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나는 왜 쓰는가
1
8시 45분 단원고에서
당신들의 평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
과속 사회의 희생양
나의 깃발
부치지 못한 편지
혹독하게 자유로운
무지개를 보려면
강가의 사람들
도라지, 백두산, 민주화 들
좋은 ‘시설’은 없다
박원순 표 매연 굴뚝
2
벗바리
당신처럼
어떤 세대
최옥란의 유서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재난을 묻다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앎은 앓음이다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밤
선감도의 원혼들
시뻘게진 눈알
서울로 7017 위에서
3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어차피 깨진 꿈
세상 끝의 사랑
다시 봄 마주하기
끝나지 않은 대추리
작지만 확실한 승리
다정한 언니의 시간
버튼에 대한 감각
어떤 말들의 해방
그렇게 기림비가 된다
엄마와 딸의 거리
타인의 상처를 바라보는 법
박준경의 길
4
아무도 없었다
어떤 졸업식
대결
늦은 애도
꽃동네 없는 세상
엄청나게 멀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유재석, 김연아, 그리고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 기록
동물적인, 너무나 동물적인
그들이 본 것
고통을 기록하는 마음
그냥 사람
좋은 사람, 좋은 동물
5
인간의 끝, 인간의 최전선
도살장 앞에서
병원이라는 이름의 수용소
그들의 쓸개
꽃님 씨의 복수
차별이 저항이 되기까지
재난 속 인권활동가들
처음부터 다시
추천의 글 사랑하고 싶어질 때
그냥, 사람
홍은전 · 에세이
264p

홍은전이 노들야학을 그만두고 보낸 5년의 사적이고도 공적인 기록이다, 라고 아주 평범하게 요약할 수 있는 책이다. 어쩌면 노들야학의 20년을 기록한 책 <노란 들판의 꿈>에 이어 나온 그의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칼럼집이라고도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저자 홍은전의 극적인(!) 변화, 반면 거의 변하지 않은(어쩌면 오히려 퇴보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연약하기 짝이 없는 힘없는 사람들, 힘없는 존재들의 삶(특히 '고통'과 '저항')을 가장 정직하고, 가장 격렬하고, 가장 서정적으로 옮겨 적은 기록이다, 고 부를 수도 있다. 거기에 담긴 홍은전의 마음은 아주 작은 존재들에, 그래서 더 소중한 존재들에 뜨겁게 온몸으로 반응하는 다정한 작가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폐허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
‘28일 후 트릴로지’ 패키지 30% 할인 중!
왓챠 개별 구매
폐허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
‘28일 후 트릴로지’ 패키지 30% 할인 중!
왓챠 개별 구매
구매 가능한 곳
본 정보의 최신성을 보증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정보는 해당 플랫폼에서 확인해 주세요.
저자/역자
코멘트
70+목차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글 속의 ‘나’는 현실의 나보다 더 섬세하고 더 진지하고 더 치열하다. 글을 쓸 때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더 자세히 보려고 애쓰고 작은 것이라도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글을 쓸 때처럼 열심히 감동하고 반성할 때가 없고, 타인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를 고심할 때가 없다. 글쓰기는 언제나 두려운 일이지만 내가 쓴 글이 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게속 쓸 수 있었다.
― 홍은전(<나는 왜 쓰는가>)
이 책 《그냥, 사람》은 홍은전이 노들야학을 그만두고 보낸 5년의 사적이고도 공적인 기록이다, 라고 아주 평범하게 요약할 수 있다. 어쩌면 노들야학의 20년을 기록한 책 《노란 들판의 꿈》에 이어 나온 그의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칼럼집이라고도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저자 홍은전의 극적인(!) 변화, 반면 거의 변하지 않은(어쩌면 오히려 퇴보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연약하기 짝이 없는 힘없는 사람들, 힘없는 존재들의 삶(특히 ‘고통’과 ‘저항’)을 가장 정직하고, 가장 격렬하고, 가장 서정적으로 옮겨 적은 기록이다, 고 부를 수도 있다. 거기에 담긴 홍은전의 마음은 아주 작은 존재들에, 그래서 더 소중한 존재들에 뜨겁게 온몸으로 반응하는 다정한 작가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하여, 나는 이 책을 홍은전 ‘칼럼집’이라는 규범화된 표현 대신, 홍은전 ‘산문집’이라고 부르고 싶고, 독자들 역시 그렇게 불러주고 또 그렇게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로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글 속에는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공통의 사건, 사고도 많지만, 평생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사람들, 존재들이 곳곳에서 ‘출몰’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살아 있다고 알았는데 ‘갑자기’ 사고로 죽은 사람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통 속에 놓인 사람들, 그래서 저항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수한 동물들이다. 그 글들 앞에서 나는 수시로, 거의 매번, 뭉클하고 울컥한다. 어디를 펼쳐도, 홍은전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절망,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박혀 있어서다. 대개는 담담하되, 가끔은 격렬하게. 지난해 6월 고양이 카라와 홍시를 만나면서 그전까지의 ‘가슴이(심장이) 아팠다’는 표현 대신, ‘가슴이 쿵쿵 뛰었다’ ‘충격적으로 좋았다’ 같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해, 마음이 좋았다. 그들을 만나고부터 홍은전의 겪은 혁명적인 변화, 즉 채식, 동물권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글 쓰는 존재가 애정하는 대상을 만나 스스로의 삶이 얼마나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는지, 동시에 그의 글이 얼마나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는지를 참 잘 보여준다.
