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크라이나전쟁의 진실게임: 평화를 위한 전쟁은 가능한가?
진실은 언제나 흑과 백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의 무수한 회색들을 모두 포함할 때 우리는 사건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쟁”에 관해서 한국에는 오직 흑과 백만 존재한다. 제국주의 러시아와 파시스트 푸틴은 이 전쟁의 절대 악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국민들과 영웅 젤렌스키는 이 전쟁의 숭고한 피해자이자 절대로 승리해야 하는 선이다. 민주주의와 세계의 평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숭고한 피해자인 우크라이나와 연대하고, 그들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나아가 용기 있는 자들은 의용군으로 직접 참전하여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 이것이 선이며 곧 이 세계의 정의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기만 할까? 포화에 스러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맞은편에 또한 전쟁에 희생되는 러시아 국민들이 있지 않나? 푸틴이 자국 병사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 죽음을 맞게 하는 독재자라면, 역시 자국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젤렌스키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세계는 과연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미국과 나토가 지원한 수십만 발의 포탄과 수십 대의 탱크가 정말로 ‘평화’의 수단인가? 그렇게 구축하려는 평화에 러시아는 포함되는가, 배제당하는가? 몇 가지 질문만으로도 이 전쟁을 숭고한 선과 절대 악의 대결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렇다. 아마도 이 전쟁 또한, 무수한 전쟁들이 그러했듯이, 국제정치의 한 과정이자 현 시점의 지정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어떤 지정학 전략과 또 다른 지정학 전략의 충돌이다. 이를 인식하고 전쟁을 선과 악으로 가르지 않기로 했다면 이제 할 일은 이번 전쟁의 과거와 미래를, 그 배경에 있는 많은 관계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흩어져 있던 사건과 인물들을 한 줄로 세우고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주변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전략과 손익을 한데 모아서 보면 우크라이나전쟁의 회색 지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쟁은 언제 시작되었나?
이 전쟁은 현지 시각으로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되었다. 그날 새벽 6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무장 해제와 나치즘 제거, 동남부 지역의 주민 보호를 목표로 하는 ‘특수 군사작전’을 명령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군은 키예프와 하르코프, 오데세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핵심 시설물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북부·남부·동부 세 방면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것이 이 전쟁의 시작에 대한 ‘공식’ 해석이다.그러나 이 해석은 서방의,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른바 진보 리버럴 네오콘이 만든 정의이다. 반면에 러시아는 이 사건을 ‘전쟁’이 아닌 ‘특수 군사작전’으로 부르며, 우크라이나를 향해 돈바스 지역의 영토 불가침과 주권을 보장한 “민스크협정”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민스크협정은 2014년과 2015년 두 번에 걸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이 서명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승인한 것으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러시아인 계통의 주민이 다수인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특수한 지위(분리·자치)’를 약속했다. 그리고 이를 조건으로 해당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군대가 철수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민스크협정에서 약속한 개헌과 돈바스 지역의 분리를 이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지역 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 학대와 탄압을 지속했다는 것이 러시아의 주장이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나치즘과 결합하여 공공연히 러시안 슬라브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시도했으며,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현실 정치세력이 되었다고 러시아는 규탄했다.
바이든이 국제사회를 향해 러시아의 전쟁 야욕을 한창 경고하고 있던 2022년 2월 16일에 우크라이나 군대가 돈바스 지역에 대한 대규모 포격을 개시했다. 그럼에도 서방 언론은 2월 16일부터 2월 23일까지 지속된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포격을 보도하지 않았다. 오직 2월 24일에 전쟁이 시작되었다고만 말했다. 한국의 뉴스도 마찬가지다. 또한 2021년 내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했으며 곧 전쟁이 임박했다는 뉴스를 내보내는 동안에도 우크라이나군 또한 전체의 절반 혹은 12만 5000명에 달하는 대병력을 돈바스 지역에 배치했다는 사실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언제 시작된 것인가?
이들은 한결같이 거친 도덕적 성토와 더불어 러시아의 침공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는 침략 반대 및 주권과 영토의 불가침을 규정한 국제법 최고 강행규범을 위반했다. 하지만 동일한 규범은 우크라이나 내 소수민족인 돈바스 민중의 ‘자결권’ 역시 확고하게 승인하고 보장한다. 심지어 이들의 민족해방 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의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포로셴코(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와 젤렌스키(우크라이나 현 대통령)는 우크라이나 내 돈바스를 침략했다. _24쪽
예정된 혹은 의도된 전쟁: “나토는 단 1인치도 동진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 반대가 악으로 간주되는 대상의 절멸을 상정하고 있어도 그 편에 서야 할까? 심지어 그 대상이 악으로 간주되는 이유가 오해와 조작 때문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은이는 우크라이나전쟁의 기원을 나토의 동진과 낡은 ‘루소포비아Russophobia’(Russia와 phobia의 합성어로, ‘러시아 혐오’를 뜻한다) 지정학에서 찾는다.
1990년 2월 9일 미국의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고르바초프를 만난 자리에서 독일 통일에 대한 소련의 동의를 구하며 “나토의 관할권이 동쪽으로 단 1인치라도 확장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확언했다. 그리고 같은 약속을 조지 W. H. 부시 미국 대통령과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했다. 미국과 나토는 소련을 포함하는 유럽의 새로운 평화·안보 구조를 소련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후 역사에서 소련은 붕괴해 사라졌고, 나토는 회원국을 늘리며 점점 더 동쪽으로 확장되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나라들에 나토의 군사기지가 설치되었고, 그들의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대는 모스크바를 향해 있었다. 러시아는 여기에서 어떻게 평화가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미국과 나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팽창은 누구를 겨냥하는가?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이후 우리의 파트너들이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선언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가버렸나? 아무도 그것을 기억조차 못 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 앞에서 지금까지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상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1990년 5월 17일 브뤼셀에서 나토 사무총장 뵈르너가 한 연설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나토 군대를 독일 영역 외부에 배치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소련에게 확고한 안보보장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보장은 지금 어디로 갔습니까? _53쪽(푸틴의 2007년 뮌헨 안보회의 연설)
우리는 누군가를 도발하지 않도록 매우 신중하게 행동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파트너에게도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청합니다. _55쪽(푸틴의 2008년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의 연설)
루소포비아, 닳고 닳은 기억의 정치
현재 미국의 집권 민주당의 주류는 시카고대학의 레오 스트라우스와 예일대학의 도널드 케이건에서 시작된 네오콘의 후예들이다. 지은이는 이 가운데에서도 국무부 차관 빅토리아 눌런드를 포함한 케이건 집안을 네오콘의 성가정Holy Family으로 지목한다. 이들의 목표는 ‘자유주의 패권의 확장’이며, 그 과정에서 소련은 반드시 제압해야 할 주적으로 설정했다. 냉전은 끝났고 소련은 지상에서 사라졌으며 푸틴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네오콘은 자신들의 계획표에 공산주의 소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