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장커, 세계의 그늘을 비추는 거울

유세종
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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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6세대 영화감독의 대표로 일컬어지는 지아장커의 영화를 리얼리즘의 틀로 분석한 문화연구서. 1980년대에 실시된 개혁·개방 정책 이래 급속도로 대국으로서 굴기해 온 중국.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굴기’는커녕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버거운 하층 타자들―무직 청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거나 노동 현장에서 사고사하는 노동자, 수몰 지구의 철거노동자, 권총 강도 등등―이 존재한다. '샤오우'에서 '천주정'까지,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동시에 예술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지아장커(의 영화)는,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현실’로부터 모든 예술적 영감과 기법을 길어 올린”다는 점에서 루쉰과도 닮아 있으며, 현대 중국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독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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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장 들어가는 말 2장 산시성 ‘고향삼부곡’ 리얼리즘 1. 문화대혁명과 출로 2. 국가이데올로기와 그 복사들 3. 사실의 준열성과 로컬 리얼리티 4. 허무 리얼리즘 3장 세계, 수몰 지구의 리얼리즘 1. ‘로컬 외부’와 노동자의 죽음 2. 유랑농(流浪農)의 운명 3. 외줄 타기 : 차라투스트라적 인간 운명 4. 일상과 정물(靜物, Still Life) 5. 노동과 몸의 미학 : 렘브란트 리얼리즘 4장 숨은 구조의 다중시제와 장소 1. 숨은 구조의 은유 2. 노동과 예술 3. 예술과 일상 4. 숨은 구조, 황토 리얼리즘 5장 만리장성 유전자와 리얼리즘 1. 강제이주, 혁명과 개인 2. 만리장성 유전자와 단위(單位) 무의식 3. 영화의 문학화 4. 영상 민족지(visual ethnography) 6장 도시 리얼리즘 1. 뷰(view) 욕망과 조감(鳥瞰)의 시선 2. 도시의 인터(inter), 시민 3. 상하이 정신사 4. 하층 타자(subaltern), 도시의 건설자 7장 폭력과 복수의 리얼리즘 1.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 다하이와 아Q 2. 『수호전』 무송의 복수 미학 복제 3. 농민 루저의 유랑과 폭력 4. 하층 타자 여성의 살인 5. 저항의 무기로서의 자살 8장 낡은 이름, 리얼리즘 1. ‘느린 미학’의 리얼리즘 2. ‘느린 미학’의 실종, 은유 3. 리얼리즘의 ‘외부성’ 4. 리얼리즘과 장소 참고문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지은이 인터뷰 1. 선생님께서는 루쉰으로 박사 논문을 쓰셨고, 얼마 전(2018년 5월) 완간된 『루쉰전집』의 번역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용운에 대한 책을 쓰시기도 했고요. 이런 선생님의 이력으로 보면 동아시아 근대문학 연구에 주력하실 것 같은데, 지아장커의 영화를 주제로 책을 쓰신 것은 좀 의외인 감도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지아장커 영화와 접속하셨고, 또 지아장커의 어떤 점에 ‘꽂히셔서’ 책을 쓰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저는 영화를 여가시간의 소일거리로만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영화가 지닌 풍부한 텍스트의 힘을 알게 되었고 영화를 통해 여러 가지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지아장커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책의 서문에 간단하게 언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루쉰과 근대문학을 전공한 필자가 어떻게 지아장커에 ‘꽂히게’ 된 걸까요? 글쎄요…… 이런 것 있지요. 저는, 어느 시대에나 인간 삶에는 빛과 어둠이 항상 한 몸으로 늘 존재해 왔고 인간관계에선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가 늘 있어 왔다고 생각해요. 지금 시대가 옛날보다 아무리 좋아졌다 하지만 이런 구도에는 변함이 없어요.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인간 삶의 어떤 조건 같기도 하고요. 루쉰이 도저하게 관심을 가진 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무시당해 온 하층계급의 사람들입니다. 일용직 날품팔이, 갑질에 억울하게 당하는 ‘을’들, 여성과 아이들,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이요. 그는 평생토록 이들을 대신하여 발언했고 이들을 대신하여 복수하고자 했고 그들을 대신하여 싸웠습니다. 몰락한 가문의 출신이지만 루쉰이 마음만 먹었다면 대도시에서 여행 다니면서 ‘멋지게’ 웰빙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런 지식인들도 많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는 마치 무슨 구도자처럼, 자신의 모든 재능을, 자신이 쓰는 모든 글을 이 약자들을 위해 썼습니다. ‘삼강오륜이라는 남성 중심 유교질서의 질곡에서 중국인이 어떻게 해방되어 근대적인 신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그들의 인권과 평등과 자유, 그들의 복수와 해원(解?)을 위해 썼습니다. 그의 작품은 모두 이를 위한 폭로와 비판에 바쳐졌습니다. 비판적 리얼리즘의 글들이었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다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는 어둠과 패배, 실패의 편에 서서,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지요. 당시 이러한 모습을 보여 준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무척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그 대표적인 인물로 한국의 한용운과 중국의 루쉰,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를 꼽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실패와 절망, 고통과 어둠에 있는 사람들 속으로, 저층의 인물들 속으로 걸어들어 갔습니다. 