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피의 발명

린 헌트님 외 8명 · 역사
4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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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해제: 포르노를 금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머리말: 외설 그리고 근대성의 기원, 1500년부터 1800년까지_린 헌트 1부 포르노그래피의 정치적·문화적 의미 1.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 정치 그리고 포르노그래피 _폴라 핀들렌 2. 포르노그래피의 정치학: 《소녀들의 학교》 _조안 드잔 3. 가끔 국왕의 홀은 그저 홀일 뿐이다: 왕정복고기 영국의 포르노그래피와 정치 _레이철 웨일 2부 포르노그래피의 철학적·형식적 특성 4. 포르노그래피의 유물론적 세계 _마거릿 C. 제이콥 5. 18세기 프랑스 포르노그래피에서의 진실과 음란어 _뤼시엔 프라피에마주르 3부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18세기의 관점들 6. 자유사상 창녀: 프랑스 포르노그래피에서의 매춘, 마르고에서 쥘리에트까지 _캐스린 노버그 7. 계몽시대 영국에서의 에로틱 판타지와 남성 자유사상 _랜돌프 트럼백 8. 17~18세기 네덜란드공화국의 정치와 포르노그래피 _베이난트 메인하르트 9. 포르노그래피와 프랑스대혁명 _린 헌트 감사의 말 주석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근대 유럽을 뒤흔든 포르노그래피의 발칙한 문화사 프랑스대혁명, 근대문화 태동기에서의 포르노그래피의 탄생과 역할 “매력적이다. 근대 포르노그래피와 근현대 문화의 태동을 통찰하는 강렬하게 지적이고 도발적인 컬렉션이다.” _뉴욕 타임스 [기획 의도] 검열의 대상 이전에 역사적 의미로 살펴본 포르노그래피 마침내 금서의 역역에서 해방된 “화끈거리고 음탕하지만, 교묘하고 날카로운 책들의 리스트” 현대 사회에서 포르노그래피는 검열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포르노그래피의 출현은 서양에서 근대성이 태동하는 순간과 맥을 같이함을 알 수 있다. 불온한 음란 서적이 급증하던 18세기 프랑스혁명이 발발했고, 이후 포르노그래피의 발달과 함께 자유사상, 계몽주의, 유물론 철학 등이 발전한다. 《포르노그래피의 발명》은 역사학자들과 문학이론가들을 주축으로 1500년에서 1800년대에 이르기까지 포르노그래피가 어떻게 변형되었고 그 당시 문화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서양의 근대성과 문화적 민주주의의 형성과 연결 지어 살펴본다. 이 책은 1991년 10월, 같은 제목을 주제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콘퍼런스에서 발표된 글들을 모은 것으로, 유럽의 근대사 및 문화사를 연구하는 명망 높은 9명의 교수가 참여하였다. 포르노그래피는 금기의 대상이 아니다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라는 단어는 1857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처음 등장한다. 프랑스의 경우 그 시기가 좀더 빨라 《프랑스어 보전Tresor de la Langue Francaise》에 따르면 포르노그라프pornographe는 1769년 니콜라에듬 레스티프의 논문 《포르노를 쓰는 사람Le Pornographe》에서 ‘매춘에 관한 글’이라는 의미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금서 내지는 악서를 보관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지옥서가가 183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음란서가 비밀리에 유통되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1806년 파리에서 출판된 에티엔가브리엘 페뇨의 《불태우거나 금지하거나 검열해야 할 도서 사전Dictionnaire Critique, Litteraire et Bibliographique des Principaux Livres Condamnes au Feu, Supprimes ou Censures》은 음란하거나 비록 음란하지 않더라도 루소의 《에밀》처럼 기괴하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책들로 가득하다. 19세기 이전까지는 포르노그래피가 문학이나 시각적 표현으로서 독자적인 장르를 이루지 못했다. 포르노그래피를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성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포르노그래피는 18세기 중후반까지 거의 항상 다른 무엇의 부속물이었다. 주로 종교적·정치적 권위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16~17세기까지 귀족 출신에 자유사상을 지닌 엘리트 남성 독자층을 위해 쓰이던 포르노그래피는 18세기에 이르러 인쇄 문화의 발달로 독자층이 확대되었고, 이후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한층 더 탄력을 받아 마침내 하나의 자체적인 범주를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의 포르노그래피가 출판물을 규제하려는 측과 출판 시장 양쪽 모두에 의해 만들어진 범주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종교·정치계에서 작품들을 검열하고 금지하려고 하는 욕구와, 이러한 책들을 쓰고 구매하려는 작가와 독자의 다른 한쪽의 욕구가 만나 포르노그래피라는 독립된 범주가 탄생한 것이다. 