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의 낙원은 늘 폐허 위에서 시작되었다
김초엽, 천선란, 김혜윤, 청예, 조서월
한국과학문학상 10주년 대표작가 앤솔러지
“지금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볼까요?”
이에 대한 다섯 작가의 공통된 응답, “죽음 너머, 그리고 사랑”
SF 전문 출판사 허블에서 한국과학문학상 10주년을 기념하여 수상 작가 다섯 명과 함께 SF 앤솔러지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를 선보인다. 허블 편집부는 김초엽, 천선란, 김혜윤, 청예, 조서월 작가에게 “지금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 “솔직하게 마음이 가는 이야기”를 써달라 요청했고, 작가들은 “죽음 너머의 세계”, “그곳에 남은 사랑”이라는 공통된 응답을 내놓았다. 서로 의견을 나누지 않았음에도 작가들이 “죽음”, “사랑”을 공통 주제로 쓰게 된 이유는 작가노트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작업하는 데 무척 오래 걸렸다. (…) 일상이 그럭저럭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 통째로 흔들리는 일련의 사건들(내란을 비롯한 이후의 여러 사태들).”
_김초엽, 작가노트 중에서
“소설을 쓰는 내내 가장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싸움이 두 개 있었다. (…)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의 고공 농성. 그리고 파주시 용주골 시위”
_김혜윤, 작가노트 중에서
이처럼 죽음과 멸망의 징후가 일상이 된 현실의 영향을 받아, 다섯 작가는 죽음 너머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는, 그리고 그런 세계에 속한 우리의 마음에는 무엇이 어떻게 남을까? 이 질문에 대해 다섯 작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라진 존재와 남겨진 존재 사이의 관계를 그려낸다.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 현실 너머의 낯선 시공간을 꾸준히 상상해 온 김초엽은 「비구름을 따라서」에서, 소중한 이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이 그와의 과거 기억, 그가 간직했던 상상, 그가 알려주었던 평행 세계의 흔적들을 조각조각 모아가며 결국 독특한 마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천선란 또한 흥미로운 상황과 인물을 배치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이전 작품들에서 세계의 마지막을 계기로 단절돼 있던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연결 가능성에 주목해 온 그는 「우리를 아십니까」에서 버려진 지구를 배경으로 좀비도 인간도 아닌 화자가 자신처럼 새로운 종이 되어버린 아내와 목소리를 얻게 된 거북이와 함께 떠나는 로드무비를 그려낸다. 좀비의 육체로서 무너지는 감각과 기억이 뒤섞인 경계 속에서 세 존재의 이야기가 아슬아슬하게 전개된다.
이어서 김혜윤은 기존 작품에서 그 무엇도 배제하지 않고 기꺼이 맞서 싸우려는 주제의식을 이어가며, 「오름의 말들」에서도 외계 생명체 ‘오름’을 등장시키되 현실의 작동 방식과 그로 인한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오름을 난민과 같은 핍박받는 존재로 설정해 낯선 국면을 펼쳐 보이며, 죽음의 공포를 마주한 순간 소통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관계와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묵직하게 되묻는다.
청예는 전작 『오렌지와 빵칼』에서 보여준 윤리의 경계를 뒤흔드는 상상력과 감각을 「아모 에르고 숨」에서도 가차 없이 드러내며,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복제체를 통해 불편하면서도 매혹적인 사랑 실험을 펼친다. 원본과 복제가 뒤섞인 순간 속에서 ‘궁극적 사랑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진위를 무의미하게 만들 만큼의 강렬한 욕망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조서월은 생명도 마음도 다시 싹틀 수 없을 만큼 척박한 토대에서 탄생의 징후를 포착해 온 기존의 시선을 「I'm Not a Robot」에서도 이어간다. 이번 작품은 홀로 남은 인간과 로봇 사이에서 진정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메타소설적 방식으로 전개하며, 인간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든 해나가려는 존재의 태도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마침내 그것을 감당하려는 조용한 결의를 드러낸다.
