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사상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의 가장 위대한 서사시
니체의 핵심 철학이 장쾌하고 시적인 언어로 집약된 대표작
“그대들에게 말하거니와,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인간은 자신 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이를 위한, 그러나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책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또?”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왜?”라고 묻는다면, “그래야만 한다.”라고 대답할 테고, “그럴 만한가?”라는 물음에도 역시 “얼마든지.”라고 할 것이다. 이 책은 낡은 고전을 단순히 재생산해 낸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논쟁거리를 내세워 주목을 받으려는 전략이나 오래전부터 두꺼운 해석의 외투에 겹겹이 둘러싸인 작품의 아우라를 변질시키려는 그 어떤 의도도 없다. 다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장 원문에 가깝게, 충실하게 번역해 냄으로써, 니체에 관한 현란한 해석들로 어지럼증에 휩싸인 독자들에게 하나의 정본(正本)을 마련해 주고자 했을 뿐이다.
서양철학사상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의 가장 위대한 서사시
민음사는 『차라투스트라』를 인문서도 철학서도 아닌,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의 하나로 내놓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은 문학 작품, 그중에서도 시에 해당한다. 시의 화자는 방랑하며 노래하는 춤추는 시인이다. 은둔자 차라투스트라가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인간을 위한 새로운 원칙을 찾기 위해 산에서 내려와 시장과 군중 속으로 들어가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인간의 내면에 있는 그 모든 ‘사막’들을 목격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 왕들과, 거머리와, 마술사와, 더없이 추악한 자와, 제 발로 거지가 된 자와, 그림자와, 나귀와 대화하고 축제를 벌이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는 징조를 보게 되는 이야기. 그것을 대단히 시적이고 율동적인 언어로 기록한 책이 바로 『차라투스트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세계를 새로 세우고자 하는 의지와 힘을 가진 방랑 시인이 쓴 순례기인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힘의 의지’와 ‘영원회귀’ 사상은 신의 죽음과 가치 상실에 직면한 근대 세계에 대한 니체의 처방으로, 인간의 강화와 극복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니체의 철학은 서구 형이상학의 극복이 아니라 그 정점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나 들뢰즈의 해석은 다르다. ‘영원회귀’는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 내는 실천의 반복, 즉 차이의 지속적 생산이다. 이로써 들뢰즈는 니체를 다양성과 차이의 철학자, 서구의 형이상학을 해체한 철학자로 만든다. 또한 데리다는 니체의 영원회귀의 공간을 어떤 권위도 중심도 없는 수많은 해석 놀이를 가능케 하는 무대로 해석한다. 왜 이렇게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이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차라투스트라』에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정신도 덕도 지금까지 수백 번 시도하고 수백 번 길을 잃었다. 그렇다. 인간은 하나의 시도였다. 아, 그 많은 무지와 오류가 우리의 몸이 되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헛되이 공중으로 날아간 덕을 다시 이 대지 위로 데려오라. 몸과 삶이 있는 곳으로 다시 데려오라.” 그러니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하나의 단어로 여러 가지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차라투스트라』는 궁극적으로 시가 될 수밖에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무엇을 정의하거나 규정하거나 못 박지 않는다. 반대로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운문적인 리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반복과 운맞춤을 사용한 언어유희 때문이며, 그럼으로써 그는 딱딱한 산문적 질서를 벗어나 춤추는 언어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는 것이다.
시인이자 춤추는 자인 차라투스트라의 언어가 생동하는 현장 속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을 포함해 총 4개의 부로 구성된다. 각 부는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라는 제목 아래, 장마다 주제를 압축한 소제목들이 붙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루하고 딱딱한 강연이나 설교가 아니다. 기존의 『차라투스트라』 번역서가 차라투스트라를 ‘현대인을 위한 제5의 복음서’라고 규정하거나, 독자들에게 차라투스트라를 ‘도를 깨우쳐 속세를 초월한 자’라는 인상을 주었던 것은 사실 이 책을 옮기는 과정에서 그 극적 구성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 치중한 탓일 것이다. 어쨌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책이 각각, 제1부. 방랑자 차라투스트라의 출발, 제2부. 미래의 인간인 ‘초인’을 찾아가는 여정, 제3부. ‘영원회귀’의 오솔길을 거니는 차라투스트라의 고난, 제4부. 걷고 뛰고 춤추는 독자―축제의 밤과 새로 떠오르는 태양의 극적 구성을 갖춘 4막짜리 드라마라는 점이다.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합리와 이성의 서양 철학사를 뿌리째 뽑아 버린 니체의 반란이 시작된 책. 현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철학자 니체.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나는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물을 안겨 주었다. 여기 담긴 지혜의 뜻을 왜곡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요한 가락을 똑똑히 들어야 한다.”
“가장 조용한 말이 폭풍우를 몰고 오며, 비둘기 걸음으로 오는 사상이 세계를 움직인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중에서
우리는 좀더 섬세한 귀를 가지고 이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메마르고 비틀린 채 영원히 되풀이되는 지리멸렬을 향한 악의와 분노와 적개심 때문에 스스로를 해치는 모든 이들에게 웃음과 춤과 노래를, 명랑성을, 생명을, 건강성을 선사하고자 한다. 그 스스로 광대가 되어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