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꿈을 꾼다. 오래된 미래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어떤 그림을.
고르게 가난한 나라. 그 가난이 가져다줄 삶의 평화, 그 평화의 정경을.
11년간 중등 국어교사로 재직했으며, 2012년 2월 교직을 그만두고 농업학교를 준비하던 중 밀양송전탑반대 주민의 분신 사망을 계기로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온 이계삼의 칼럼집. 『녹색평론』, 『한겨레』, 『프레시안』 등 각종 매체에서 빛나는 필치로 독자들을 감동시켰던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한 이계삼이 지난 6년여 동안 발표해 온 글들을 엮었다. 이 글들은 희망을 잃어버린 학생들 앞에서 괴로워했던 교사로서, 4년 넘게 밀양 현장을 주민들과 함께 지켜온 풀뿌리 운동가로서, 그리고 이제 모든 생명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녹색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로서 이계삼이 사회적 정의와 공생의 윤리가 사라진 이 체제에 대해 던지는 절박한 물음이자 실천적인 발언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이 시대는, 그리고 다가올 시대의 현실은 ‘풍요’인가, ‘가난’인가. 또 하나, 고르게 풍요로운 사회가 가능할 것인가, 고르게 가난한 사회가 가능할 것인가.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향한 과정에서 만난 싸움의 편린들이다. 고민하는 이들, 꿈꾸는 이들,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읽을거리라도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 시대의 불합리함과 불평등에 분노하며, 모든 생명들이 평화롭고 고르게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라면,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고통스럽고 외로운 곳으로 언제나 먼저 뛰어들었던 이계삼의 삶과 그 길에서 그가 찾아낸 구체적인 희망의 메시지에 뜨겁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몸으로 직접 살아내는 사람으로 비약하고자 했다. 그러나 5년이 되도록 나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교를 그만둔 2012년부터 밀양송전탑 투쟁에 뛰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우연과 거부할 수 없는 필연이 겹쳤다. 필연은 밀양송전탑 투쟁이 담고 있는 중요한 가치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싸움에서 만난, 이 책 곳곳에서 내가 수없이 드러내는 어르신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분들이 내게 베풀어 준 우정, 그리하여 형성된 어떤 ‘의리’일 것이다. 그것은 나를 포함하여 밀양송전탑 투쟁을 통해서 삶의 방향이 바뀐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고백하듯, 그 ‘고운 얼굴들’이 나를 지난 4년간 이 자리에 서 있게 했다. 그들은 의로움에 주리고, 지금 핍박받고 있으며,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나는 지난 4년간 열심히 살았다. 풍찬노숙으로 점철된, 때로는 어이없는 폭력과 선동에, 때로는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하였으나, 끝내 넘어서고 말았던, 패배하였으나 이미 승리한 이 싸움의 정신은 이 어르신들의 의로움, 가난한 마음들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싸움을 지나오면서 나는 결국 정치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선거에 나설 것을 청하는 존경하는 벗들의 제안을 거부해 오면서 나는 문득 ‘내 삶과 내 사회적 체모’만을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세상이 아주 가파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고 그것은 상당 부분 ‘정치의 부재’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지난 밀양송전탑 투쟁 4년 동안 나는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치만은 내 몫이 아니라며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은 의롭지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