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조각

루드빅은 공산 체제하의 프라하가 저속한 막시스트 물질주의의 지배 아래서 “정신과 취향의 쇠퇴, 마음의 빈혈증, 영혼의 실명”을 겪고 있을 때 프라하를 떠날 결심을 한다. “거짓과 기만을 포식하고 불구가 되어버린 자유와 그런 상태에 대한 만족”에 빠져버린 프라하에 등을 돌리고 서구로 떠나 11년을 보내지만, 그 사이 사랑의 배신을 경험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이 나라에 그를 위한 자리는 없다.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된 체코가 문호를 개방하면서 관광도시로 변한 프라하는 또 다른 물질주의에 종속되어 있다. 돌아온 프라하는 “자유를 포식하긴 했어도 이상은 불구가 되어”버린 곳이 되었고, 게다가 그의 젊은 시절의 우상이나 다름없었던 스승이자 정신적 아버지 브룸은 노쇠로 인한 긴 고통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날까지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더는 이전의 빛을 띠지 못하고 황폐화되어 있다. 루드빅에게 남은 것은 권태와 공허, 환멸 뿐으로 내면의 파멸 상태로 깊이 추락해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상황에서 그는 잇달아 비현실적인 기이한 만남을 경험하며 부조리한 느낌 속으로 빠져든다. 기차 안이나 은행, 식당, 병원, 신문 가판점, 심지어 거리에서도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며, 그가 마주치는 인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소금의 주제가 되풀이해 등장한다. 실비 제르맹의 『소금 조각』은 깊이 있는 서사와 상징적 요소들을 결합한 작품으로, 주인공 루드빅의 삶의 고통과 내면적 변화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실비 제르맹이 1986년에서 1993년까지 실제로 머물렀던 프라하를 배경으로,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정신적 위기를 겪는 개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루드빅이 현실의 무게와 내면의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시도처럼, 제르맹은 시적이며 철학적인 언어를 통해 소설 속에서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신화와 전설, 환상과 서정미를 결합한 제르맹의 작품은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며,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 놀라운 글쓰기의 과정에서, 작가는 주인공 루드빅과 독자를 권태와 절망의 나락에서 끌어올려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제르맹의 문체는 삶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재조명하며,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선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탐구로 독자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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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와호기심
3.0
우울한 목소리가 기분을 차분하게 해서 좋아요. 🙂
백지원
4.0
언젠가 다시 읽을 것
완융
4.5
쉽게 읽히거나 기승전결이 뚜렷한 책은 아니다. 서장에서 오래 머문 것만 보아도 나에게 이 작품은 곧장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었다. 활자만 눈으로 훑어버릴까 조바심이 들었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책에 집중해야 했다. 화자 루드빅은 오랫동안 스승 브룸과 머물던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곳에서도 공허함에 시달린다. 그는 여러 사람과 스쳐 지나며 대화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둘러싼 사유가 쌓인다. 이 책에서 “소금”은 그러한 의미 탐색을 상징하는 중요한 모티프다. 실비 제르맹의 사상과 문장이 돋보였지만, 무엇보다 번역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번역이 어긋나면 작가 전체를 포기하게 되지만, 이창실 번역가는 독해의 문턱을 낮추고 문장의 결을 잘 살려주었다. 서장에서 헤맨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고 느끼게 한 것도 번역 덕분이었다. 작품 속에서 인상 깊은 구절들이 많았다. 예컨대, 루드빅과 작업 중인 번역서의 출간 발행인 아담이 던지는 질문. “확고한 신념을 지닌 무신론자를 만나기란, 자신의 신앙에 평화롭고도 단단한 뿌리를 내린 신자를 만나는 것 만큼이나 드문 일이죠. 나로 말하면 고뇌에 빠진 비신자라는 애매한 종족에 속해요. 회의에 빠진 신자들도 있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본인은 어느 쪽인가요?” 이 대목에서 나 역시 잠시 멈춰 섰다. 확고한 무신론자, 평화롭게 뿌리내린 신자, 고뇌하는 비신자, 회의에 빠진 신자. 그리고 나는 어디쯤에 있는가. 신념이 단단한 것도 아니지만, 고뇌로 흔들리는 것도 아닌 어딘가의 경계에 서 있는 회의적 신앙인에 가까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루드빅과 하룻밤을 보냈던 카티아가 마트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나 건네는 말이다. “네가 이렇다 할 인사도 없이 가버린 그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손목에 둘려 있던 그 마른 오렌지 껍질처럼 말이야. 넌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근사한 시를 지어 보인 거야. 무능한 마음을 멋들어지게 고백한 거고.” 카티아는 이미 자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정립한 사람이고, 그 확고함 속에서 루드빅을 꿰뚫어본다. ‘무능한 마음을 멋들어지게 고백했다’는 표현에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진다. 카티아가 루드빅에게 묻는다. 네가 지닌 건 포도알인지, 광기의 씨앗인지. 루드빅은 짧게 답한다.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다고. 그러자 카티아는 술을 놓으며 말한다. “대립되는 무엇 없이 존재하는 건 없으니까. 따지고 보면 모든 게 관점의 문제고, 시각과 해석의 문제지.” 이 구절에서 예전에 읽었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이 있어야 쾌락이 성립하는가. 그러나 불행이 있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많은 불행을 견딜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불행도 행복도 없는 삶을 상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브랜디 한 잔을 따르고 아담의 건배사처럼 말해보고 싶어진다. “파산 당한 우리 살아 있는 자들의 건강을 위해 건배.”
🎁💤
4.0
내용은 기억 안 나는데 표현이 아름다웟다
윤희정
5.0
스포일러가 있어요!!
엄힘
2.0
스포일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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