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분노』의 작가 로런 그로프 신작
소설가 구병모, 천희란 추천!
조이스 캐럴 오츠 상 수상 |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버락 오바마,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 등 선정 올해의 책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운명과 분노』(2015)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쥔 소설가 로런 그로프가 단편집 『플로리다』(2018) 이후 삼 년 만에 새로운 장편소설 『매트릭스』를 펴냈다. 프랑스어로 시를 쓴 최초의 여성으로 알려진 12세기 실존 인물 마리 드 프랑스의 생애를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탁월하게 재구성한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시적이고 지적인 문체와 독창적인 세계관, 물 흐르듯 우아하면서도 몰입도 높은 서사를 어김없이 보여주며 “산문의 거장”이자 “동시대 가장 뛰어난 미국 작가 중 한 명”이라는 타이틀을 공고히한다. 『매트릭스』는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운명과 분노』에 이어 두번째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2021)에 올랐으며 조이스 캐럴 오츠 상(2022)을 수상했고,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 <파이낸셜 타임스> <에스콰이어> <마리 클레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NPR 등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전작인 『아르카디아』(2012)가 1970년대 히피 대안 공동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매트릭스』는 거의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거슬러올라가 십자군전쟁이 한창이던 중세의 혼란기 한복판으로, 그곳에 자리한 혁명적인 여성 공동체의 중심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가난한 잉글랜드 수녀원의 부원장으로 임명된 열일곱 살짜리 왕가의 사생아 마리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이 소외된 공동체를 부강한 불가침의 성역이자 오직 여성들만을 위한 유토피아로 바꾸어놓는 치열한 과정이 생생한 필치로 유려하게 펼쳐진다. 로런 그로프는 남성들만의 역사를 걷어내고 그 아래에서 번득이는 여성들의 지성과 비전을, 다채롭게 빛나는 우정과 사랑과 다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작가의 섬세하고 정밀한 언어 감각은 중세 수녀원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인물들은 물론이고 창문으로 들이치는 바람의 촉감까지 마법처럼 구현해내며 “팔백여 년 전의 중세에 동참한 듯한 긴박한 현장감으로 질식할”(구병모) 것 같은 느낌을 안기는 동시에, 남다른 기지와 지혜와 강인함으로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한 여성의 영웅적 삶을 조명하며 “오직 남성 중심으로 기록되어온 서사시의 새로운 원형에 도달한다”.(천희란)
존재 자체가 혁명인 여성, 마리 드 프랑스
그가 일군 공동체의 웅장한 일대기이자
오직 여성의 언어로 쓰인 서사시의 새로운 원형
1158년, 열일곱 살의 마리는 흩뿌리는 찬비 속에서 추위에 떨며 홀로 잉글랜드의 어느 왕립수녀원에 도착한다. 굶주린 스물 남짓의 수녀들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이 누추한 회색빛 공간은 왕가의 핏줄이지만 강간으로 잉태된 사생아라는 신분과 건장하고 ‘여성스럽지’ 않은 외모 탓에 평범한 귀부인의 삶을 누릴 수 없는 마리에게 주어진 감옥이자 유배지다. 이 우울한 수녀원처럼 그녀의 남은 인생도 온통 회색빛일 거라고, 절망 속에서 마리는 생각한다. 게다가 마리를 이곳으로 내쫓은 사람이 그녀가 가장 경애하는 빛나는 여인, 왕비 알리에노르라는 사실이 마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평생 한 번도 종교적인 믿음이나 신앙심을 가져본 적 없는, 남성의 갈빗대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여성을 열등한 성별로 취급하는 종교에 의문과 반감만을 가지고 있던 마리에게 수녀원은 너무나도 낯설고 척박한 곳이다. 물론 난데없이 왕비가 보낸 이 거대한 체격의 어린 신임 부수녀원장을 보는 수녀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다. 캄캄한 새벽부터 깨어나 어디에도 가닿지 않는 듯한 기도를 올려야 하는 고된 일과 속에서 마리는 다시 밝고 따뜻한 왕궁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왕비에게 바치는 진심어린 사랑의 시를 지어서 마음을 돌려보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왕비에게서는 매번 침묵만이 되돌아올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녀원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은 점차 희미해진다. 