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고대 회의주의자는 자기 자신을 회의주의자라 부름으로써 스스로를 탐구하는 사람으로 기술한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유보하는 사람’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렇게 하여 자신의 탐구가 판단 유보로 이어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고대 회의주의자는 이론을 펼치지 않으며, 지식[앎]이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본질적으로 고대 회의주의는 탐구에 전념하는 삶의 방식이다. 고대 회의주의는 지식과 연관하는 만큼이나 믿음과도 연관한다. 지식을 획득하지 못하는 한, 그 무엇도 확언하지 않는 것이 회의주의자의 목표이다. 이로써 고대 회의주의자는 자신의 야심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인 것, 곧 믿음 없는 삶이라는 야심을 품게 된다. 데카르트 전통에 속한 몇몇 철학자는 자신이 일상적으로 믿는 것을 의심하고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와 달리 고대 회의 주의자는 스스로를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으로는 기술하지 않는다. 고대 회의주의자는 사태가 자신에게 가한 불일치 때문에 자신이 혼란에 처했다고 여긴다. 더욱이 고대 회의주의자가 기술하는 [인식적] 진전은 후대 사상가가 곧잘 활용하는 의심-믿음 모델과 다르다. 고대 회의주의자는 의심을 제거함으로써가 아니라, 혼란에서 판단 유보로 나아감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개선한다. 그렇기에 고대 그리스 회의주의를 재구성하는 가운데 근대의 의심 개념을 근본적인 것인 마냥 끌어오지 않는 편이 좋겠지 싶다. 아에네시데무스 회의주의의 기본 요소는 이렇다. 회의주의자는 현상들과 사유들을 대립 가운데 둔다. 이는 여러 현상 그리고/또는 사유 사이에서 등치isostheneia를 일으킨다. 여기에 판단 유보가 뒤따른다. 이와 함께 평정이 찾아온다. 회의주의자는 현상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사안에 관한 아에네시데무스의 견해가 어떠했는지를 우리가 상세히 아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아에네시데무스는 열 가지 논변 형식Ten Modes, 곧 트로포이Tropes를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트로포이란 회의주의자가 현상과 사유를 대립 가운데 놓을 때 활용하는 논변 형식을 말한다. 회의주의에 대한 논의를 이와 같은 식으로 짜는 것은 고대에서는 낯선 일이다. 고대에 활동했던 회의주의자와 그 반대자는 각기 일련의 직관을 가지고 상대방과 논쟁하는 사상가로서, [통 속의 뇌를 생각하는 현대의 사상가와는] 다르다. 어떤 거대한 힘을 가진 행위자가 세상을 만들고, 우리의 생각하는 능력 및 우리에게 현상하는 바로서의 세계를 어떤 의미에서 창조한다는 근대 초기의 생각을 통 속의 뇌 시나리오가 물려받는다는 점에서도 이 시나리오는 고대 회의주의와 이질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