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새로운 국왕의 탄생을 알리는 조선 왕실의 즉위의식 조선의 최고 통치자인 국왕은 어떤 모습으로 왕의 자리에 올랐을까? ‘즉위식’ 하면 많은 사람들이 19세기 화가 다비드의 그림인 〈나폴레옹의 대관식〉처럼 새로운 왕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왕으로서의 상징물을 전달하는 광경이나, 현대의 대통령 취임식처럼 드넓은 공간에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진행되는 축제적 성격의 행사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즉위식은 우리의 상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시대에 국왕의 즉위를 표현하는 당시의 용어는 ‘등극’登極이었다. 등극에서 ‘극’은 뭇 별들의 중심인 북극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도덕적 표준이자 중심 원리로서 황극皇極을 의미하기도 했다. 따라서 등극이란 여러 해석에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의미를 지녔다. 군주제 국가에서 국왕은, 모든 갈등을 조화로 이끌 수 있는 ‘덕’과 갈등을 제압할 수 있는 ‘물리력’이라는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 기대되었으며, 이러한 ‘바람직한 군주’에 대한 국가 공동체의 바람과 기대가, 즉위식의 형식과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조선에서 새로운 왕이 등극하는 의식은 계승의 형식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는 개국開國, 선왕이 살아계실 때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수선受禪, 왕이 돌아가신 뒤에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는 사위嗣位, 선대 왕을 폐위시키고 새로 추대된 왕이 왕위에 오르는 반정反正의 네 가지이다. 개국은 태조 이성계, 수선은 정종·태종·세종·세조·예종·순종의 여섯 왕의 예, 반정은 중종과 인조 두 왕의 예가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18명의 왕)의 경우는 사위嗣位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 네 가지 계승의 형식에 따라, 즉위식의 장소나 그 절차 및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 조선의 즉위식과 현대 대통령의 취임식 조선 왕의 즉위의식은 왕실의 다채로운 행사 가운데 가장 중대한 행사였으며, 행사의 독특한 절차와 의식에는 고유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조선의 왕·황제·왕세자를 공인하는 의례를 통해서 우리는 조선인의 정치의식과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살펴볼 수 있다. 오는 2월 25일 새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현대의 대표적 국가 의전인 취임식과 조선시대 국왕 즉위식을 비교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본문 309쪽). 한국의 유교적 전통문화와 왕실문화의 진수를 담고 있는 상징의례인 조선의 즉위식은 보존되거나 복원될 수 있는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 않고, 전통문화와 현대 의전을 접목하여 새로운 국가 의전 체계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닌 훌륭한 무형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선 왕, 대한제국 황제, 이극貳極(왕세자)을 공인하는 의식의 상징과 기록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새 왕이 보위에 오르는 의식인 즉위식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과, 세자가 왕의 후계자인 왕세자로 공인받는 의식까지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1부에서는 즉위의례의 연원을 고대 중국의 경전에서 찾아보고 그 의미를 살핀다. 명대 이전 중국 역대 왕조의 즉위식과, 조선 즉위의례의 직접적인 연원이 된 명대의 즉위의례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2부에서는 먼저 고려시대의 즉위식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로의 변화와 추이를 살핀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즉위식의 유형과, 각 즉위식의 ‘실제’를 기록을 통해 살펴본다. 제3부에서는 즉위식의 공간인 문問과 전殿, 즉위식에 초대된 사람들, 왕위에 오르는 의식의 상징물인 대보大寶와 교명敎命, 복식과 각종 의장, 음악, 관련 기록 등 즉위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4부에서는 고종황제 즉위식을 통해 황제국으로의 변모를 살펴본다. 황제국의 선포와 황제 칭호를 통한 진정한 독립국으로의 열망이 일었던 당시의 급박한 정치 상황과 황제국 수립의 과정을 개괄하고, 변화된 황제의장과 복식, 내용과 규모 등을 황제 등극의를 기록한 『(고종)대례의궤』를 위주로 살펴본다. 