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러시아를 이해하기 -비교문화적으로 본 포스트소비에트 『공통의 장소』는 레닌그라드(현 페테르부르크)의 코무날카에서 살다가 미국으로의 정치적 망명을 택한 구소련 출신 망명자-문화 비평가인 저자가,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미국 관광객의 신분으로 고국에 방문하여 러시아와 소비에트의 문화 신화, 내셔널 드림, 일상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사색하고 탐구한 결과물이다. 러시아의 정신을 묻는다 : 키치와 노스탤지어, 글쓰기광 사이에서 소련 붕괴를 전후로, 몇 년 동안 과거의 상징을 떨쳐버리고 조롱하는 경향이 러시아에는 있었다. 한 시대가 끝날 때, 과거의 기념물들이 마치 생존자처럼 남는다. 스베틀라나 보임은 노스탤지어의 회귀적 시선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일상생활 사이의 간극을 흐릿하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하며 소비에트 출신인 동시에 외부자의 눈으로 포스트소비에트를 면밀히 살핀다. 거리의 동상, 옛 이웃의 방의 서랍장과 벽면, 거리에서 만난 택시기사의 노래가사까지. 또한 보임은 러시아 문화가 오직 19세기와 20세기의 위대한 문학 전통에만 토대를 두고 있고, 그래서 러시아 문화는 국가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신화를 다시 본다. 철학과 문학, 대중오락물, 영화, 대중가요, 광고판을 분석하며 러시아 문화와 정신을 이해하는 단서를 준다. 공공 아파트 코무날카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경험으로 저자는 러시아 문화에서의 사회와 개인, 공과 사 영역을 내밀하게 살피며 감정표현과 의사소통의 방식, 평범한 삶, 집, 물질적 대상을 대하는 태도를 밝히며 러시아에서 “일상생활에 대해 쓰이지 않은 법칙들, 일상의 미학적 경험들과 공식담론의 외곽과 그 경계선 사이에 새겨진 대안적 공간들”(본문 20쪽)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보임은 이론적 공통의 장소를 거슬러 올라가며 수전 손택의 ‘캠프’, 밀란 쿤데라의 ‘키치’에 대한 논의를 끌어들이며 러시아에서 ‘키치’가 어떻게 변화와 근대화와 조우하며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 갔는지를 밝힌다. 이어, 러시아 정신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글쓰기광(문자 그대로 집필광)’에 대한 상세한 예를 통해 일상의 장소를 쓰는 것과 상투적 표현들(commonplaces)에 대해 쓰는 것을 지적하며 이는 소련과 동유럽, 중앙 유럽의 유산임을 이야기한다. “‘전신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의 병치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몇몇 세기의 전환기에 그 예술적 자질이 어떠하든 간에 비실용적인 종류의 글쓰기, 과학적 조광증을 지닌 노르다우와 같은 의사들은 초자연적인 이상으로 기울어진다. 이 특이한 타락 이론에 따르면 어떤 작가든지 간에 아픈 남자 혹은 히스테리를 가진 여자이고, 항상 글쓰기광의 직전에 있다. 반대로 러시아와 동유럽, 중앙 유럽의 글쓰기광은 의학적인 질병이 아닌 문화적 질병이다. 글쓰기광은 민족 문학의 건강한 정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차별적 용어이다.”(본문 297쪽) 경계에서 보는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 이 책의 저자 스베틀라나 보임은 스페인 내전의 난민의 자격으로 러시아에 정착한 망명자의 자녀다. 망명 전에는 게르첸 사범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미국 망명 후 보스턴 대학에서 스페인 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보임의 이력은 이런 가족사와 관련이 깊다. 미국으로의 망명은 레닌그라드의 코무날카 거주민이자 구소련의 ‘80년대 사람들’ 중 하나였던 보임의 지각을 재구축하게 했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회고적 해석은 러시아의 일상의 문화를 낯설게 만들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각과 인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어디서 어떻게 보냈든, 그리고 그 시절이 행복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그때의 시공간에 대해 약간의 향수를 항상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마지막 세대에 속했기 때문에 전체주의적 타락의 시대, 후기 브레즈네프주의적 회의적 시기에 레닌그라드의 개척자 캠프와 코무날카에서 보낸 나의 아름다운 어린 시절에 대해 무비판적인 향수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익숙함에 대한 갈망과 소원함을 결합시키는 반어에 의해 사유된 향수 장르를 단지 발전시킬 수 있을 뿐인데, 나의 경우에 이것은 익숙한 집단적 억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향수병과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 사이에 좋은 균형을 제공하고 이 균형은 문화신화학자에게 필요한 것이다.”(본문 486쪽)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떠올리게 하며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저자가 러시아와 갖는 독특한 관계에서 비롯된 장르적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보임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아닌 망명자로서 변화한 조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망명자의 경험은 문화인류학적인 여행 장르 속에서 구체화된다. 독자들은 망명자인 동시에 가이드가 되는 보임과 함께 러시아의 일상 세계로의 여행에 초대받아 레닌그라드의 코무날카부터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까지 다양한 일상의 장소를 거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