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주목한 ‘일본 언론 자유의 상징’
모치즈키 이소코가 써낸 저널리즘의 새로운 정의
보통 10분이면 끝나는 일본 내각부 관방장관의 정례회견은 약 40분간 이어졌다. 한 사람당 두세 개의 질문을 하는 것이 통례인 기자회견장에서 모치즈키 기자는 23개의 질문을 퍼부었다. 회견장에서 질문하는 모습이 주요 방송프로그램에 보도되면서 인터넷 미디어에는 모치즈키 기자 관련 뉴스 페이지가 따로 만들어졌고, 유튜브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https://www.youtube.com/watch?v=c2o16f_K14w) 《뉴욕타임스》는 모치즈키 기자를 주목하며 ‘일본 언론 자유의 상징’이자 ‘남성지배적인 일본 정치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vocal woman)’이라 칭했고, 《가디언》에서는 ‘아베 정권의 골칫덩어리’라는 이름으로 저자의 행보를 보도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20년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일본은 66위를 차지하며 G7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일본의 ‘기자클럽’ 제도는 오래전부터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보 접근권을 손에 쥔 정부가 일부 언론인들을 클럽에서 제외시키며 정보를 얻는 통로 자체를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2013년 아베 정권이 통과를 강행한 ‘특정비밀보호법’에 따라 각료들이 ‘특정비밀’로 지정한 정보를 보도한 기자는 법적 처벌을 받게 되었다.
정부 권력이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언론학자 칩 스캔란은 “질문은 모든 뉴스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신문기자』는 권력의 통제와 위협을 무릅쓰고 진실을 찾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는 모치즈키 기자의 17년간의 취재기를 담았다. 영웅으로서의 기자의 면모보다는, 고군분투하는 저널리스트의 맨얼굴을 충실히 담아냈다. 단독 기사를 쓰겠다는 욕심이 불러온 실패담과 정보를 주지 않는 취재원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던 미숙함, 그리고 워킹맘으로서의 고민까지.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실패할지언정 포기하지 않는 한 기자의 일상과 직업의식을 오롯이 담고 있다.
저자의 취재 분투기는 2019년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어 개봉되었다. 한국의 배우 심은경이 모치즈키 이소코를 모델로 한 기자 ‘요시오카’ 역을 맡았다. 아베의 민낯을 드러내는 영화라는 찬사를 받으며 일본 아카데미에서 우수작품상, 우수 남우주연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3관왕을 수상했다.
아베 정권을 정조준하는 집요한 취재기
‘자민당 부정 헌금 스캔들’부터 ‘가케 학원’ 사학 스캔들까지!
저자는 2004년 ‘자민당 정치자금 스캔들’을 집중 취재했다. 일본치과의사회의 정치단체인 일본치과의사연맹(일치련)이 자민당 요시다 전 의원에게 우회 헌금을 건넸다는 의혹을 포착한 후 단독 특종 기사를 쓴다. 저자의 보도 이후 도쿄지검 특수부가 압수수색에 나섰고, 일치련 전 회장을 비롯한 간부 16명이 최종 기소되었다. 매스컴의 대응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특수부의 반응을 보고 더 큰 의혹이 있다는 것을 예감한 저자는, 집요한 취재 끝에 우회 헌금을 받은 ‘자민당 의원 실명 리스트’를 단독 입수한다. 이 리스트를 기반으로 신문사의 보도 경쟁이 시작되었고,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까지 부정 헌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건이 확대되었다.
극비 리스트의 출처를 알아내고자 했던 특수부는 저자를 포함한 《도쿄신문》을 상대로 강압적인 조사를 강행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도쿄신문》은 허위기사를 쓴다’, ‘모치즈키 기자는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라는 오명을 쓰지만, 발로 뛰는 취재를 멈추지 않는다.
