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고독이 아편처럼 느껴질지라도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한 폴란드의 시성詩聖,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세계숨은시인선3)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 6월의 긴 날들을/ 산딸기와 로제 와인 방울과 이슬을/ 쫓겨난 사람들의 농장 위를 빈틈없이 뒤덮는 쐐기풀을 기억하라/ 너는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해야만 한다/ 네가 본 멋진 요트와 배들,/ 이들 중 하나만 먼 여행을 앞두고 있고/ 나머지에겐 소금기 가득한 망각만이 기다린다/ 너는 갈 곳도 없이 걷고 있는 난민들을 보았고/ 처형자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것도 들었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해야만 한다/ 하얀 방에 우리가 함께 있었던 순간을 기억하라/ 커튼은 펄럭이고 있었다/ 음악이 폭발하던 콘서트의 기억으로 돌아가라/ 가을이면 너는 공원에서 도토리를 주웠고/ 나뭇잎들은 땅의 흉터 위에 소용돌이쳤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라/ 개똥지빠귀가 잃어버린 회색의 깃털을/ 흩어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부드러운 빛들을 _아담 자가예프스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 전문
미국 9·11 테러 직후 상처 입은 전 세계인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한 편의 시가 2001년 9월 24일자 <뉴요커>에 실렸다. 바로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라는 작품으로, 9·11 테러가 발생하기 1년 반 전에 예감처럼 쓰인 시다.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명성을 이으며 현재 폴란드 문단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자가예프스키는 한국의 고은 시인과 함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번에 문학의숲 세계숨은시인선 세 번째 시집으로 출간된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시집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학과장인 최성은 교수와 같은 학교 이지원 강사가 번역을 맡아 총 96편의 시를 묶었다. 그리고 박형준 시인이 일상성에서 근원적 아픔을 발견해내는 자가예프스키에 대한 에세이를 써 주었다.
세인트루시아의 시인 데릭 월코트에 의하면 자가예프스키는 “오든보다 내밀하지만 미워시나 첼란, 브로츠키보다는 더욱 코스모폴리탄한 목소리”를 가졌다. 월코트의 정확한 지적처럼 자가예프스키는 범세계적인 시 세계를 선보인다. 최성은 교수는 그가 이런 특징을 보이는 이유로 유년 시절에 고향을 상실하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한 도시, 한 나라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자처럼 살아 온 사적 이력을 꼽는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20세기를 온몸으로 통과한 유대인이자 이방인 또는 방랑자(여행자)라는 특징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다.
자가예프스키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직후인 1945년 6월 21일,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가 된 ‘르부프’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으로 인해 국경선이 조정되면서 폴란드는 패전국인 독일에 속했던 서부 지역을 할양받는 조건으로 국토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동부 지역을 소비에트에 빼앗기게 된다. 그 결과 르부프에 거주하던 폴란드인들은 새로이 폴란드 영토가 된 실롱스크(슐레지엔)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자가예프스키 또한 가족과 함께 실롱스크 지방의 탄광 도시인 글리브체에 정착하여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잃어버린 고향 ‘르부프’는 이중적인 이미지, 즉 신화적인 이미지와 현실적인 이미지로 존재한다. 시인의 기억 속에 신화화되어 남아 있는 ‘과거’의 르부프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노스탤지어의 대상, 존재의 원형과 신비가 보존되어 있는 시원의 공간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의 부모에게 헌정된 <르부프로 간다>에 잘 나타나 있다.
성장해서는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의 야기옐론스키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폴란드의 권위 있는 문예지 《오드라》의 편집부에서 일하며 문단과 인연을 맺고 1967년 문예지 《문학 생활》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후 율리안 코른하우저, 스타니스와프 바라인착, 리샤르드 크리니츠키 등의 동료 시인들과 함께 이른바 ‘68세대’로 불리는 ‘노바 팔라(새로운 물결)’ 그룹을 결성하고, 사회주의 언론에서 즐겨 사용하는 선동적인 정치 선전 문구를 시의 소재로 삼아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시도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획일성을 과감히 거부하고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청년 운동을 주도했다. ‘르부프’가 자가예프스키에게 돌아갈 수 없는 유토피아이면서 동시에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산실이라면, 대학 시절 지성에 눈을 뜨고 청춘을 불태웠던 도시, 문단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시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크라쿠프’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자 동시에 ‘감성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크라쿠프에 대한 자가예프스키의 각별한 애정은 여러 편의 시에서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와의 마찰로 고국을 등진 뒤, 자가예프스키는 파리와 휴스턴을 오가며 낯선 땅에서 또다시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만 했다. 르부프와 글리브체, 크라쿠프와 파리, 휴스턴, 그리고 외국의 낯선 도시들을 떠도는 방랑자, 혹은 여행자의 이미지는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모티브라고 최성은 교수는 진단한다. 모국인 폴란드에서조차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살아야 했던 자가예프스키는 스스로를 어떤 공간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이방인’이자 영원한 ‘타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역설한다. 낯선 타향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내게 ‘타자’라면, 나 또한 상대에게 ‘타자’가 될 수 있음을,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타자’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한 ‘이방인’임을. 그는 자기 자신의 타자성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타자와 세계를 끌어안는 것이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꿈으로 깨끗이 씻긴 아침/ 그들의 이마를 바라보면./ 나는 왜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일까,/ 너라고 할지, 그라고 할지,/ 모든 그는 어떤 너의 배신자일 뿐인데, 그러나 그 대신/ 서늘한 대화가 충실히 기다리고 있는 건/ 타인의 시에서뿐이다. _아담 자가예프스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전문
“나는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만을 쓰는 시인이 되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이전에 진실을 추구하는 아담 자가예프스키,
‘역사의 세계’와 ‘우주의 세계’를 접목하다
낯선 도시들에 살면서 가끔은 낯선 사람들과/ 낯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략)/ 이제 나는 젊지 않다, 그러나 나보다 늙은 이들도 아직 있다./ (중략)/ 내 나라는 한 가지 악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나는/ 그다음의 해방도 오길 바란다./ 내가 거기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 알 수 없다. _아담 자가예프스키, <자화상> 부분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의 고독한 여정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의 자아는 시시각각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자가예프스키의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라고 최성은 교수는 말한다. 유독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시가 많은 그는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한 개인이 맞닥뜨리는 존재론적인 고민, 불안과 좌절, 무력감과 분노, 그리고 극복과 화해의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놀라운 점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스스로의 영적인 근원에 대한 내밀한 탐구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유럽 문화의 고전과 걸작들을 작품 속에 다양한 코드로 접목시킨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서양 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이해와 지적인 소양, 그리고 감수성이 요구된다. 자가예프스키가 유럽의 고전을 자주 인용하고, 위대한 예술가들을 작품 속에 빈번히 등장시키는 이유는 예술이 지닌,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굳은 신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