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소비에트연방에서 무언가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모든 게 영원할 거라는 완전한 인상이 있었죠.” 소비에트인의 뼈에 ‘상상의 서구’에서 온 사운드를 흐르게 한 엑스레이X-ray 레코드, 서구 록 음악과 공산주의적 이상을 결합시킨 열성적인 콤소몰 서기, 자발적으로 최저임금과 최소노동을 선택한 보일러실 로커와 박사들, ‘끝의 풍경’을 드러내는 네크로리얼리스트들의 기괴한 퍼포먼스,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의 눈으로 본 후기 사회주의 체제의 흥미로운 역설들 “후기 소비에트 시기를 다룬 최고의 걸작.”_슬라보예 지젝 “흥미롭고 도발적인 책!”_쉴라 피츠패트릭(소비에트 역사학의 대가)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학계에 큰 화제를 불러왔으며, 후기 소비에트 시기 문화 연구의 붐을 일으킨,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이 출간되었다. 제목이 함축하는 것처럼, 소비에트 시스템의 “붕괴는 그것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감히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막상 붕괴가 시작되자 곧장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흥분되는 사건으로” 경험되었다. “사람들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언제나 이미 체제 붕괴에 대비해왔으며, 사회주의 체제하의 삶이 흥미로운 역설들 가운데 형성되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살아간 사람들이 현실과 관계 맺었던 방식에 대한 기존의 상투적인 가정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소비에트 시스템의 본질에 놓여 있는 이 역설을 해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르착은 강압, 공포, 부자유가 이상, 집단 윤리, 우정, 창조성, 미래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과 뒤섞여 있었던 실재했던 사회주의의 현실들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삶을 성찰하고 ‘호모 소비에티쿠스’와 같은 말로 폄하되어온 소비에트의 주체성을 “재인간화”하고자 시도한다. 이 책은 “소비에트의 갑작스러운 종말”이라는 하나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해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위기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 경험되는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한때 “영원했던” 소비에트의 풍경은 지금 우리의 삶, 그러니까 어떠한 대안도 가능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영속성의 감각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생각거리를 안겨줄 것이다. 후기 사회주의, 혹은 삶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여겨졌던 시간에 대한 탐구 이 책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약 30년(흐루쇼프의 해빙기에서 브레즈네프의 침체기까지), 저자가 “후기 사회주의late socialism”라고 부르는 시기를 탐구한다.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한 변화가 시작되기 이전, 그러니까 아직은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여겨졌던 시간이다. 유르착은 이 중에서도 소비에트 시스템의 독특한 역설을 어떤 세대보다 더 강렬하게 체험한, 브레즈네프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의 삶에 특히 더 주목한다. 스탈린의 사망으로 이데올로기적 담론들의 기준이 되었던 “메타담론”이 사라지면서, 모든 표현들이 반규범적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을 낳게 되고, 이는 고정되고 형식화된 담론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규범화”는 아예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지경에 이르러, 모든 담론 영역(포스터, 영화, 기념비, 집회, 보고서, 기념행사, 학교 교과과정, 도시 공간의 구성)에서 규범적 형식의 재생산이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발화 행위의 수행적 차원이 더 중요해지고 담론의 진술적 의미는 약화되는데, 유르착은 이러한 “수행적 전환”이 후기 사회주의에서 권위적 담론을 작동시키고 실천을 재현·조직했던 핵심 원칙이라고 설명한다. 진술적 차원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담론이 “텅 빈” 의례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진술적 의미에 대한 관료주의적 해석에 얽매일 필요 없이, 예측 불가능하고 비결정적인 해석의 가능성, 다시 말해 사회주의적 삶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어떤 “영원했던” 세계의 “정상적인 삶”에 관하여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소비에트의 공식 담론과 의례에 ‘반하여’ 혹은 그것의 ‘바깥’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르착은 절대 다수의 소비에트 인민에게 사회주의적 삶의 근본적 가치와 이념이 진정으로 중요했으며, 이렇듯 체제의 가치를 믿고 체제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담론과 의례의 재생산 과정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의미 있고 창조적인 삶의 공간이 열리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체제의 한복판에서 일탈의 시공간을 여는 “탈영토화” 작업을 수행한 것은 흔히 가정하듯 “반체제분자들”이 아니라 소비에트의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다채로운 삶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소비에트 시스템 자체였다! 이 책은 공산주의적 이상과 록 음악의 가치를 결합시킨 콤소몰 서기의 이야기부터 자발적으로 보일러공이 된 록 뮤지션들과 박사들, 그리고 1970~80년대 일상생활에 만연했던 부조리한 유머와 아이러니의 미학, 예술가들의 기괴한 퍼포먼스들까지, 창조적 일탈과 전유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풍성하게 제시한다. 유르착은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상황들이 후기 소비에트 삶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난 예외가 아니라, 규범이 도처에서 탈중심화되고 재해석되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역설의 사회의 ‘끝’은 어떻게 찾아왔을까. 유르착에 따르면 페레스트로이카의 진행 과정은 무엇보다도 소비에트의 권위적 담론에 대한 해체를 의미했다. 개혁에 의한 당의 붕괴는 권력 담론의 와해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권위적 담론의 수행적 재생산은 불가능해졌으며, 그것이 수반했던 창조적 재전유도 불가능해진다. 담론 조건의 변화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한 체제를 순식간에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이 책의 의의 체제의 영원성에 대한 감각을 그토록 빨리 붕괴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인정으로 바꿔버린 소비에트 시스템 고유의 내적 조건을 밝혀내는 유르착의 이론적 논의를 따라가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를 위해 그가 펼쳐놓은 엄청난 양의 인류학적 자료들을 따라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즐거움을 준다. 당대의 관점을 알 수 있는 후기 소비에트 시기의 사적인 자료들(편지, 메모, 일기, 음악, 아마추어 영화 등)과 소비에트의 공식 출판물(연설문, 신문, 영화, 사진, 만화 등),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와 그 이후 양산된 각종 인터뷰, 회고록, 방송까지 유르착이 다루는 자료는 매우 방대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소비에트적 삶의 참모습을 재구축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오늘의 현실에 대응시켜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옮긴 김수환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후기’ 사회주의 소비에트의 일상적 삶이 근대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만들어내는 기이한 공명은 곱씹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소비에트의 붕괴는 우리 시대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종말’의 체험이다. 그 체험이 어떤 예감과 충격을 동반했는지, 그 몰락의 과정에 개입했던 주체성의 형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중요한 우리 시대의 과제일 것이다. ※ 이 책으로 유르착은 2007년 미국 ‘슬라브, 동유럽 및 유라시아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고저작상을, 2015년 러시아 드미트리 지민 재단에서 수여하는 학술저작상을 받았다. 또한 혁명기와 스탈린 시기, 그리고 해빙기에 뒤이어 ‘브레즈네프 시기’를 소비에트 문화 연구의 새로운 중심으로 대두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의 영향력은 학술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영국 다큐멘터리 감독 애덤 커티스의 영화 「하이퍼노멀라이제이션」과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 「레토」 역시 유르착의 연구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