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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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091 김개미 시인의 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가 출간되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라면 머릿속에 떠오른 그 사람이 아마 맞을 것이다. 동시 장르에서도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 그 김개미 시인 말이다. 2005년 『시와 반시』로 등단한 이후 2008년 첫 시집『앵무새 재우기』를 출간할 때까지만 해도 시인은 ‘김산옥’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했다. 간호장교 출신의 ‘감각적인 이미지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시인은 ‘김개미’라는 필명으로 살게 됐다. 2010년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면서부터 달기 시작한 이 이름표는 2013년 『어이없는 놈』으로 제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받으면서 알록달록한 컬러감으로 그 입체성을 더하게 됐다. 그런데 왜 하필 개미일까. 시인의 이름으로 ‘김개미’는 시인 인생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까. 이 필명은 어린 시절 친구들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지극히 소박하고 단순한 의도가 담긴 이름이란다. 수줍음이 많아서 말은 거의 안 했지만 친구들이 놀리거나 무시하지는 않고 다만 ‘개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조용하지만 어딘지 존재감이 분명 있었던 것으로 예상이 되기도 하거니와 시인이 이번 시집 안에서 자주 쓰곤 하던 ‘그림자’라는 키워드가 일견 덧씌워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김개미’라는 이름으로는 처음 내놓는 시집이다. 작고 검고 소리 없는 듯해도 분주한 뉘앙스의 이름 김개미로 내놓은 한 권의 동시집과 한 권의 시집 제목부터 다시 본다. 일부러 작정한 것은 아니지만 뭔가 궤가 꿰인다. ‘어이없는 놈’과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라.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는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본격적으로 시를 읽기 전에 각 부의 머리말이 되어준 소제목부터 먼저 읽어보십사 당부를 드리고 싶은 까닭은 ‘울면서도 웃었어’, ‘우선 좀 혼탁해져야겠다’, ‘소리에도 베인다는 말’에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가 그득 배어 있는 탓이다. 사실 이 시집은 손에 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술술 읽어 넘길 수 있는 그런 유의 시집은 아니다. 한 편 한 편 한 연 한 연 한 문장 한 문장이 아프기 때문이다. 짙기 때문이다. 질기기 때문이다. 상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의 ‘나’이며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죽기도 살기도 좋은 날씨”(「한여름 동물원」)는 얼마나 어려운 감정인가. “울면서 웃었어”(「그 밤」)는 그래서 어쩌란 마음인가. “죽어서도 깨어 있어야 해”(「검은 집의 아이」)란 얘기를 수없이 들어왔다. “나는 짐승인가 귀신인가”(「초인의 죽음」) 하는 생각에 매번 고개를 갸우뚱거려왔다. “왜 나는 병들지 않았는데 아플까. 왜 죄짓지 않았는데 도망칠까.”(「덤불 속의 목소리」)라는 자기반성 속 매번 뭔가를 끼적거려왔다. 매번 메트로놈같이 흔들리는 나와 내 그림자와 싸우는 일. 아침과 밤과 싸우는 일. 빛과 어둠과 싸우는 일. 삶과 죽음과 싸우는 일. 이 겹겹의 교집합 속에 “고래의 뱃속과도 같은 허기를 채울 수가 없어서”(「네 개의 심장」) 시인은 저 홀로 저 자신을 파먹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감히 나는 이 시집을 김개미 시인의 도저한 사춘기가 오롯이 기록된 뜨거운 일기장이라 부르고 싶은 것이다. 김개미 시인에게 시인만의 사춘기는 일정 기간 끓어올랐다가 식은 나날이 아니고 평생 계속될 물음표라는 것이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어서이다. 어려서 늙었고 늙어서 어릴 거라는 것. 정답을 찾지 않고 정답을 향해갈 뿐이라는 것. 어쨌거나 마침표로 단정짓는 단아함보다는 물음표로 갈고리를 거는 호기심에 더한 재미를 느낄 거라는 것. “나는 왜 개미들의 행진을 쫓아가는”(「복숭아뼈에 고인 노을」)지 명백히 이해했다면 쫓지 않는 것은 어른이고 그럼에도 종종걸음으로 쫓고 있는 것은 어린이일 것이다. 동시와 시 모두를 섭렵하고 있는 김개미 시인에게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영역도 아마 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 정의할 수 없는 우리의 나고 감이라는 이야기의 똥줄일 것이다. “무서운 건 쥐/ 쥐는 안 망해/ 할미꽃 뿌리를 던진 항아리 속에서/ 흰 구더기들만 죽어/ 고요하게 풀을 기르지”(「고요한 봄」)라는 시에서 짐직 유추할 수 있듯 비유와 사유의 교차에서 우리에게 가르침은 하나 없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보여주기에 급급한 겸손함으로 이 시집은 단단히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응석받이처럼 제 감정에 푹 젖어서 시시한 감정놀음에 바쁜 것도 아니다. “씨발. 우선 좀 혼탁해져야겠다”(「파란 명찰을 가슴에 단 날들-영수에게」)라는 선언을 보자. 대들고 맞아온 세월, 그 날들에 대해 “어떻게 일일이 다 말할 수 있겠”(「우울한 토르소」)느냐고 하지만 그래서 “아이들 얘기나 하는 수밖에”(「우울한 토르소」) 없다고 다시 처음, 그 원형을 향해 일단 가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은 ‘사랑’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시집은 완벽하게 새로운 스타일의 사랑 시집으로 읽혀도 좋으리라. “흐린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우리의 임무는/ 해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 해가 떠도 해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하얀 밀림의 시간」)이 바로 사랑일지니 나는 궁금할 따름이다. “왜 아무 때나 한숨을 푹푹 쉬게 되는지. 왜 돌멩이를 걷어차게 되는지. 왜 사타구니가 손을 끌어당기는지.”(「무료한 아이들)」). 사랑이라는 알 수 없음, 사랑이라는 설명 불가의 덩어리와 놀기 위해 이 시집은 태어났다. 키보다 빨리 자라는 궁금증을 점점 더 증폭시키며 이 시집은 놀고 있다. 이 시집의 건강함은 “매일 한 가지씩 시시한 것들이 생”(「무료한 아이들」)겨나기에 “공벌레처럼 혼자서도 똘똘똘 뭉칠 수밖에”(「무료한 아이들」) 없게 된 우리들의 생명력이 점점 자생력을 더욱 갖추게 된다는 사실에 입각한다. “나의 역할은 눈코입이 없는 구슬. 차이고 밟혀도 명랑하게 굴러다니는 것.”(「잔인한 동거」)이라지 않은가. 김개미 시인의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는 시인 안의 어린이가 없었다면 쓰일 수 없는 시집이다. 우리 안의 어린이가 있다면 우리 이야기로 기꺼이 다 읽어낼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