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인수분해나 삼각함수 공식을 공부하며 누구나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걸 외워서 어디에 쓰지?’ 사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냐고 묻는다.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도구로 수학을 사용해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 독서 경험을 가져본다면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냐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기가 좀 더 쉬워질 것이다. 10여 년간 수리논술을 가르쳐온 저자는 이 책 《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에서 수학적 사고법을 바탕으로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여러 장르의 텍스트를 새롭게 읽어낸다. 〈월-E〉,〈라이어 게임〉,《82년생 김지영》등 다양한 콘텐츠를 폭넓게 분석하면서, 사회문제를 이해할 때 수학적 사고를 활용하면 이야기가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는지 전달한다.
《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생각의 틀, 사고의 도구로서 수학이 얼마나 흥미롭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시험을 치르는 데만 써먹는 수학 지식이 아니라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수학적 사고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학적 태도를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렇게 수학으로 세상에 말을 거는 실험을 시작했고, 이 책은 그 흥미로운 사고 실험의 결과물이다.
영화와 소설, 역사와 철학으로 경험하는
수학으로 생각하는 법, 수학으로 철학하는 법
2030 미래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인간과 기계의 협력이 모든 산업 분야에 빠르게 확산되며 업무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한다. 이제 미래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과 기계 각각의 강점과 역량을 파악하고 기계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기계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인 AI 유창성(AI Fluency)의 중요성도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최신 정보를 효과적으로 습득하는 힘, 이슈가 되는 문제에 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고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그 답을 수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학의 ‘수’자만 나와도 뒷걸음치고픈 ‘수포자’라 할지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체계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았을 때부터 수학은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사고를 발전시키는 가장 강력한 틀이었다. 공리-정의-증명-정리로 이어지는 논리적 엄밀성, 연역과 귀납이라는 논리구조, 구체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는 일반화과정 등을 바탕으로 한 수학적 사고법은 현대사회에 이르러 다양한 산업 및 학분 분야의 근간이 됐다. 플라톤은 수학적 사고야말로 이데아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다. 갈수록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는 미래사회에서 플라톤의 이 말은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도덕과 문학, 종교와 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수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은 총 13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의와 진리에 대한 고민과 편견과 혐오를 넘어서는 교양이 어떻게 수학과 연결되는지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실험해 보인다. 예컨대 저자는 유클리드의 《원론》에서 다루는 공리에 대해 설명하다 드라마〈라이브〉를 끌어온다. 그리고 수학의 논리구조와 닮아 있는 법이 현실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도구로 쓰일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풀어낸다. 또한 드라마 〈라이어 게임〉을 분석하면서는 100명에 한 명꼴로만 거짓말을 해도 올바른 정보와 거짓 정보가 전달될 확률이 절반이 되고 마는 디스토피아에서 우리가 인간의 선의를 믿는 게 무슨 의미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런가 하면 우리사회의 편견과 차별 문제에도 주목하여,《82년생 김지영》을 통해 통계의 대푯값에서 유의할 점을 설명하고 남녀 임금격차가 정말 과장된 것인지 지적하기도 한다. 이렇게 조금은 다른 시각과 생각의 길로 안내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수학으로 생각하는 법, 수학으로 철학하는 법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의 특징
수학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수학적 사고법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 수학 문제를 푸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에서 마주치는 갈등에는 정답이 없거나 있더라도 여러 가지일 때가 많은 반면, 수학 문제에는 보통 정해진 답이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서가 아닐까.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생각보다 무거운 짐인 탓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지 못해 힘이 들 때, 의외로 숫자와 도형으로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수학의 세계에서 위로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수학의 ‘분명함’에 의문을 품는다. 수학에 언제나 답이 있을까? 공리는 항상 완전무결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수학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논리체계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논리의 출발점이 존재한다. 달리기를 하듯 선을 긋고 여기가 출발점이라고 선언하면 된다. 논리의 피라미드 제일 꼭대기에 있는 문장으로, 증명 없이 참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명제가 바로 ‘공리axiom’다. 고대 그리스 수학을 집대성한 유클리드는 저서《원론》에서 처음으로 5개의 공리와 5개의 공준을 정하고 이로부터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수학적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재배치했다. 그 이후로 2000년 동안 쌓아온 수학 지식체계는 매우 촘촘하고 강력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에 공리체계 자체가 가진 허점들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회의, 보완, 재정의 등이 잇따랐다. 무한집합에서는 부분이 전체와 크기가 같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 칸토르는 공리체계를 신봉하는 이들에게 배척당했다. 이러한 역사를 되짚어보며 저자는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리를 둘러싼 논쟁이 거짓을 몰아내고 진리를 획득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에 가깝다는 점이라고.
이 책에서 고도의 논리학이며 동시에 형이상학이기도 한 고대 수학 체계부터 최근 대입 수리논술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는 저자가 일관되게 주목하는 것은 수학 그 자체라기보다는 수학적 태도다. 수학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수학 문제를 많이 접해보는 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수학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수학적 태도를 바탕으로 고민해볼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이 곧 수학에 대한 흥미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영화와 소설, 역사와 철학 등 다양한 텍스트를 분석하거나 사회문제를 이해할 때 수학적 관점이 첨가되면 어떻게 이야기가 풍부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 바람을 실현한 장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따라 다양한 텍스트들이 수학과 맺는 의외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다 보면 새로운 방식의 이성적 사고가 주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수학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독자들이라 할지라도 수학적 사고의 재미는 얼마든지 맛볼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집합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칸토르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로움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유로운 세상, 보다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실현시키는 데에도 수학 혹은 수학적 사고가 나름의 몫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실제로 역사 속에서 수학, 그리고 수학적 사고가 새로운 길을 안내한 순간들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주며, 우리가 진정으로 더 나은 미래를 갈망한다면 수학은 충분히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말한다.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 이 물음은 학생들은 물론, 나처럼 가르치는 이에게도 큰 화두이다. 이 책은 다양한 상황에서 수학적 사고력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어떤 새로운 차원이 펼쳐지는지 흥미롭게 소개한다. 수학과 연결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식을 넘어 수학적 태도를 체득할 수 있게 된다. 마치 꿩 먹고 알 먹기처럼. 이 책은 조금 다른 시각, 새로운 생각의 길을 찾고 있는 학생들을 융합적 사고의 세계로 초대한다.
-오혜정(이의고등학교 수학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