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는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백남준의 책'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이 서구 예술계에서 평생 동안 추구해온 예술 세계의 바탕에 어떤 사상과 발상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기념비적 저작이다. 따라서 '백남준이 스스로 말하는 백남준'으로서 한국 사회에 독창적인 생각과 생명의 움을 돋우는 봄비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유럽의 뛰어난 백남준 연구자 이르멜린 리비어(Irmeline Lebeer), 에디트 데커(Edith Decker)가 공동으로 편집한 앤솔로지 북이며, 백남준의 시간관을 따라 역순으로 배치했다. 마치 VCR의 리와인드 버튼을 누른 것처럼 글의 연대순이 거꾸로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현재와 가장 가까운 "미디어의 기억"(1992)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마침내 이 땅에 살았을 때 김소월의 시 『먼 후일』로 작곡했던 1947년의 조숙한 악보에서 끝이 난다. 이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았던 백남준의 유목민적인 삶과 예술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구성이다. 그러나 이 책은 순서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백남준식 용어를 따르면 '랜덤 액세스(임의접속)'의 방법으로 보는 편이 낫다. 자유와 인연, 이것이 백남준이 좋아했던 바였다. 이 책은 단순히 백남준을 해명하기 위한 선집이 아니며, 한 특출난 예술가의 발상과 마주침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영감의 서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통속적인 평판으로만 알려져 있는 백남준의 핵심이 이 책에서 때로는 추리소설처럼, 때로는 산문처럼 다가올 것이다.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는 한국에서 백남준 연구의 본격적인 서막을 열어젖힐 만큼 강렬한 실험과 독창적인 모험의 기록이 가득하다. 서구 아방가르드 음악계에 진입하기 위해 분투하던 음악청년 백남준, 13대의 실험 TV를 직접 다루면서 탄생한 비디오 아트의 내막을 들려주는 젊은 날의 백남준, 그리고 미국 공중파 TV 방송국을 넘나들면서 미국의 네트워크 전국망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예술로 나아가고 나중에는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촌으로 생중계되는 우주 오페라를 실현하는 풍운아 백남준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의 재미는 백남준 특유의 솔직함, 위트와 유머에 기인한다. 이 책은 곳곳에 TV나 비디오, 비디오합성기 같은 기계에 관한 전문적인 부분과 당시 서구 예술계에서 유명했지만 우리에게 낯선 예술가들의 이름이 즐비하게 나온다. 그런 점 때문에 몇몇 부분에서 난해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백남준이 다른 예술가들을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는 재치있는 촌평과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매우 재미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백남준이 누구보다 에고가 없는 예술가라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것이 예술가의 이기적 유전자인데, 이 책의 화자는 항상 자기 아닌 타인을 이야기하면서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백남준은 21세기의 사상가이다.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는 기존의 인간을 넘어선 인간의 삶의 양식을 생각하고, 그런 바탕에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사상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나 위성 아트처럼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예술 활동을 펼쳤는데, 그의 궁극적인 문제의식은 쏟아져 나오는 뉴미디어에 현혹된 타입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보편적인 삶의 문제, 삶 정치의 장 안에서 다루는 타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백남준은 우리 곁에 돌아올 것이다. 1984년 1월 1일 지구촌의 서막을 연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함께 그는 금의환향했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예술은 무엇인지,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가 꿈꾼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재창조해야 하는 것은 이 책의 출간 이후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유목민이자, 21세기 예술의 선구자로서 백남준을 알고 느끼기 위하여 이 책은 키-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