제5부에서는 왕세자의 자질과 지위를 공인받는 의식들을 살펴본다. 왕세자는 책봉의식, 입학의식, 관례, 대리청정, 조참의식 등을 통해 왕의 후계자로 공인받았는데, 왕의 즉위식에 비해 훨씬 풍부한 기록과 시각자료들이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왕세자 공인의식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제6부에서는 조선 국왕 즉위식의 현대적 의미와 문화 콘텐츠로서의 활용 방안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수선受禪의 대표적인 예, 세종대왕의 즉위식 선왕이 살아있을 때 왕위를 물려주는 “수선受禪”은, 왕위의 혈연 계승이 일반화되기 이전 시대에 요堯임금으로부터 순舜임금이 왕위를 이어받은 사례를 통해 아름다운 왕위 계승의 전형으로 인식되어왔다. 태종이 막내아들인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사례는, 조선시대 왕위 계승의 예 가운데 ‘왕위가 유덕자有德者에게 승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대표적인 선위의 예였다. 세종대왕의 즉위 절차는, 태종이 왕을 상징하는 국새와 의장물인 홍양산을 세자에게 내려주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세종은 그로부터 이틀 후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하였다. 세종의 즉위식 광경에 대한 기록은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가장 상징성이 강한 즉위식으로 인식되어 현대에 유일하게 문화 행사로 재현되고 있다. 전殿이 아닌 문門에서 장례식 중 치러진 즉위식, 사위嗣位 선왕의 사망 후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는 “사위嗣位”는 조선의 즉위식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서, 조선왕조 기간 동안 9명의 왕을 제외하고 18명 모두 사위嗣位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 사위의 경우 새 왕의 즉위식은 선왕 국상의식의 일부로 포함되어 치러졌고, 그 과정은 조선 초기의 의례서인 『세종실록』「오례」 중 ‘흉례’에 포함되어 일찌감치 제도화되었다. 이 경우 조선 전기에는 경복궁 근정문, 후기에는 주로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식이 행해졌다. 문에서 의례를 행한 것은 선왕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차마 선왕이 계시던 ‘전’에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과 함께, 선왕이 돌아가신 상황에서 편하게 ‘전’에서 의례를 치를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으며, 선왕이 닦아놓은 위업을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이어받은 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세종의 아들 문종은 첫 번째로 사위했던 왕인데, 새 왕은 국상 중에 상복을 잠시 벗고 면복(왕의 대례복, 면류관에 곤룡포)으로 갈아입은 후 즉위의례를 치렀으며, 비교적 간단히 의식을 치른 후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사위의 의례는 선왕이 돌아가신 지 6일째 되는 날 이뤄졌는데, 『국조의례의』에 기록된 사위의 절차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왕이 남긴 말씀인 유교遺敎를 받는 절차, 왕이 됨을 상징하는 대보大寶를 새 왕에게 전달하는 절차, 어좌에 오르는 의식인 승좌陞座, 종친과 문무백관들에게 인사를 받는 하례賀禮이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왕은 면복을 벗고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었으며, 다음으로 왕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즉위교서 반포식을 거행한다. 즉위의례 이후 행해지는 부대행사들로는 종묘와 영녕전에 즉위 사실을 고하는 일, 중국에 전왕의 사망을 알리는 절차, 새 왕의 즉위를 공인하는 외교행사 등이 있었다. 특히 즉위교서에는 ‘새롭게 시작하는 처음에 크게 화해한다’는 의미로, 중죄 이외의 잡범들을 풀어주는 특별 사면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위식의 상징 요소들, 어보·어좌·어복·의장물 조선시대에 국왕으로 공식 인정하는 의식 절차 가운데 핵심은 대보大寶(왕을 상징하는 도장)를 받는 의식이었다. 면복을 입은 왕은 대보를 받은 후 어좌에 올랐으며, 즉위식의 현장에는 왕을 상징하는 의장물과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 행사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악대가 배치되었다(하지만 사위嗣位의 경우에는, 상중이었기 때문에 악대를 배치만 하고 연주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즉위식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 요소들이라면 대보, 어좌, 왕 및 참여자들의 복식, 음악, 의장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