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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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그 이면의 거대 기획을 파헤치려는 시도| ‘반反휴머니즘의 기수’, ‘우상 파괴자’, ‘철학계의 선동가’, 존 그레이가 다시 돌아왔다. 전작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서구 계몽주의라는 거대한 유산을 거침없이 비판하며 단숨에 대중 지식인의 반열에 오른 뒤로, 존 그레이는 이 시대 가장 도발적이며 논쟁적인 저자라는 평을 받아 왔다. 1998년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예언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환상』에서부터 2007년에 쓴『추악한 동맹』까지, 존 그레이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가로지르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밝히고 그 파괴적 결과를 예측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세상을 전체화하려는 정치 기획과 그 안에 내재한 유토피아적 이상이 주된 비판 대상이었다면 진보에 대한 희망이나 종교적인 구원의 약속 따위를 배제한 ‘현실주의’는 그의 공격 무기였다. 『추악한 동맹』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존 그레이는 “다음에는 과학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2008년,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글을 쓰는 데 할애하겠다며 런던 정경대 교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이 책, 『불멸화위원회』다. “지적인 문제든 윤리적 문제든, 모든 문제를 과학의 힘을 빌려 풀 수 있다는 생각”에 물음표를 던져보고 싶었다는 존 그레이는 역시 이 책에서도 “과학은 마법으로 가는 통로일 뿐이었다”고 말하며 적잖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다윈의 발견 이후,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인간도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자연 선택의 우연한 결과일 뿐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함축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러나 다윈의 발견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피하고픈 끔찍한 현실이었다. 인간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에서 언젠가 영원히 사라져 버릴 그런 존재라면 삶의 의미나 가치, 그리고 이상 따위는 다 쓸모없어질 게 뻔했다. 그 혼돈과 허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람들은 더욱 삶에 집착했고 이는 죽음을 거부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불멸화위원회』에서는 두 가지 시도가 다뤄진다. 빅토리아시대 저명인사들이 비밀리에 행하던 ‘교령회’와 소비에트의 볼셰비키 지식인 분파가 주도한 불멸화 기획이 그것이다. 영국 심령주의자들이 과학으로 영혼의 사후 지속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러시아 지식인들은 아예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존 그레이는 여기서 종교와 과학, 그리고 주술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지점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의 부조리와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죽은 자의 귀환과 냉동된 시체, 그리고 주술적 과학의 헛된 약속| 『불멸화위원회』는 찰스 다윈이 교령회에 참석했던 일화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날 교령회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윈은 지인에게 “교령회는 속임수였다”는 편지를 쓴다. 찰스 다윈은 탐탁지 않았을지 몰라도, 어쨌든 교령회는 다윈의 발견이 낳은 부산물이었다는 게 존 그레이의 주장이다. 다윈과 더불어 자연 선택 이론의 공동 발견자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심령주의를 ‘전적으로 사실에만 기초를 둔 과학’이라며 옹호했던 건, 다윈 이후 세계가 재주술화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영국의 지식인들은 유령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받아쓰는 ‘자동 기술’과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자동 기술된 문서를 대조해 사후 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교차 통신’에 몰두했다. 교차 통신은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을 따라 이루어졌다. 과학이 세계를 탈주술화했다면 과학만이 세계를 재주술화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의 철학자 헨리 시지윅, 영국 수상을 지낸 아서 밸푸어, 프로이트 이론을 영국에 처음 소개한 프레더릭 마이어스, 여권주의자인 위너프리드 쿰브-테넌트 등, 내로라하는 저명인사들이 모였다. 참석자 대부분은 그저 영혼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은 자들이 내세에서 현세로 ‘메시아’를 보내 인류를 혼돈에서 구원해 줄 거라 믿었다. 20세기 ‘영적 혁명’을 이끌었던 크리슈나무르티도 그렇게 선정된 ‘메시아’ 가운데 한 명이었다. 러시아에서도 과학이 드러낸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학에 기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스스로를 다윈의 후예라 여겼지만, 사실은 다윈 이론의 변종인 라마르크의 진화론에 경도돼 있던 볼셰비키 지식인 분파, 건신주의자들이었다. 작가인 막심 고리키나 비밀경찰의 간부들이 대표적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트로츠키나 스탈린도 여기에 속해 사실상 볼셰비키의 혁명 사상을 뒷받침했다. 그들에게 진화는 목적 없는 과정이 아니라 진보를 향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진보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어김없이 숙청되었다. 농장 집단화와 강제 수용소, 즉결 처형이 횡행했고, 최소 2천만 명에서 6천만 명이 희생되었다. 진보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완전히 새로운 종, 즉, 사회주의 혁명에 적합한 인간형으로 탈바꿈하는 데 있었다. ‘창조된 인민’이라는 말이 쓰였고 ‘순수한 사고’로 존재하는 불멸의 초인이 궁극적 목표가 됐다. 레닌은 세 개의 육면체로 이뤄진 묘 안에 안치되어 불멸과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 |죽음이 있어 삶은 더 생생하다!| “달콤한 필멸”이라는 제목이 붙은 마지막 장에서 존 그레이는 불멸주의가 오히려 인간 소멸 프로젝트가 되는 역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세에서 영원한 안식을 추구하려 했던 영국의 심령주의자들은 현세에서 유령과 같은 삶을 살았고, 현세에서 불멸을 꿈꿨던 러시아 사람들은 죽음 같은 내세의 삶을 살았다. 죽음을 피하려는 시도가 여전히 생명 연장의 노력 속에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는 늘 죽음의 눈치를 보며 생기 없는 삶을 살아간다. 다른 저작과 마찬가지로 『불멸화위원회』에서도 존 그레이는 모든 희망과 바람이 제거돼 앙상하게 뼈다귀만 남은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지식이 성장해도, 인간을 인간이라는 조건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과학은 대량 살상 무기나 열악한 자연 환경처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만을 자꾸 만들어 낸다. 그 결과 우리는 매번 과학이 드러내는 혼돈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이 모든 전망 앞에서 중요한 건, 그레이가 제시하는 현실을 온전히 껴안을 수는 없다 할지라도 그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