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교토를 여행할 때 필요한 건 지도가 아니라 느긋한 마음이다. 명승지와 조용히 숨 고를 수 있는 비밀 장소, 교토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식당과 찻집, 근사한 가게와 활기 넘치는 시장. 그리고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장면들이 조용히 마음에 스며든다. 마치 별일이라곤 일어나지 않는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일본 영화처럼. “소리 없이 빛나는 곳들, 교토는 그런 곳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고양이의 걸음으로 경묘하게,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가급적 애쓰지 않고 산뜻하게, 느슨하지만 충실하게, 여름 한철 교토를 여행한 기록을 담은 에세이. 책의 갈피마다 가만히 머무는 청량한 여름, 담담하게 아름다운 교토를 만난다. 여행하지 않는 여행 여름, 한철을 교토에서 보냈다. 관광객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북쪽의 작은 동네에 집을 빌려 좋아하는 수박을 실컷 먹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품고서. 이번에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시간을 보내자고 계획 같지 않은 계획만을 세우고 여행을 나섰다. 느지막이 일어나 계란말이를 만들고 인스턴트 장국을 끓여 아침을 먹고 천천히 커피를 내려 마시고 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으며 차게 식힌 수박을 먹는다. 그러다 문득 바깥이 궁금해지면 신발을 꿰어 신고 길을 나섰다. 미로 같은 교토의 좁은 골목을 천천히 거닐며 대단할 것도 없는 날들을 보냈다.?그게 좋았다. 오래된 도시의 우아한 아름다움 단정한 주택가 모퉁이를 지나면 헤이와 시대가, 골목 끝에는 아스카 시대가, 그 바로 옆에 메이지 시대가 차곡차곡 쌓여있는가 하면 나란히 있기도 하고 때로는 겹쳐져 있는 우아한 도시.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방법을 고민해 온 도시의 모습이 묘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 교토. 오래된 가게와 오랜 단골손님. 도시의 우아한 아름다움은 그들 사이의 암묵적인 자긍심과 존중에서 나온다. 천년 된 떡집과 대를 이어 운영하는 화과자점, 오래된 찻집과 식당. 그곳들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시 찾아가도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을 그곳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가만히 바람이 드나든다. 너무 뜨겁지도 냉정하지 않고 적절한 온도를 유지한 채, 오래도록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과 장소들. 교토는 다시 찾고 싶고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다. 조용히 반짝이는 곳들 교토에는 좋은 식당이 많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곳도 여러 군데 있다. 그런 곳도 물론 좋지만 동네에 위치한 작은 식당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적이 있다. 여행 전 지도에 가고 싶은 식당을 잔뜩 표시해 두었지만 산책길에서 만난 단정한 외관의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는 식당에 들어가 수줍게 내미는 접시에서 최고의 맛을 경험하곤 했다. 교토는 그런 곳이다. 작은 찻집과 책방, 혹은 잡화점. 주인을 꼭 닮은 공간을 찾는 것만으로 여행의 날들이 풍요로워진다. 소리 없이 빛나는 곳들, 교토는 그런 곳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우리의 작고 사소한 여름 관광(觀光)의 사전적 뜻은 다른 지방이나 나라에 가서 그곳의 성덕(盛德)과 광휘(光輝)를 본다는 것이다. 그곳의 가장 빛나는 것을 보고 오는 것이다. 참 근사한 말이다. 빛나는 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니 과연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인파로 인한 피로가 느껴질 때면 조용한 숲으로 갔다. 혹은 머문 듯 흐르는 강가로 갔다.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질 만큼 조용한 곳들이 있다. 여기가 어디인가 싶을 정도로 고요한 곳에서 새 소리가 들려올 때면, 그래 여기가 바로 교토였지 하고 안심하곤 했다. 이른 아침 숲속의 도서관, 소슬한 바람이 불어오는 강둑, 깊은 숲속 납량 헌책 축제, 바다 소리가 나는 대숲,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은빛 밤, 무지개 색 빙수, 흩날리는 햇살과 싱그럽게 솟구치는 초록. 교토의 여름, 우리가 만나게 될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