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큰 작가들 한데 모여
국내 유일 한영대역 문예 계간지 《아시아》 창간 10주년 기념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이다. ‘계간 《아시아》 10년 최고의 단편 소설 컬렉션’으로 요약될 이 책은, 계간 《아시아》 10년 역사 100여 편의 아시아 단편 소설 중 최고의 작품 12편을 모은 선집이자 아시아 문학 지도를 복각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터키의 야샤르 케말, 인도의 마하스웨타 데비와 사다트 하산 만토, 필리핀의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중국의 츠쯔젠, 대만의 리앙, 베트남의 바오 닌과 남 까오, 그리고 레 민 쿠에, 일본의 유다 가쓰에, 태국의 찻 껍ㅤㅉㅣㅅ띠, 싱가포르의 고팔 바라담까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번역가들이 옮겼다.
한국 문학이 베트남 문학에 어둡듯 베트남 문학은 한국 문학에 어둡고, 필리핀 문학이 인도 문학을 모르듯 인도 문학도 필리핀 문학을 모른다. 이 책은 아시아의 언어들이 서로의 내면으로 대화를 나눈 경험이 빈약한 와중에, 상대의 언어 안에 흐르는 정서와 영혼과 역사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경계를 넘어 아시아의 연대와 공존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아가 인류사회가 새롭게 기획해야 할 평화의 질서를 위해서도 절실한 일이다.
사람들 마음에 별똥별처럼 떨어지는 아시아 문학
당신의 서재에는 어떤 아시아가 있습니까?
문학에 관한 한, 아시아는 이른바 세계화가 가장 덜 진척된 영토로 존재한다. (...) 지난 몇 세기 동안, 아시아는 수없이 발명되고 발견되었다. 그 결과 논과 밭, 구릉과 숲으로 이루어진 아시아의 주름진 대지는 이차원의 매끈한 평면으로 아주 쉽게 왜곡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주름들을 기억하려 한다. 우리 스스로 아시아를 얼마나 낯설고 어색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불행히도 우리 주변에는 읽고 싶어도 읽을 아시아조차 많지 않다. 우리의 기획은 이런 경이로운 무관심과 태만을 반성하는 데서 출발한다. 동시에 우리는 혹 ‘미지의 세계’ 아시아를 또 하나의 개척영역, 흔히 말하듯 ‘미래의 먹거리’ 쯤으로 상정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 안의 유혹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이렇게 경계선을 넘으려 한다.
_‘<아시아 문학선>을 펴내며’ 중에서
국내 유일 한영대역 문예 계간지 《아시아》 창간 10주년 기념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이다. ‘계간 《아시아》 10년 최고의 단편 소설 컬렉션’으로 요약될 이 책은, 계간 《아시아》 10년 역사 100여 편의 아시아 단편 소설 중 최고의 작품 12편을 모은 선집이자 아시아 문학 지도를 복각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터키의 야샤르 케말, 인도의 마하스웨타 데비와 사다트 하산 만토, 필리핀의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중국의 츠쯔젠, 대만의 리앙, 베트남의 바오 닌과 남 까오, 그리고 레 민 쿠에, 일본의 유다 가쓰에, 태국의 찻 껍찟띠, 싱가포르의 고팔 바라담까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김석희, 정영목, 오은경, 김태성, 하재홍, 김영애, 김경원, 전승희, 임옥, 구수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번역가와 각계 전문가들이 옮겼다.
한국 문학이 베트남 문학에 어둡듯 베트남 문학은 한국 문학에 어둡고, 필리핀 문학이 인도 문학을 모르듯 인도 문학도 필리핀 문학을 모른다. 이 책은 아시아의 언어들이 서로의 내면으로 대화를 나눈 경험이 빈약한 와중에, 상대의 언어 안에 흐르는 정서와 영혼과 역사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경계를 넘어 아시아의 연대와 공존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아가 인류사회가 새롭게 기획해야 할 평화의 질서를 위해서도 절실한 일이다.
