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국 장르소설계의 스카우팅 리포트”
한국에서 가장 퀄리티 높은 작품과 작가들을 배출해온
환상문학웹진 ‘거울’ 대표중단편선집 15년 만의 정식 출간!
2003년 창간 후 매해 동인지를 발표하며 한국 장르소설계의 스카우팅 리포트이자, 한국 장르소설의 대표작가들을 배출해온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대표 중단편선이, 창간 15년 만에 처음으로 아작을 통해 정식으로 출간되어 나왔다.
출판인과 언론인이라면 모두 믿고 있는 ‘오타 자연 발생설’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기이한 스타일의 재난 스릴러 <아직은 끝이 아니야>를 표제작으로, 휴대폰 OS에 이식된 고양이들 이야기, 저승사자가 사람을 데리러 갔다가 고스톱을 치게 된 이야기 등 장르 불문, 무한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자, 전설의 동인지를 이제 서점에서 만나보자.
2019 장르소설계의 스카우팅 리포트
매년 시즌 시작을 앞두면 프로야구팬들을 위한 책이 발간됩니다. 바로 해당 해의 스카우팅 리포트죠. 각 선수의 특징과 능력치를 일별하고, 그 조합을 통해 팀의 완성도도 가늠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나 경쟁하는 팀에 어떤 선수들이 있고, 그들이 어떻게 활약할지를 살펴보기 위한 자료집이죠. 이미 스타가 된 선수를 비롯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선수들도 만나볼 수 있지만, 아직 이름이 낯선 선수 중에서 장차 더 큰 활약을 할 거로 보이는 선수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들 말이죠. 한편, 본래 스카우팅 리포트는 말 그대로 선수의 능력을 판별하는 ‘스카우터’들이 만드는 일종의 보고서를 뜻합니다. 프로팀들은 이러한 문서를 바탕으로 어떤 선수를 영입하고 내보낼지 계산하죠. 이 친구가 앞으로 대성하겠는데? 끄덕끄덕.
SF를 기반으로 한 한국 장르소설계에도 이러한 스카우팅 리포트처럼 쓰이는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꾸준히 출간되어 온(그러나 아는 사람만 알았던) 웹진 ‘거울’의 문집입니다. 프로와 아마추어 작가가 함께 모여 자유롭게 작품을 올리고 비평하는 ‘거울’은 한국에서 가장 퀄리티 높은 작품 혹은 작가들을 배출해 왔습니다(‘조아라’ 등의 다른 플랫폼도 훌륭히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이 경우 추구하는 세부 장르가 약간 다르다고 해 두겠습니다). 특히 ‘거울’은 일정 기간의 작품이 쌓이면 그것들을 선별한 문집을 자체적으로 발간했죠. 이 문집은 일종의 동인지이고 비상업지였기 때문에 일반 서점에서 판매되지는 않았습니다. ‘거울’을 애정하는 팬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이 문집들을 읽었죠. 그렇습니다. 거울의 문집은 스카우팅 리포트였던 것입니다. 초창기부터 소문난 ‘거울’ 작가들은 단행본 출판사들이 빠르게 계약을 맺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거울’에서 활동하는(혹은 거쳐 간) 작가들의 이름을 살피다 보면 큰 성공을 거둔 작가들도 꽤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수 년 동안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에서 꾸준히 창작해오며 천천히 이름을 알리는 작가도 있고, 이제 막 등장해서 자신만의 감수성을 뽐내는 작가도 있습니다. 스타와 중견 베테랑과 신인들이 모두 모여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 역시 이 작가는 좋아. 아니, 이 작가도 좋은데? 근데 처음 보는데 언제 데뷔한 거지? 뒤적뒤적.