2014년 4월, 아베 정권은 무기 수출입과 무기의 국제공동개발을 금지하는 ‘무기수출 3원칙’을 철폐한 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수립해 패전 이후 사실상 금지되었던 무기 수출의 족쇄를 풀기 시작했다. 무기 수출이 국제적 공헌을 할 수 있고 자국 안보에 기여한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출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핵심이다.
저자는 다시금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선 아베 정권의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끼고 해금된 무기 수출 문제를 탐사보도한다. ‘《도쿄신문》 모치즈키 기자의 취재에 응하지 말라’라는 정부의 고시문으로 인해 방위산업체와 관계자 측은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리고 문전박대하기 일쑤였지만, 이내 저자의 용기에 힘입어 취재에 응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스가 관방장관의 회견에 참석한 모치즈키 기자가 손들어 질문하고 있다. 2017년 6월 6일, 저자는 ‘가케 학원 스캔들’을 취재하며 처음으로 정례회견에 참석했다. 아베 총리의 지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던 가케 학원이 국가전략특구로 선정되어 수의학부를 신설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저자는 이 사건과 관련한 질문을 거듭하며 가케 학원에 관한 재조사를 이끌어냈다.
모치즈키 기자는 일본을 감시 사회로 만든다는 비판을 받은 ‘공모죄’ 법안과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를 건설하려 하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을 꾸준히 추적해왔다. 이 책은 가마가야시 시장의 뇌물수수 의혹, 모리토모·가케학원 사학 비리 스캔들 등 정치·경제·사회를 아우르는 다양한 의혹을 추적해온 저자의 취재기를 담고 있다.
남성 권력 연대를 부수다!
최초의 ‘미투’를 함께한 모치즈키의 목소리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로 한국을 뒤덮었던 ‘미투’의 물결은 일본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2017년 6월 6일,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의 최초의 미투 고발이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일본 최대 민영방송사 TBS에서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한 야마구치 노리유키였다. 아베 총리의 전기를 집필한 언론계의 거물이다.
시오리 씨의 고발 기자회견이 끝나고 그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인터넷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이다’,‘먼저 꼬신 것이 아니냐’는 터무니없는 댓글이 넘쳐났고 같은 기자들조차도 ‘왜 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냐’, ‘이제서야 말하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라며 피해자를 의심했다. 성폭행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니 크게 보도할 수 없다는 선배 기자의 ‘이상한 관대함’ 앞에서 저자는 분노한다.
저자는 세간의 비난 속에 묻혀가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다시 마이크를 쥐어준다. 주류 미디어 소속 기자로는 최초로 3시간 동안 피해자를 인터뷰하며 일본 사회의 결여된 성인지 감수성과 가해자 중심의 재판 및 수사 실태에 경종을 울리는 기사를 쓴다. 2017년 6월 8일, 두 번째로 참석한 관방장관의 정례회견에서 야마구치를 체포하기 직전 체포 중단을 지시한 스가 관방장관의 전 비서 나카무라 이타루 형사부장을 향한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퍼붓는다.
실체도 없는 두려움 때문에 눈앞에 있는 문제를 보고도 못 본 척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상대가 바라는 바다. 마에카와 씨와 시오리 씨는 사회적으로 고립될지도 모를 위험에 맞서 의혹을 고발하고 있다. 두 사람의 용기를 입 다물고 보고만 있어도 될까. 멀리서 응원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아베 총리는 정기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에게는 질문할 기회가 있다. 기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묻는 것뿐이다. (168쪽)
저자는 불편한 질문을 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편안한 질문은 잘못된 것을 바꿔낼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권력을 향해 질문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질문 역시 멈추지 않는다. 기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취재하면 조금 더 나아질까? 이 사안의 본질은 무엇일까?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저자는, 숨겨진 진실을 찾는 것을 넘어 세상에 없던 진실을 만들어간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용기는 곧 독자의 용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진실을 말하고 싸우고 이겨야 할 때 필요한 것
단독 특종보다 연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