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232p
구매 가능한 곳
별점 그래프
평균3.5(162명)
평가하기
3.5
평균 별점
(162명)
우리나라 여성이 남긴 최초의 세계일주기이다. 지금부터 90년 전 서양화가 나혜석은 20개월에 걸쳐 세계를 일주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척박했던 시절에 그렇게 오랫동안 세계를 주유한 것도 놀랍거니와, 그 궤적이 완벽히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나혜석의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고, 귀국 후에 신문과 잡지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그의 여행기를 온전히 묶어낸 책은 아직까지 출간되지 않았다. 이 책은 나혜석이 남긴 모든 기행문을 집대성해 여행 순서를 따라 구성한 것이다. 나혜석의 여행기는 근대적 개인으로 탈각해 가는 신여성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90년 전의 기록이지만 최근의 여행기라 하여도 될 만큼 모던하고 생생하다.

[9주년] 해피 젝시 데이!

젝시믹스 9주년 기념 ~80% 빅 세일

젝시믹스 · AD

별점 그래프
평균3.5(162명)

[9주년] 해피 젝시 데이!

젝시믹스 9주년 기념 ~80% 빅 세일

젝시믹스 · AD

저자/역자

코멘트

20+

목차

소비에트 러시아를 가다 9 파리에서 스위스로 45 서양 예술과 나체미 : 벨기에와 네덜란드 65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77 베를린의 그 새벽 113 이탈리아 미술을 찾아 125 도버 해협을 건너다 157 정열의 스페인행 171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187 태평양 물결이 뱃머리를 치다 215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글과 그림으로 복원한 조선 여성의 첫 세계일주 나혜석은 신여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 땅 최초의 여성 동경 유학생이자 서양화가다. 김명순과 선후를 다투는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기도 하다. 신여성들에게 세상은 거대한 벽이었다. 식민지 체제, 봉건사상, 남성중심주의라는 억압적 질서는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선각자로서의 자의식이 클수록 아픔은 배가되었다. 김명순은 정신이상자가 되어, 윤심덕은 자살로, 나혜석은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했다.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은 영원히 못 갈 것’이라며 사회를 바꾸려 했던 나혜석은 첫 사랑을 병마로 떠나보낸 뒤, ‘자기의 예술을 살리고 생활의 안정을 위하여’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한다. 하지만 사람이 되고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여전히 신기루일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꿈도 꾸어보기 어려운 세계일주 여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남편의 포상 휴가 덕이었다. 젖먹이를 포함한 세 아이가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위하여, 자식을 위하여’ 떠나기로 결정한다. 한 달여간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것으로 여정은 시작된다. 파리에 1년 2개월 머물면서 유럽 각지를 여행한다. 이어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 각지를 돌아본다. 마지막으로 하와이를 거쳐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으로 1년 9개월에 이르는 여정이 마무리된다. 실로 놀랍다. 1927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세계를 주유한 것도 놀랍거니와, 그 궤적이 완벽히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나혜석 이전에 세계일주라 이름할 만한 여행은 1883년 조선 정부가 파견한 보빙사 일행과 나혜석에 한 해 앞선 허헌 정도가 있다. 나혜석의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고, 귀국 후에 《동아일보》와 《삼천리》에 여행기가 연재되었다. 여행중 나혜석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끝없이 채찍질하고 되묻는다. 미술 기행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또 하나의 화두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여성인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 여성은 위대한 것이요, 행복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모든 물정이 여성의 지배하에 있는 것을 보았고 알았다.”(〈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나혜석의 여행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근대적 개인으로 탈각해 가는 신여성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그의 기행기는 서너 편이 단편적으로 소개되거나 전집 속에 접근도 읽기도 어려운 형태로 옹송그리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나혜석이 남긴 모든 기행문을 집대성한 것이다. 