《아직은 끝이 아니야》는 ‘거울’의 새로운 소설집입니다. 장르소설계의 2019년 스카우팅 리포트입니다. 업계의 오늘이 여기에 있습니다. 꽤 두꺼운 분량에 수많은 작가가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일관된 스타일을 만나볼 수는 없습니다. 그 때문에 단행본으로서 특정한 방향성을 기대하셔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야구의 스카우팅 리포트에 나오는 선수들의 개성이 제각각이어도 그들 모두가 ‘야구’라는 세계 안에 있는 존재이듯, 거울 웹진에서 선별된 작가들은 모두 “지금 우리가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다양한 접근 방식을 읽는 것은 일관된 의식을 지닌 단편집과는 다른 재미를 안겨주죠. 특히 지나간 어떤 걸작선들도 보여주지 못하는 면을 만나보는 기쁨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 관한 것이죠. 동서고금의 작법 교육이 그렇듯, 작가들도 자신이 몸담고 겪은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좀 더 잘 쓸 수 있게 마련입니다. 외국의, 다른 시대에 살았던 대가들의 작품이 인류의 보편성에 기반해 공감대를 이끌어낸다면, 《아직은 끝이 아니야》 같은 작품집에서는 피부에 더욱 와 닿는 친숙함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죠. 인류 전반을 아우르는 보편적 공감대와 특수한 시대 상황 내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갖춘 공감대를 비교하면 보통 전자가 훨씬 좋다고들 합니다. 확실히 그건 부정하기 어렵죠. 그러나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마치 유행어나 은어의 덧없는 아름다움 같은 거죠.
왜 더 세련되고 보편적인 얘기만 선별해서 추려내지 않느냐고요? 왜냐면 그게 다는 아니니까요. 개성은 천차만별이고, 즐거움의 종류는 무한합니다. 한번 훑어볼까요. 진산마님이 돌아오셨나 싶은, 오래된 말투를 구사하는 이들이 펼치는 애절한 판타지가 있습니다. 휴대전화 OS에 이식된 고양이들 얘기가 있고요. 또 다른 고양이 얘기도 있는데 이건 ‘장르소설’ 혹은 ‘거울’의 스테레오타입에서 거의 벗어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승사자가 사람 데리러 갔다가 고스톱을 치게 된 얘기도 나옵니다(아니 근데 정말 맞고에서 3점으로 나는 동네가 어딘가요?). 출판인이라면 모두가 믿고 있는 ‘오타 자연 발생설’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기이한 스타일의 재난 스릴러(?)도 있습니다. 클래식한 설화를 현대풍으로 바꾼 작품? 물론 있습니다. 러브 스토리도 있나요? 물론입니다. 호러물은요? 본격 호러는 아니지만 미묘하게 조여주는 작품은 있어요(클라이브 바커가 전체관람가용 순문학을 시도한 것 같은 오묘한 개성이 있습니다). 그럼 모든 게 다 있나요? 아쉽게도 430여 페이지에 모든 걸 담을 수 있었던 책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신에 이 책은 매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재미있는 모든 것’을 추구하는 방향성만큼은 확실히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가 안겨준 교훈을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신은 어디에 있나요? 스스로 사도가 되기를 자처한 이들의 마음과 몸과 행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추구하는 행동 속에요.
그래서, 수많은 스타일로 왁자지껄하는 《아직은 끝이 아니야》의 몇몇 작품을 읽으면서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창작자만큼이나 독자들의 취향도 천차만별이니까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재미있습니다. 랜덤한 선물이 담긴 상자를 열어보는 마음이지요. 내가 원래 좋아하는 것들, 역시 좀 내 스타일이 아닌 것들, 이것도 좀 별로… 같은데 이상하게 마음에 드네? 뭐지?
그렇게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가는 즐거움이 이 책 안에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시고, 팬이 될 만한 새로운 작가를 만나시고, 새로운 스타일과 문장을 만나시면서 조금 더 넓은 세상을 거닐어 보시기 바랍니다. 더 넓은 세상에는 더 많은 동료와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 어찌 후회할 경험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서 오세요. 이야기를 사랑하는 수많은 동료가 당신을 그 언젠가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