지난 5년 동안 저자 홍은전의 삶, 홍은전의 마음을 따라 차례대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은데(아마 그 과정에서 글을 읽는 ‘나’의 위치, 나란 존재를 수시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중 특히 마음에 남는 글을 몇 꼽으라면 <당신들의 평화>, <앎은 앓음이다>, <어떤 졸업식>, <꽃동네 없는 세상>, <어떤 발달장애인의 생존 기록>, <동물적인 너무나 동물적인>, <고통을 기록하는 마음>, <꽃님 씨의 복수>, <재난 속 인권활동가들>을 들고 싶다. 아, 만일 당신이 이 책을 읽고 홍은전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면, 동료 활동가 미류가 쓴 (애정 넘치는) ‘추천의 글’(<사랑하고 싶어질 때>)도 꼭 읽어보시라 권한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여러 편의 글 끝에 적혀 있는, 연대와 후원의 손짓(계좌번호)에도 귀 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신예원
읽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애써 외면 하고 있었던 세상을 알아버렸고, 비겁하지만 아직 나는 그들을 위해 싸울 용기가 없다.
pizzalikesme
4.0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여행할 때였다. 값싼 숙소에 한데 뒤섞여 지낸 각국의 여행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영어를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후자인 나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스페인에 사는 현지인이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조차 불만이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도 자기 나라 말을 요구하는 자들의 그 엄청난 권능이 부럽고도 싫었다. 그땐 그것이 ‘남자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는 그 무지함이 평생의 내가 그랬듯,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걸 깨닫는다. 124p
귤귤
5.0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김성현의 말대로 핸드폰을 만드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어서, 그날 핸드폰을 만든 사람들은 그 뒤 대거 시설을 나와 자립했다. 말하자면 시설은 ‘단절’을, 핸드폰은 ‘연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날 핸드폰을 만든 사람들 중엔 송국현도 있었다. 송국현은 2013년에 꽃동네를 나왔지만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고, 2014년 혼자 있던 시간에 집에 불이 나서 죽었다. 꽃동네의 어떤 직원들은 송국현의 죽음을 이 이야기의 결말로 삼았다. “자유는 위험한 것이다. 너희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사람들은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꽃동네에서 20년을 살았던 스물다섯 살 최영은도 수녀님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듬해 꽃동네를 나왔다. 자신도 불타 죽을까봐 두려웠지만, 그녀가 더 두려운 건 통제된 시간 속을 살다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었다. 최영은은 며칠 전 한국방송(KBS) 9시 뉴스를 통해 결혼 소식을 전하며 이 이야기를 힘차게 이어나갔다. 꽃동네를 나와 자립한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을 통해 우리가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2009년 장애인 여덟 명이 김포의 장애인시설을 뛰쳐나와 시설에서 살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지 꼭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2019년 그들은 시설의 상징 꽃동네를 폐쇄하고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일명 꽃동네폐쇄법)을 제정하라며 싸우고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꽃동네가 없는 사회라니, 수만 명의 시설 장애인이 해방을 맞이하는 사회라니, 그 혁명적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나는 몹시 가슴이 떨린다.
기묘한와사비
5.0
"나는 왜 이 일에 여전히 관객일 뿐인가" 우리는 싸우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빚을 지고 있다. 싸우는 이들이 있어 사회는 변화하고 그러므로 지속가능해진다. 기능론적 사회는 갈등을 틀어막고 없애고 지운 사회에 불과하다. 그것이 길 위에서 거슬리는 것을 ‘청소’한 삼청교육대였고 형제복지원이었고 선감학원이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살고 있다" 그곳에서 눈을 돌리는 순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차단되는, 그러나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는 일들. “늦었다고 질문을 포기하거나 축소시킬 때, 우리는 재난을 향해 ‘일보 전진’하는 것”이다.
더블에이
4.5
이름을 불러주세요. 사람으로 여겨주세요.
yxxi
4.0
어떤 앎은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지만 어떤 앎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리며 온다. 혁명 같은 그런 앎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애솔킴
3.5
권리는 그게 아무리 당연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거다. 그리고 그 싸움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로부터 시작한다.
수지
5.0
홍은전 씨의 글은 다 읽고나서부터가 시작인 느낌이 든다.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