우리가 실패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루쉰의 ‘절망 속에서의 항전’, ‘몸부림쳐 싸우기’, 한용운이 감옥에서 한 일갈―‘지옥 속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천당’, 도쿄대 교수직이라는 명예로운 길을 버리고 주류 세력에서 이탈하여 원고료로 힘겹게 살아가면서 세상을 조용하게 비웃으며 견딘 소세키의 저회(低徊 )취향 등은 이 시대의 젊은 청년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들이 책을 잘 골라 읽으면 힘든 고통 속에서도 잘 걸어 나간, 이미 앞서 걸어간 선배들이 우리들에게 이러저러한 얘기와 방법, 눈짓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땐 이렇게 살아가는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고통의 대사(大師)들이고 불가능 속에서 길을 헤쳐나간 정말 대단한 선배들이지요. 그렇다고 그들에게 고통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고통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즐거움과 여유로움, 복잡한 일을 헤쳐 나가는 유쾌하고도 씩씩한 자세, 농담과 비꼼과 해학의 정신이 눈부신 보석처럼 유쾌하게 번득이고 있습니다. 지아장커 영화를 처음 보면서 저는 ‘아, 이 시대에 저런 감독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후에 계속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화가 나오면 바로 찾아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작품이 철저하게, 근대화되고 산업화되고 도시화되고 있는 중인 이 시대 중국에서의 어두운 그늘을 비추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낙오된 자들, 가난 속에 처해 출구가 없는 젊은이들, 몸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이어가야만 하는 사람들, 죽음을 무릅쓰고 지하갱도에 들어가 석탄을 캐는 사람들, 망치 하나로 건물을 부수는 철거노동자들. 지아장커가 그들을 찾아가서 조용하고도 따뜻하게 렌즈에 그들을 담는 것을 보면서 저는 엄청난 감동을 느꼈습니다. 비애와 쓸쓸함, 노동의 아름다움과 자연과의 조화로움, 그것에서 오는 ‘황토의 미학’, 철저한 리얼리즘의 기법에 감동하였습니다. 목하 대국으로 굴기하고 있는, 잘 나가는 중국의 이면에는 수많은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그는 조용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대도시를 쌓아올린 사람들은 자본가도 건축가도 아닌 이들 하층의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대국 중국의 엄청난 발전과 밝음 뒤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어둠 속의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근대 초기 한·중·일 동아시아의 앞서 세 명의 선배들(루쉰, 한용운,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거의 100년이란 시간을 건너온 지금의 중국에서, 지아장커는 그 선배들이 주목하였던 곳을 찾아가고 그들에게 렌즈를 맞추어 그들을 소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목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착한 사람들의 존엄’을 보여 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그들을 찍어 세계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그들의 존재가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상철학과 영상기법은 중국/세계의 그늘을 비추는 거울로서 과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란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시대의 어둠과 시대의 실패, 그 속에 갇혀 출로가 안 보이는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 그들이 처한 부조리한 생존 환경은 결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지구적인 세계 자본주의의 비인간화된 무한경쟁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2. 책에 보면 ‘지아장커는 영화계의 루쉰’이라는 표현이 나오던데요. 얼핏 드는 생각으로는 루쉰의 글은 술술 읽기가 어렵고, 지아장커의 영화는 마음 편히(?) 보기가 어렵다… 는 정도가 공통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분야도, 살았던 시대와 환경도 전혀 달랐던 루쉰과 지아장커가 어떻게 통하고 있는지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맞아요. 그렇군요. 술술 읽히지 않는 루쉰을 자꾸 번역해서 독자들에게 읽어 보라고 권하고 있고, 보기 불편한 영화를 책까지 만들어서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군요, 제가.() 그런데 저는 어디선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책을 읽었을 때 저자의 견해에 불편을 느끼거나, 누군가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잠시 고개를 숙이고 그 불편한 생각이 드는 부분에 나의 ‘편견’이 있지는 않나, 한번 점검해 볼 것을요. 나의 생각과 의견, 견해, 시각, 심지어는 나의 희로애락의 감정과 어떤 일에 반응하는 감정적인 기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보고 듣고 공부하고 영향받아온 것의 총체적인 경험하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편향과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재미가 없다, 맛이 없다와 같은 판단은 그동안 재미있어 하고 맛있어 해온 경험의 종합적인 반응입니다. 영화를 예로 들면 스펙터클한 서사와 영상,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서사기법, 아름다운 멜로와 달콤한 비애 등 단시간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영화들은 누구나 재미있어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 영화 시장의 지배적인 문법이었던 ‘할리우드’적인 맛에 길들여진 것이기도 하지요. 그 길들여진 맛에서 벗어나면 지루하고 불편하고 때로는 불쾌하기도 하지요. 모두 어떤 편견과 편식의 결과입니다. 제 생각에는 불편할 때와 어려울 때, 불편한 것과 어려움을 감수하고/감수하고자 노력하면서 가능한 한 마음을 비우고, 주관적인 판단을 유보한 채 보려고 해야 합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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