여기 담지 못한 작품들
계간 《아시아》의 베스트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100여 편 중 12편만 선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100여 편 모두가 아시아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 작품에 관한 미안함과 애정을 아무래도 먼저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 2’가 나오면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게 될 작품들이다. 이 빛나는 작품들 또한 ‘베스트’이다.
평생을 남의 집 운전사로 일하다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모르는 타인의 행로에서 빠지기로 결심한 「운전사」(M. 무쿤단), 어린 아들에게 총을 들려야 하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그린 「난민촌의 총」(갓산 카나파니),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 힌두교와 회교도의 갈등이 한 아이의 운명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비극 「팔리」(비샴 사니), 전쟁 중인 이란을 떠나 자식들이 살고 있는 런던과 파리, 캐나다 등으로 전전하느라 ‘비행기’가 집이 되어버린 노파의 이야기 「공중 저택」(골리 타라기), 세계적인 작가들을 ‘약’으로 분류해놓는 대담한 재치의 「약」(알리세르 파이줄라에브) 등은, 문밖에 내놓고도 오래 잊히지 않는 작품들이다.
특별히 인상적인 작품들
특별히 인상적인 작품 가운데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물결의 비밀」이 단연 으뜸이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 소설은 한 편의 시 같다. 미군 폭격으로 제방이 무너지고 홍수가 난다. 경비초소를 지키던 남자는 출산한 아내에게 달려간다. 남자와 아내는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물을 피해 나무에 매달린다. 그러다 어떤 낯선 여인의 손길에 의해 아들이 물에 빠지고 아내가 물로 뛰어들고 남편도 뛰어든다. 아들은 건졌지만 아내는 시신도 찾지 못하고 남편은 구출된 후 정신을 잃는다.
딸은 물의 아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불렀다. 물에 빠진 아기를 아비가 구해낸 이야기는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알았다. 그러나 그 비밀은 아무도 몰랐다. 내 딸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단지 강물만이 안다. 내가 둑에 나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내 아내, 내 아이, 그리고 이름 모를 여인이 늘 강바닥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시간,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강물도 역사도 모두 변해간다. (「물결의 비밀」 중에서)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비극은 보편적인 비극일 수 있으나, ‘각각의 사연이 품은 슬픔은 강물보다 깊고 대지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처연하게,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은 여전히 어둠속에 버려진 아시아의 굴곡진 역사와 민중의 얼굴을 우리 앞에 돌려세우는 듯한, 섬뜩한 충격과 슬픔을 담고 있다.
인도 작가 마하스웨타 데비의 「곡쟁이」도 인상적이다. 다른 작품들이 여성의 체념이나 자조로 귀결되는 데 반해 「곡쟁이」는 여성의 생존 의지가 두드러진다.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고 손자가 떠나도 울지 않던 여자가 처지가 비슷한 친구와 함께 남의 장례식장에서 통곡해주는 곡쟁이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다.
슬퍼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독한 재난을 당한 뒤에도 사람들은 차츰 목욕을 하고 밥을 먹고, 마당에서 고추를 물어뜯고 있는 염소를 쫓아낸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먹지 못하면 죽는다. (,..) 사니차리는 슬픔에 넋을 잃었지만 울지는 않을 것이다. 돈, 쌀, 새 옷, 이런 것들을 대가로 얻지 않는다면, 눈물은 쓸모없는 사치다. (「곡쟁이」 중에서)
먹고 사는 것이 전부인 삶. 생존의 간두에 서 있는 자를 울게 하는 것은 타인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리라는 것. 애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눈물은 때로 피보다도 진하리라는 것. 그것을 두 곡쟁이 여성을 내세워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뼈아프고 눈물겹다. 장터의 갈보들과 장례식에서 뒹굴며 곡하는 이들의 슬픔이 가짜 슬픔이고 노동이기만 할까. 한 톨의 감정도 그들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고, 소유하지 못하는 이들의 가짜 울음에 가슴 먹먹하지 않을 수 없다.
‘보편’이란 이런 경우를 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들
유다 가쓰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