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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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이 부풀다 죽는 잔혹한 고통에서 스타 과학자의 은밀한 욕망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양소에 숨겨진 욕망의 과학사 “과학은 가끔 퇴보도 한다” 우리는 비타민 C를 당연하게 여긴다. 비타민 C 덕분에 인간은 산소가 풍부한 대기 속에 살면서도 세포를 산화시키지 않고 몸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다. 그만큼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소인 것이다. 이처럼 지금은 모두의 상식이 된 비타민 C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모른 채 잇몸이 붓고 피를 흘리며 끔찍하게 죽어갔다. 비타민C의 발견이 전 세계 공중보건에 끼친 막대한 영향은 여기에 있다. 이 영양소의 발견은 수많은 목숨을 살렸다. 현대 의학의 대표적 성과인 ‘예방접종’과 ‘항생제’ 못지않은 성과였다. 극미량이라도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라는 개념이 전무했던 16~17세기, 당시 의사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를 지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레몬만 조금 챙겨 먹었어도 괜찮아졌을 이 고통의 해결법을 알아챈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이 500년이나 지속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는 사람들과 냉정하게 외면하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졌던 끈질긴 줄다리기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의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 저자 스티븐 M. 사가는 연구보조금을 마련하는 일에 깊이 연루되면서 우연히 이 비타민 C라는 영양소에 숨겨진 ‘조금 수상한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역사에는 떠돌이 선원, 북극 탐험가, 돈 한 푼에 벌벌 떠는 관료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500년에 걸친 비타민 C의 역사를 파고들면서 우리 인간은 과학을 통해 생물학적 신비를 파헤칠 뿐만 아니라 아주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욕망을 품은 과학은 이따금씩 퇴보하기 때문이다. 해적의 시대, 바다에서 펼쳐진 낯선 질병의 고통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 해적 행위를 하며 새로운 영토를 발견한 리처드 호킨스가 활약하던 16세기 후반 유럽은 항해의 시대였다. 우리는 탐험 정신으로 식민지 ‘신세계’를 마구 휘젓고 다닌 이 배 위에서 비타민 C와 사투를 벌인 가난한 하급선원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 조지 앤슨 제독이 이끌던 배에는 원래 1천여 명이 출발했지만 3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배에는 겨우 188명만이 살아 있었다. 대부분 비타민 C 결핍으로 인한 괴혈병으로 사망한 것이다. 저자는 이 죽음들에 주목했고, 이들을 살리고자 했던 보이지 않은 영웅들을 조명하고자 노력한다. 당시 해외 식민지를 방어해야 했던 영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늙고 병약하고, 만성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남성들을 강제 징집했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간 고된 노동을 버티기 위해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던 수많은 선원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는데, 1850년까지 괴혈병으로 사망한 영국 병사는 약 100만여 명에 달한다. 기록을 남기지 않은 다른 유럽 국가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국의 승리에 취해 있던 영국의 대중들도 그 참혹한 사망자 수가 점차 알려지면서 비로소 ‘괴혈병’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 서유럽은 과학이라는 새로운 사고를 통해,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의 토대를 이룩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여전히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비과학적인 4체액설 같은 비과학적인 기존의 권위와 통념에 기대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망자 수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이미 레몬즙의 효능을 발견한 사례 등 수많은 정보가 쌓였음에도 왜 괴혈병을 이해하는 데 400년이나 소요되었을까? 우리는 때때로 선입견에 갇혀 상황을 똑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면 잔뜩 구부리고 비틀어서라도 그 정보를 기존의 생각에 억지로 맞추려 한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물질적 효율을 따지며 외면하는 마음과, 간단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적용하지 못한 관료적 무능도 이에 한몫했다. 욕망의 과학자들과, 수상한 비타민 비즈니스 그래서 우리는 비타민C를 먹어야 하는가? 지난 50년간 비타민 C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타민이었다. 다른 모든 비타민 중에 가장 많이 팔렸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조 3천억 원에 달한다. 이 영양소는 어떻게 거대한 산업이 되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비타민 C를 발견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경쟁과, 1970년 <비타민C와 감기>라는 베스트셀러로 비타민 요법을 설파한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을 이야기한다. 20세기 초는 과학자가 ‘발견 경쟁’에서 승리하면 크나큰 영예를 누릴 수 있는 첫 시대였다. 당시 과학자와 대중에게 인기 있는 비타민은 대표적인 공개 경쟁의 장이었기에 순수한 비타민을 추출하고, 그 화학 특성을 규정하는 경쟁이 뜨거워졌다. 순수한 비타민 C를 추출하기 위한 찰스 글렌 킹, 슈비르베이,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등 과학자들의 경쟁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 단 한 명의 탁월한 영웅은 없다. 다만 노벨상을 향해 당대 서로의 연구에 영향을 미치며 치열하게 동료 연구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지난한 모습들을 보면 과학도 스포츠처럼 기술보다 운의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양자물리학으로 분자 내 화학 결합을 설명해 노벨 화학상을 받고, 핵 실험의 방사능 낙진을 알리는 순회강연을 다니며 핵 실험 금지 조약을 이끌게 되면서 노벨 평화상도 받은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1970년대 비타민 C의 옹호자가 되었다. 사실 그는 그 전까지만 해도 분자교정 의학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20년 넘게 세계여행과 강연을 하며, 더 이상 과학자로서 화학의 최전선에 있지 않았음에도, 공중 보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타민C의 요법, 즉 매가도스를 설파하기 시작한다. 이 스타 과학자는 최고가 되려는 조급함에 밀려 동료들의 심사를 거치지 않은 채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은 인간을 지적이게 만드는 훌륭한 사고방식에 틀림없지만, 과학자들 또한 자부심과 야망과 경쟁심, 상사와 가족, 그리고 재정적 이해관계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학자는 또한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에 형성된 문화 안에서 추측과 편견, 의사소통 수단, 사고방식을 동원해 연구한다. 과학자는 특정 문화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탁월한 사색가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편견과 관성이라는 정신적 제약에서 벗어나 과학적 증거를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이라는 새로운 사고는 인류를 질병에서 구했지만, 과학자들 또한 사회의 맥락에서 선입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과학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많았다. 비타민 C의 역사에는 이런 순간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