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모들의 의견을 듣기 전에
영미의 의견
2017년 4월 2일
2017년 4월 16일
2017년 5월 7일
2017년 5월 14일
2017년 6월 4일
〈울긴 왜 울어〉
지니의 의견
〈데뷔〉
윤선의 의견
자꾸만 말하는 것
말하기 싫은 것
도움받기
문이 세 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사는데〉
해제 이모들의 방_이나라(이미지문화연구자)
영미 지니 윤선 :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
이경빈님 외 2명 · 사회과학
296p

양공주·민족의 딸·국가 폭력 피해자 등 그간 어떤 대명사로만 불리던 ‘기지촌 여성’의 생애와 희로애락, 현재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책. 《영미 지니 윤선》은 기지촌 여성이라는 역사적 존재를 과거에만 사로잡혀 있는 모습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를 피해자의 절절한 호소로만 조명하지 않는다. 대화·침묵·몸짓·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극본 형식의 본문과 QR 코드로 연결된 영상을 통해, 피해 중심으로 다듬어진 기록들이 놓친 기지촌 여성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을 비춘다. 그리하여 이들이 피해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평가할 수 있고 옳은 말도 그른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꾸려 나가고 있음을 역설한다. 많은 윤문을 거쳐 정돈되기 마련인 일반 구술집과 달리 무수히 중단되고 굴절되는 영미·지니·윤선의 입말을 따라가며, 독자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기지촌 여성을 우리와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엄한 개인이자 시민으로 재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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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 책은 우리가 알던 기지촌 여성이란 것이 얼마나 고정되고 허구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죽비 소리다. 양공주, 성매매 여성, 국가 폭력의 피해자, 노인 여성, 그리고 개성을 가진 존엄한 인간이라는 다면성(多面性)의 어느 하나도 구석에 밀쳐놓지 않는다. _양현아(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사에 박제된 자의 호소가 아니라 사랑과 이별, 고통과 자유가 스민 살아 있는 개인의 육성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_임민욱(설치미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
2020년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씨는 30년간 참석해 왔던 수요집회 불참을 선언한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 무엇보다 운동을 함께해 온 단체가 피해자들을 이용했다는 판단에 따른 공적 고발이었다. 한국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운동의 존폐가 거론될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이용수 씨의 폭로가 지금까지 쌓아 온 운동의 성과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요컨대 피해 당사자이자 시민이 다른 방식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으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보다 이러한 목소리가 외부에 어떻게 보일지부터 의식하는 정파적 사고에 기인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피해자는 주로 피해자로서의 경험과 요구에 대해서만 발언하는 프레임에 익숙한 한국 사회의 민낯이었다.
비슷한 현상은 ‘미군 위안부’로 불리는 ‘기지촌 여성’에게도 반복되고 있다. 해방 이후 주한 미군을 대상으로 조성된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했던 이 여성들은 국가가 주도한 성매매 산업의 일원이자 피해자였다. 미군과의 우호를 위해, 외화벌이를 위해 기지촌 여성들이 필요했던 정부는 이들을 조직적으로 통제-관리하며 ‘산업역군’으로 치켜세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양공주’ ‘민족의 수치’라 부르며 차별하고 멸시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반미 운동 진영이 미군 병사에게 살해된 기지촌 여성 윤금이 씨에게 선사한 ‘민족의 딸’이라는 이름은 ‘듣기 좋은 왜곡’일 뿐이었다.
사회의 입맛대로 재단되던 기지촌 여성은 이후 정부의 조직적인 ‘관리’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당한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인정받게 된다. 2014년 전직 기지촌 여성 12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국가의 폭력적 성병 관리와 강제 격리수용 치료로 인해 입은 손해를 일부 원고들에게 배상하고 국가가 기지촌 내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당사자의 증언은 강제성을 강조하고 ‘피해자다운’ 모습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 편중되었다. 이는 물론 피해자의 말을 의심하거나 비난하고 그가 입은 피해를 부정하려는 시도에 맞서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으나, 거꾸로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진실성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수록 비난 여론이 형성되다 보니, 이른바 ‘위험한’ 말들의 공개를 꺼리게 된 것이다.
