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여기서 심문의 대상이 될까?
자살해야 해. 그런데 살고 싶어.”
이 글에서 말할 수 없는 주제들, ‘이다음’에 오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더욱 섬세하게 말해져야 하고 더 많은 경험이 발견되어야 한다. 어느 한 명이 집단을 대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각각의 소수자들에게는 강요되는 모델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경험에 누군가 남긴 말은 이러했다. 당신은 변태성욕자일 뿐 동성애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성애자가 성적으로 활발하다고 하여 그에 대고, 당신은 변태성욕자일 뿐 이성애자가 아니라고 말하진 않는다. 나는 이 강요되는 건강함, 모범적인 모델, 시민권을 승인받으려면 연출해야 하는 무해하고 건강한 정체성을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 치료하면 전파하지 않는다고, U=U가 상식이 된 세상에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벽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_본문 중에서
MSM 퀴어활동가 유성원 첫 산문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개정판 출간!
MSM 퀴어활동가 유성원, 소수자에게 강요되는 건강하고 온건한 규범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기 서사로 큰 충격을 주었던 그의 첫 산문집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개정판이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초판은 2019년 독립출판의 형태로 <동성캉캉> 전시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2020년 정식출간 이후 입소문과 추천을 통해 독자에게 도달하며 극렬한 거부 반응과 찬사를 동시에 이끌어냈다. 이 책은 프렙, 항문성교, 크루징, U=U와 같은 게이 남성의 성적 실천을 직접적으로 다루며 퀴어 커뮤니티 안팎에서 공론의 장을 만들어냈다. “당신은 변태성욕자일 뿐 게이가 아니”라는 소수자 안의 소수자로 성적 실천과 자기 탐구를 계속해나간 그는 새롭게 펴내는 개정판에서 자신을 ‘게이’라는 정체성으로 환원하는 대신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을 뜻하는 ‘MSM(Men Who have Sex with Men)’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그가 주류 사회에 받아들여지려는 온건하고 규범적인 소수자성을 지닌 ‘게이’와는 다른 위치에서 성적 실천의 다양성과 비규범적 관계성을 탐구하며 자신을 기존 사회에서 제시한 정체성의 틀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또한 HIV감염은 성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며 성적 행위에 기반함을 그리고 그 위험을 감소시킬 방법이 존재한다고 대중에게 알리는 활동가적 실천이자 무지에서 비롯된 HIV감염인 혐오에 정면으로 맞서는 도전이기도 하다. 퀴어활동가이자 작가 유성원은 2025년 같은 날 동시 출간된 그의 첫 소설 『성원씨는 어디로 가세요?』에서 자신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소설 속 화자를 HIV감염에 취약한 상황에 적극 노출시킴으로써 사회가 부여한 낙인과 도덕적 판단에 대한 의문을 독자에게 넘긴다. 그의 소설을 이론적으로 친절히 보충하는 텍스트가 바로 이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이다.
이 책은 ‘이것도 성적 권리야?’라고 반문하게 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성적 권리를 확장한다. 가장 성적 권리를 얻을 자격이 없고 심지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고 상상되는 문란한 게이와 HIV감염인의 위치에서 성적 실천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권리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계층, 사는 곳, 가족 관계, 성정체성에 대해 수용하는 방식, 정신건강 등이 어떻게 상호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게 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행위나 관계가 주는 여러 가지 감정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공포와 분노, 수치심과 자긍심의 토대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고 느낀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나이, 외모, 소득, 인적 자원의 차이를 인식하는 일과 다양한 성적 욕망과 실천이 만들어지는 것, 그 안에서 건강과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 것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우리 앞에 과제로 놓여 있다.
―나영정 해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언제,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