그러나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각오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 비참한 곳에서 주어진 삶을 최고로 살아내리라는 각오, 자신을 쫓아낸 자들이 스스로 한 일을 후회하도록, 언젠가 자신의 위엄을 보고 경외감을 느끼도록 만들겠다는 각오가. 그렇게 마리는 수녀원을 개혁하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계획에 돌입한다. 겸손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수녀들에게 각자 가장 못하는 일을 시키던 관행을 능력과 강점에 따라 배분하도록 고치고, 엉망인 회계장부를 정리하고, 직접 소작농들을 찾아가 위협하며 밀린 소작료를 걷는다. 처음에는 마리의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방침에 거부감을 느끼던 수녀들도 점차 수녀원의 운영이 체계화되고 생활이 풍족해지는 것을 보며 마리의 능력을 인정하고 따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마리의 권위 말고는 누구의 권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녀원이 늘 존재해온 이 땅에 계속 살겠지만, 그녀의 딸들은 세상과 멀리 떨어져 미로에 둘러싸인 채로 안전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끼리만 오롯이 지내며 자급자족할 것이다. 여자들의 섬이 되는 것이다. ” _본문 133쪽
어느덧 기도와 노동으로 점철된 삼십 년의 시간이 흘러 마리가 수녀원장이 되었을 때, 수녀원은 백 명에 가까운 수녀와 수십 명의 하인과 수많은 농노를 거느린 번영한 곳이 되어 있다. 그러나 마리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이따금 들이치는 바깥세상의 위협, 전쟁과 남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더욱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 방법을 고민하던 마리에게 동정 마리아의 첫번째 환시가 찾아온다. 사랑의 빛이 반짝이는 마리아의 얼굴과 함께 흩날리는 장미 꽃잎으로 된 미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리는 그것이 수녀원 주변에 미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임을 이해한다. 그들의 성스러운 집이 외부인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요새, 온전한 여자들만의 세계가 되도록. 그리하여 마리의 지도 아래 거대한 창조의 프로젝트가 개시된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여성들의 손에 의해 지상에 두번째 에덴동산이 형태를 갖추어나가기 시작한다.
역사 속에 묻힌 중세의 시인에서
과거의 땅에 미래를 건설한 위대한 여성 지도자로
이 소설에 영감을 준 실존 인물 마리 드 프랑스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12세기 잉글랜드 헨리 2세의 왕궁을 드나들며 유명한 로맨스 서사시와 우화집 등을 남긴 뛰어난 여성 시인이라는 것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로런 그로프는 대학에서 마리 드 프랑스의 작품을 번역하는 수업을 듣다가 까마득한 시간의 베일 속에 묻힌 이 인물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후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로프의 머릿속을 떠날 줄 모르던 중세의 시인은 21세기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점점 구체화되어, 과거의 땅에 미래를 건설한 강력하고 뛰어난 여성 지도자로 현재 속에 재탄생했다. “여성으로서 자율권을 잃어가는 이 나라에서 권력에 대해, 자율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낼 필요성”을 느꼈다는 작가의 말처럼 마리의 삶은 사실적으로 구현된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시의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몸으로 하는 일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잘못된 것은 없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녀는 한 번도 납득된 적이 없었다. 신도 당연히, 당신이 모든 일을 좋게 해냈으니, 모든 일이 좋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_본문 80쪽
로런 그로프가 형상화한 『매트릭스』 속 마리 드 프랑스는 외모부터 성격, 그리고 종교를 대하는 태도까지 당시 여성들에게 기대하거나 강요했던 전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마리는 신을 섬기는 순종적인 성직자가 아니라 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