그들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자,
다른 것들이 들렸다
‘피해자다움’이라는 환상을 부수는
날것의 목소리를 듣는 법에 관하여
그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이 책은 기지촌 여성인 영미, 지니, 윤선을 피해 경험에만 사로잡혀 있는 존재로 재현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를 피해자의 절절한 호소로만 조명하지 않는다. ‘피해자다움’에 부합하지 않는 기억도, 심지어 이를 부정하는 말도 숨기지 않는다. 기지촌 경험에 대한 증언을 곧바로 듣기란 어렵다. 영미의 관심사는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집 여자, 자신이 키우는 개 두 마리, 동네 길고양이, 종편 채널의 ‘북한 것들’ 소식뿐이다. 지니의 기지촌 경험을 들으려면 그의 어린 시절, 가족, 지금의 동거인 이야기를 빙 둘러 거쳐 가야만 한다. 윤선은 어린 시절 계모에게 학대당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기지촌 생활에 대한 회고는 끊임없이 회피한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생활, 주변 이웃과의 에피소드, 가족에 대한 회상, 정치관, 욕설, 혐오 발언은 미군, 포주, 임신중절, 감시, 폭행 등 기지촌에서의 경험과 관계 맺고 있다. 따라서 파편적인 이야기들, 그 속의 무수한 중단과 굴절의 순간을 건너는 과정은 “‘평택 기지촌 여성’이라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들을 구체적으로 감각”(이나라, 해제 〈이모들의 방〉 중)하는 일과 같다. 독자는 그저 관찰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따라가며 함께 같은 것을 경험함으로써 ‘기지촌 여성’을 피해자만이 아닌 개성을 가진 존엄한 인간으로 재인식하게 된다.
세 기지촌 여성은 독자에게 사회가 기대하고 요구해 온 ‘피해자다움’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생생한 표현으로 알린다. 예컨대 한국 남자가 무섭다고, 여자 패면 “미국식으로” 잡아넣어버려야 한다는 영미의 말은 ‘미군 폭력의 피해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평면적 상상과 얼마나 먼가. ‘진정한’ 피해자를 가려내기 위해 피해를 호소한 당사자를 취조하듯 다루며 사소한 오류만으로도 2차 가해를 하는 지금, ‘피해자다움’이라는 환상을 부수는 이 책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시에 그를 의견을 가진 한 명의 시민으로 마주하는 법을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원민
기지촌 여성의 목소리를 가능한 온전히 복원하는 데에 초점을 둔 구술집. 세 연구자는 기지촌 여성인 영미, 지니, 윤선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이들을 ‘이모’라 부르는 것에서부터 책의 태도가 드러난다. 복잡한 삶을 복잡한 채로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 태도, 그리고 그 방식에 대한 실험. 글의 형식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영미, 지니, 윤선의 이야기는 모두 다른 서술 형식으로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영미, 지니, 윤선이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사실이 천천히, 그러나 설득력 있게 전해진다. 이건 질적 연구만이 해낼 수 있는 일 같다. 그렇다고 연구자들이 (피해자다움의 반대를 묘사하겠다는 듯이) 기지촌 이야기를 배제하고 평범한 일상만을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다. 기지촌의 구체적 경험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독자는 발화의 작은 디테일, 반복된 언어 표현 속에서 어떤 흔적을 감지하게 된다. 연구자들은 이를 섬세히 고려해, 반복되는 부분에는 굵은 표시를 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은 검은색 페이지로 처리하는 등 시각적 장치를 활용했다. 저자들의 시선과 해석은 질문의 방향과 편집 방식 곳곳에 배어 있다. 그렇지만 좀 더 적극적인 해석과 추상화라는 위험을 감수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해석과 추상화가 지닐 수 있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타자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망고와 수류탄』의 기시 마사히코는 “인용부를 폭력적으로 벗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것 자체를 금지하는 것보다 우리가 그 자리에서 우리들 자신의 논리와 해석에 변형을 더하여 대화 상대의 합리성과 신념의 올바름을 유지하는 것도 틀림없이 가능하다”(101)고 말한다. 요컨대, 연구 참여자의 목소리를 이야기의 영역에만 매여있게 하지 않으려면, 인용부를 해제해서 풀어보는 좀 더 적극적인 시도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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