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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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학의 차세대 기대주 다니엘 켈만의 최신작 다니엘 켈만은 소설 『명예』로 세계적인 문학을 이룩했다. -《벨트보헤》 잊히고, 사라지고, 자신을 잃어 가고, 해체되는 것에 관한 책. -다니엘 켈만 휴대전화, 컴퓨터, 인터넷 등 최첨단 통신 기기의 소통 문제를 통해 현대인의 정체성의 위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다니엘 켈만의 최신작 『명예』(임정희 번역)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으로 출간되었다. 독일 전후 문학사에서 유례없는 성공작으로 평가받았던 『세계를 재다』 출간 이후, 독일 문학을 이끌어 갈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받은 켈만이 어떤 후속작을 내놓을지는 평단의 큰 관심거리였다. 이런 관심 속에서 발표한 이 작품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실험적인 구성을 시도한 소설로, 다니엘 켈만은 소설 『명예』로 세계적인 문학을 이룩했다(《벨트보헤》)는 평을 받았다. 마치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이야기들로 완벽하게 구조를 이루는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은 현실과 허구 사이를 미묘하게 오가며, 사소한 우연들이 빚어낸 인생의 큰 변화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 작품은 현재 이자벨 클레펠트 감독의 영화로 제작 중이다. 지금 보고 싶은 사람에게 당장 전화하세요. 인생은 아주 빨리 지나가고, 잊히고, 사라지니까요! 그러라고 휴대전화가 있는 겁니다. ‘호모 모빌리쿠스’라는 신조어가 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마지막 발전 단계로 ‘호모 사피엔스’를 언급했지만, 몇 년 전 한 언어학자가 휴대전화 없이 살 수 없는 현대 인간상을 일컬어 만들어 낸 말이다. 현대인에게 휴대전화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켈만의 첫 이야기인 「목소리」에서는 휴대전화기를 구입한 에블링은 계속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자, 낯선 신분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한편 유명 배우 랄프에게는 어느 날인가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가로채기라도 한 것처럼.(「탈출구」) 이 두 가지 에피소드의 궁금증은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 편에서 풀린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해서 두 연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이중생활을 영위하던 통신사 중년 팀장이 신규 휴대전화 개통 고객에게 기존 번호를 발급하고 마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마리아 루빈스타인이 낯선 동양에서 충전기를 챙기지 않은 채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된다. 휴대전화의 불통이 유럽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불통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휴대전화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컴퓨터, 인터넷 등 통신 기술과 함께 맞물려 있다. 인터넷을 통해 블로그 속에서만 살던 한 인터넷 중독자는 급기야 현실과 소설 속 가상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착란 상태에 빠져, 좋아하는 소설 주인공 라라 가스파드를 만나기 위해 소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토론에 글 올리기」) 이처럼 켈만의 소설 속 인물들은 휴대전화와 인터넷 덕분에 시간과 공간적 제약 없이 타인이나 사회와 소통함으로써 무수한 평형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혼란을 겪는다. 명예를 누리는 것도 명예를 잃어버리는 일도 통신 기술 때문에 일어날 수 있고, 통신 기술을 통해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소설 속 상황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평형 세계 속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방향을 잃어 가는 현대인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이에 관련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현실과 평행 현실, 픽션과 메타픽션을 멋지게 표현한 작품으로, 가볍지만 심오하고, 슬프지만 웃기고, 구성이 뛰어나고 문체가 유려한 지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는 아무도 몰라! 현실에서는 모든 게 뒤섞이지. 책에서만 말끔하게 분리되는 거야.” 이 책은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다니엘 켈만의 『명예』를 열어 보니 그 속에 다시 레오 리히터의 소설들이 자리 잡은 형상이다. 다니엘 켈만이 영화배우 랄프, 에블링, 레오 리히터와 그의 연인 엘리자베스를 만들었고, 레오 리히터는 다시 소설 속 주인공들인 로잘리에와 라라 가스파드를 만들어 냈다. 이들 주인공들은 어떤 이야기에서 주연을 맡았다가 다른 이야기에서는 조연이나 실루엣으로만 처리되고, 몇 쪽 넘어가면 현실이 가상으로, 가상의 세계는 현실로 판명나기도 한다. 그런데 일부 이야기와 등장인물은 이런 레벨의 논리적인 경계를 침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로잘리에가 죽으러 가다」 편에서는 노부인 로잘리에가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길에 자신을 창작해 낸 레오와 언쟁을 벌임으로써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또 레오는 엘리자베스를 모델로 라라 가스파드라는 소설 캐릭터를 만들어 낸 뒤, 후에 엘리자베스로 하여금 라라 가스파드와 맞닥뜨리게 한다.(두 편의 「위험 속에서」) 「토론에 글 올리기」에서는 몰비츠가 라라 가스파드를 몹시 좋아한 나머지 직접 만나기 위해 레오의 소설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또 어디까지가 소설 속 소설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이렇게 아홉 개의 에피소드들은 퍼즐 조각처럼 서로 맞춰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지며 연결된다. 그러면서 끝과 시작은 모호하게 흐려지고 경계를 나눌 수 없게 된다. “마치 텍스트라는 몸뚱이를 얽어매는 신경이 ‘아홉 이야기’ 위로 뻗어 있는 것 같다. 각각의 연결을 해독하는 것이 『명예』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이다. 다니엘 켈만은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허구는 평면적이지 않고 다층적이기 때문에, 굳이 이를 의식하지 않고 읽어도 좋지만 전체적인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독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날이 발전하는 통신 세상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현실과 문학적 허구 사이의 경계만큼이나 모호한 것인지도 모른다. 켈만은 이를 『명예』 속에서 잘 구현해 내어 허구는 현실보다 더 진짜같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고 다니엘 켈만이라는 작가를 주목하게 만드는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