《삼천리》에 실린 글을 근간으로 삼되, 다른 매체에 발표된 새로운 내용을 찾아 보탬으로써 내용을 풍성히 하였다. 단편적인 기행문 조각까지 찾아내 박스 형태로 관련되는 부분에 수록하였다. 모두 23편의 글(2편은 신문 기사)이 이 책의 피와 살이 되었다. 또한 여행 순서대로 내용을 배열하였다. 나혜석은 여행중 그림 작업을 계속하였다. 나혜석의 그림 가운데 세계 여행과 관련되는 작품을 골라 함께 수록한다. 일부 나혜석의 그림이 아닌 작품은 기행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들이다. 이로써 90년 전 이 땅의 여성 가운데 최초로 지구를 한 바퀴 돈 나혜석의 여행은 글과 그림으로 온전히 복원되었다. [본문 일부] 시베리아 통과 만주리에서 여권 검사를 받고 기차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창망한 광야를 질주하는 동안 곳곳에 낙타의 무리, 브리야트인의 작은 집이 차창으로 보인다. 오논강을 건너니 여기서부터 궤도는 복선으로 되어 있다. 치타Chita 역에 도착하니 정오가 되었다. 소낙비가 끊임없이 쏟아지는데 러시아 농민 여자들이 머리에 붉은 수건을 쓰고 아이를 안고 서서 승객들이 나와 거니는 것을 유심히 구경하고 있다. 이곳은 농산물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 13시간 동안 가서 공장이 많은 베르흐네우딘스크에 도착하였다. 지금부터 유명한 바이칼호 호반으로 기차는 질주한다. 물은 언제 보던지 반갑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친근한 맛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하물며 망막한 대평야에 있는 바이칼 호수의 경색이랴. 지리해 못 견디던 승객은 차창에 모여 섰다.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sk에 이르려 할 때 반가운 것은 송림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교회 첨탑이었다. 시베리아의 아테네라고 하는 톰스크와 정치경제 중심지인 노보시비르스크를 지나 옴스크에 도착하였다. 이 부근에는 쓰러진 오두막집과 부서진 차량이 많이 있어 혁명 당시 참극의 자취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흙빛이 점점 흑색으로 변하여가고, 식물 파는 여자들의 복장이 차차 깨끗해진다. 여기는 스베르들로프스크*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가 비참한 최후를 마친 곳이니, 니콜라이 일족은 죽기 전에 이 부근을 소요하였을 것이다. 지평선과 푸른 하늘이 맞닿은 황망한 들판에 푸른 잔디가 끝없이 깔려 있고, 비단실로 수놓은 듯한 흰 은방울꽃과 붉은 장미꽃이 섞여 있었다. 뭉툭 잘린 자작나무 고목, 한숨에 뻗쳐오른 적송은 무한히 많다. 흰빛 검은빛이 섞인 얼룩소 떼는 목을 늘여 한가스럽다. 이곳이 겨울이 되어 백설이 희디 흰 대평야에서 시베리아인이 썰매를 타고 질주할 것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로라 자작나무 삼림 위에는 석양이 냉랭했다. 온 하늘빗이 황색이 되었다가 진홍색으로 바뀌더니 청회색으로 변한다. 하늘은 확실히 둥근 형상이 보이고, 밤낮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하늘은 거울같이 투명하고 어지러이 빛난다. 그리고 거기에는 갖은 형상이 다 보였다. 이것이 우리가 부르던 오로라다. 우리는 익히 알던 노래 〈오로라〉를 불렀다. 갈까 보다 말까 보다 오로라의 아래로 러시아는 북쪽 나라 끝이 없어라 서쪽 하늘엔 석양이 타고 동쪽 하늘엔 밤이 샌다 종소리 들리누나 중천으로부터 오려니 너무 밝고 가려니 어둡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반짝해 섰거라, 헌 마차여 쉬어라, 백마여 내일 갈길이 없는 바 아니나 나는 나는 뜬 수풀 바람 부는 그대로 흐르고 흘러서 한없이 흘러 낮에는 길 걷고 밤엔 밤새껏 춤추어 말년엔 어디서 끝을 마치든 어느 곳에 이르면 하의를 넓게 껴입고 붉은 수건을 머리에 써 늘어뜨린 집단농장 여자들의 무리가 늘어서 있고, 어느 곳에 이르면 몽골인의 무리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이 서 있다. 정거장마다 그곳 농민 여자들이 계란, 우유, 새끼돼지 훈제를 들고 판매점에서 여객에게 사가기를 청하고, 소녀들은 들판에 피어 있는 향기 높은 꽃 다발을 가지고 여객에게 권하는 특수한 정취를 맛보게 된다. 기차 보이가 갖다 주는 꽃을 먹고 남은 통조림 통에 꽂아놓고, 구매한 음식을 탁자 위에 벌여놓고 부부가 마주앉아 먹을 때, 우리 살림살이는 풍부하였고 재미스러웠다. 모스크바에 가까이 다가가자 농촌은 온통 감자로 깔렸다. 선로 주변에는 걸인이 많고, 정거장 대합실 바닥에는 병자, 노인, 어린이, 부녀들이 신음하고, 울고, 졸고, 혹은 두 팔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거나 담요를 두르고 바랑을 옆에 끼고 있는 참상이니, 러시아 혁명의 여파가 이러할 줄 어찌 가히 상상하였으랴. 러시아라면 혁명을 연상하고 혁명이라면 러시아를 기억할 만큼, 시베리아를 통과할 때는 무엇인지 모르게 피비린내 공기가 충만하였다. 모스크바 CCCP 옛 러시아 제국의 수도는 페테르부르크였지만, 1917년 대혁명이 있은 후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 공화국은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다. 모스크바는 지리상 위치로 보더라도 서구와 동아시아 나라를 이

이 작품이 담긴 컬렉션

13
  • 데이터 출처
  • 서비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처리방침
  • 회사 안내
  • © 2024 by WATCHA,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