이처럼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은 공통적으로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강렬한 감정, 사랑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을 마주했거나 통과한 존재들은 그 감정을 통해 여전히 다른 존재와 연결되며, 무너진 세계의 잔해 위에 자신의 마음을 다시 세우고, 그 위태로운 감정에 끝까지 머무는 방식을 택한다.
“그럼에도 저 너머 세계의 이연이 보민을 이곳으로 초대했다. 보여주고 싶어. 이연을 붙들어 주었던, 이연을 살게 했던 그 세계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김초엽, 「비구름을 따라서」
「비구름을 따라서」는 죽은 룸메이트 ‘이연’의 이름이 적힌 추도식 초대장이 도착한다는 미스터리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처음엔 장난이라 여겼던 화자 ‘보민’은 집 안 곳곳에서 계속 발견되는 초대장과 제멋대로인 날짜, 이름을 보며 점차 이상한 감각에 휩싸이고, 끝내 이연이 직접 보낸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을 품게 된다. 보민은 초대장을 따라 낯선 추모식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과거 이연과 인연이 있었던 ‘정 실장’과 ‘승희’를 마주한다. 각기 다른 정보를 담은 초대장을 들고 온 이들과 함께 보민은 이연의 흔적을 더듬기 시작하는데, 그 중심에는 ‘노바 파우치’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뽑은 토큰을 단서로 상상의 세계를 펼쳐가는 이 게임은 이연이 자주 이야기하던 ‘반투막 너머의 세계’를 연상시켰고, 보민은 정 실장과 승희의 이야기를 통해 그 세계가 단순한 상상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다. 세 사람은 점차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연과의 마지막 기억 조각들을 맞춰가며, 그 끝에서 이연의 세계를, 그리고 이연을 기억하는 자신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천국은 바라지도 않아. 어디든 저승의 남은 땅에 같이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가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데.“
―천선란, 「우리를 아십니까」
「우리를 아십니까」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건강 상태에 놓인 화자가 존엄사를 앞두고 좀비에게 물린 뒤, 인간도 좀비도 아닌 존재로 깨어나며 시작된다. 오랜 혼수 끝에 눈을 뜬 화자는 자신처럼 인간도 좀비도 아닌 새로운 종이 되어버린 아내, 그녀가 남긴 녹음기, 그리고 감염 이후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거북이 ‘장풍’과 마주한다. 왜곡된 감각과 흐릿한 기억이 겹쳐지는 세계 속에서, 화자는 아내와 함께 장풍을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한다. 움직일 수 없는 아내를 리넨 카트에 싣고 길을 나선 그는, 녹음기를 통해 좀비 사태 이후에 벌어진 일들, 홀로 남은 아내가 혼수 상태였던 자신을 보호하면서 어떻게 어디까지 버텨왔는지를 들으며 무너진 세계의 단면들을 따라간다. 그 과정 속에서도 오래전 평화로웠던 아내와의 기억들이 틈입하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감각 속에서 화자는 마침내 바다에 도착한다. 장풍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후, 해변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둘만 남게 된 지구라는 폐허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 발화 이후 희정은 새로운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놀라워했고 그 감각을 소중히 여겼다. (…) 오름과의 대화는 지금껏 익힌 어떤 언어보다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김혜윤, 「오름의 말들」
「오름의 말들」은 목소리 대신 전기 자극으로 감정을 주고받는 외계 생명체 ‘오름’과, 그들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언어학자들의 이야기다. 햇빛만으로 생존하며 인류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오름은, 그 거대한 몸과 낯선 방식 탓에 처음부터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스포츠 클라이밍과 이진법을 활용해 오름과의 첫 접촉에 성공한 언어학자 정희정과 감정 기반의 언어 해석에 능한 암호학자 이류는 협력하며 오름의 언어와 세계를 점차 이해해 나간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일상은 오래가지 못하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국가는 오름을 ‘연구 대상’에서 ‘상품’으로 바꿔 보기 시작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거세지자 오름은 교류를 끊기에 이른다. 연구팀은 해산 위기에 놓이고, 희정은 타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