체적인 두 사람의 만남이다. 조건과 계산이 배제된 순수한 존재의 교감과 이해가 진정한 사랑의 출발점이 아닐는지.
사랑의 조건과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시작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통해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질문과 깨달음은 50년 전에 쓰여진 이 소설 『푸른 운하』를 통해 거장 박경리 작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삶의 메시지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