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결코 폭력으로 지배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인간이다. 스파르타쿠스에서 바그다드까지, 저항과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인류 역사를 관통해온 전 세계 모든 대륙의 목소리와 치열했던 역사의 페이지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지난 2011년 말 김근태 의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그 자체로 유언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투사로, 서민의 대변자로 평생을 살았던 그의 유언에 붙은 제목은 “2012년을 점령하라”였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남겨진 몫은 분명해졌다. 불합리와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에 분노하고 진정으로 변화를 갈망할 때 시민 개개인은 저항자가 되어 함께 일어선다. 인류가 진보해온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기존의 권위나 억압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던 수많은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노예, 농민, 무산계급, 여성, 유색인, 이민자, 학생, 노동자, 동성애자 등, 때로 무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남긴 저항의 목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기억되었다. 『저항자들의 책』은 바로 이런 ‘무명씨’들, 그리고 4000년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작게나마 이름을 올렸던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를 연대기 순으로 엮었다. 그들은 억압자가 규정한 불합리와 부조리의 틀을 깨부수기 위해 각자에게 최적화된 표현 수단을 강구해냈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출판물뿐만 아니라 연설문, 벽보, 법정 최후 진술, 유언, 시위대의 낙서, 대자보, 슬로건, 시, 팸플릿, 대중가요 등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기록들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 설명과 함께 담겨 있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캐낸 저항의 몸짓과 분노의 항변들 사실 이 책은 한국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민 저항자들에게도 기념비적인 앤솔러지다. 지난 수십 년간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진보 진영의 담론을 이끌어온 뉴레프트북스New Left Books와 버소 출판사Verso Books(Verso는 책의 좌수면, 즉 왼쪽 페이지를 뜻한다.)는 여태껏 축적해온 문헌 자료와 노엄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 에릭 홉스봄, 베네딕트 앤더슨 같은 급진적 석학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 책을 집대성했다. 또한 뉴레프트북스/버소 출판사의 창립 40주년에 맞춰 출간됨으로써 이들이 그간 이뤄왔던 성취의 스케일을 명확하게 가늠할 수 있게 했다는 상징적 의미도 동시에 획득했다. 현지의 진보적 언론으로부터 “감동적인 국제적 연대와 단결의 성취”, “거의 완벽에 가까운 앤솔러지”, “이 책을 읽는 행위는 분노하는 우리 자신의 최고 버전을 맞닥뜨리는 것과 같다” 등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이 책은 기원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봉기부터 부시에게 신발을 벗어 던진 바그다드의 기자까지,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캐낸 저항의 몸짓과 항변들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역사를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다 문자라는 형식을 빌려서 시대를 초월해 존재해온 저항자들의 목소리와 외침은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시대를 고민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는 사유의 토대가 되었으며, 평범한 민중에게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의지를 심어주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들은 또다시 다음에 오는 세대에게 새로운 저항의 형식과 내용으로 전달되었다. 그럼으로써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변화와 변혁을 가져오기 위해 산을 옮기고자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 강력해지고 첨예하게 세공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항자들의 책』은 ‘저항자들의 사전’ 혹은 ‘저항자들을 위한 각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아우르며 서로를 끊임없이 참조했고, 역사를 만드는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임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바로 “이 책에는 인류 역사에 걸쳐 그런 신념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피와 눈물, 외침과 분노가 담겨 있는”(타리크 알리, ‘서문’에서) 것이다. 저항의 세계사 속에서 울려 퍼진 우리 민중의 목소리를 듣다 기원전 1800년 이집트에서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서도 정의를 갈망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존재했다.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키케로 이래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일찍이 페르시아 귀족 오타네스의 연설을 인용해 “나는 지배할 욕심도, 지배당할 마음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이 인간에게 종속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 『저항자들의 책』은 이처럼 까마득한 인류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프랑스혁명, 제국주의의 발현, 계급의 탄생, 양차 세계대전, 냉전과 분열 등으로 이어지며, 신자유주의 질서의 확립과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의 모든 굵직한 사건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책에서 특별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전 세계 모든 대륙의 저항자들이 남긴 기록 중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사례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은 만적의 난(1198), 동학농민운동(1894), 4·19혁명(1960), 광주민주항쟁(1980)에 관련된 기록뿐 아니라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에 실린 시까지 포함한다. 서구 중심의 세계사에서 지구 반대편 동북아시아 끝자락에 위치한 우리 민중의 노래가 전 세계 저항자들의 목소리와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매우 의미심장하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패배하고 스러졌을지라도 우리는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 헬렌 켈러는 그녀가 사회주의자인 까닭이 “신체적 발달과정에서 있었던 명백한 한계”에서 비롯했다고 쓴 어느 신문 기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말 당당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눈멀고 귀먹은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제도를 변호하고 있다. 그 제도는 우리가 예방하려 노력하는 신체적 시각장애와 청각장애의 주요한 요인이다. (…) 만약 내가 사회주의운동에 기여한다면, 내가 꿈꾸는 책의 제목은 이러할 것이다. 산업적 시각장애와 사회적 청각장애.”(‘왜 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1911) “사회적으로 눈멀고 귀먹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산업적 시각장애와 사회적 청각장애”는 헬렌 켈러가 살았던 시대에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 사회적 ‘질병’ 또는 ‘질환’은, 완치까지는 아닐지언정 과연 치유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수많은 노래와 함성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내는 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사회적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저항의 첫 번째 몸짓임을 너무나도 통렬하게 보여준다. 때로는 패배하고 때로는 스러져갔지만 치열했던 역사의 페이지마다 존재해왔던 소수와 약자들의 기억을, 『저항자들의 책』은 다시금 불러일으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