이 이중적인 ‘발명’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포르노그래피가 지닌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살펴볼 수 있다. 포르노그래피의 역사적·문학사적 의미 《포르노그래피의 발명》은 총 3개의 부에 머리말을 포함해 총 10개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포르노그래피의 정치적·문화적 의미〉는 포르노그래피의 역사 초창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의 의미를 각기 다른 관점에서 살피고 있고, 2부 〈포르노그래피의 철학적·형식적 특성〉은 포르노그래피에 담겨 있는 철학적 문학적 층위를 해석한다. 19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와 영국의 작품들이 포르노그래피 역사의 중심을 차지했지만, 전문가들 다수가 최초의 근대적 포르노그래피 작품으로 16세기에 등장한 이탈리아 작가 피에트로 아레티노의 작품을 꼽는다. 그의 산문 《대화Ragionamenti》와 소네트 형식인 《음란한 소네트Sonetti Lussuriosi》가 17세기 포르노그래피 산문의 원형이 된 것이다. 《대화》에서 아레티노는 연장자인 경험 많은 여성과 그보다 어린 순진한 여성 사이의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대화라는 장치를 개발해냈다. 이러한 대화 형식은 250년 뒤 사드의 《규방 철학La Philosophie dans le Boudoir》에도 등장할 정도로 포르노그래피 작품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음란한 소네트》는 판화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에로틱한 판화들에 아레티노가 소네트를 덧붙인 것이었다. 판화 자체는 교황의 명령으로 공개가 금지된 상태였지만, 아레티노의 소네트에 의해 알려지면서 판화에 그려진 16가지 섹스 체위가 ‘아레티노 체위’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레티노의 베네치아 작업실에서 시작된 포르노그래피 창작의 열기는 곧 유럽 전역으로 퍼져 《방랑하는 창녀La Puttana Errante》를 시작으로 1650년대 말, 프랑스에서 《소녀들의 학교L’Ecole des Filles》와 《여성 아카데미L’Academie des Dames》가 출판되었다. 1부에 실린 세 편의 논문이 각각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포르노그래피 작품들과 그 의미를 살피고 있다면, 2부의 두 논문은 포르노그래피에 담긴 철학적, 문학적 함의에 집중한다. 특히 4장에서 신과학에서 유래한 철학적 유물론과 자연주의가 포르노그래피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마거릿 C. 제이콥은 유물론의 영향을 받은 포르노그래피 작품의 화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여성 화자들 또한 남성과 똑같이 성적인 욕망을 지니고, 더 나아가 감정을 자극하고 조종하며 능동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한 것이다. 1680년에 출간된 《여성 아카데미》의 프랑스 판본에는 사촌지간인 튈리와 옥타비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튈리는 곧 결혼할 예정인 순수한 옥타비를 유혹한다. 여성 동성애를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열정으로 묘사하며, 오히려 남자들 사이의 성교는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튈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욕망의 기원을 고전 철학을 비롯해 당대의 유물론에서 찾는다. 그녀는 기존의 생리학이 남성에게는 능동성을, 여성에게는 수동성을 부여한다고 비난하면서 당당하게 외친다. “나는 영혼의 실제 위치는 남녀의 고환에 있다고 생각해.” 유물론적 포르노그래피에서 여성이 여전히 사회적 희생자로서 열등한 위치에 있긴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참여자이자 감각세계의 안내자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프랑스대혁명과 포르노그래피의 관계 2부가 포르노그래피의 이론적인 측면을 다뤘다면 3부〈포르노그래피를 보는 18세기의 관점들〉에 실린 네 편의 논문은 18세기 포르노그래피가 각국에서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졌는지 살펴본다. 6장은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하는 자유사상 창녀의 모습을, 7장은 영국 남성들의 자유사상을 다루는데 특히 남성들 사이의 동성애에 집중한다. 8장은 17~18세기 네덜란드공화국에서 포르노그래피와 정치가 지니는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있으며, 9장은 포르노그래피와 프랑스혁명 사이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 책을 엮은 린 헌트가 정리한 프랑스혁명과 포르노그래피의 관계는 눈여겨볼 만하다. 16세기 아레티노의 작품이 등장한 때부터 포르노그래피는 독립된 장르로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치적 비판과 연속선상에 있었다. 17~18세기에 걸쳐 독재자나 절대군주를 성적 방탕함과 관련짓는 경우가 많았고, 혁명이 시작된 1789년 이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궁정 주요 인물들을 공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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