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장인(匠人)이 있다.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살이의 저울이요 세상살이의 균형추가 되는 지도를 나라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으로, 온 백성이 지도로써 자신들의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가꿀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제 나라 강토를 온전히 담아낸 ‘지도’만이 묵묵히 전해내려올 따름이다. 우리는 그를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라 부른다.
평생 꿈꾸어온 것이 무엇이었던가.
조정과 양반이 틀어쥔 강토를 골고루 백성에게 나눠주자는 것이고, 조선이라는 이름의 본뜻이 그러하듯, 강토를 세세히 밝혀 그곳에서 명줄을 잇고 있는 사람살이를 새롭게 하고자 한 것뿐이다. 땅의 흐름과 물의 길을 잘 몰라 떠도는 사람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그뿐이다. _본문에서
그리고, 또 한 명의 장인(匠人)이 있다.
누군가는 김정호가 너무 상세한 지도를 그려 첩자로 오인받아 감옥에서 죽었다고 했고, 또다른 누군가는 그가 를 그리기 위해 백두산을 십여 차례나 답사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던 김정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고, 역사 기록이 빠뜨린 부분을 인문학적 통찰력과 작가적 상상력으로 복원해낸 작가가 있으니, 그가 바로 소설가 박범신이다.
그 동안 김정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역시 모두가 옛이야기 같은 설화적인 내용이었다. 고산자는 그것이 억울한 듯, 내 꿈속에 나타나 우두커니 서서 침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결국 나는 그이를 피해갈 수 없는 게 내 카르마가 아닐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이는 통찰력이 뛰어난 인문학자였고, 조국을 깊이 사랑했던 산인(山人)이었으며, 집념이 강한 예술가였다.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았으나 칠월 중순경 어느 날 새벽, 나는 원고지를 펴놓고 처음 ‘古山子’라고 썼다. _‘연재를 시작하며’(계간『문학동네』2008년 가을호)에서
힘껏 벼린 문장, 장중한 울림!
한땀 한땀 복원한 고산자 김정호의 한 생애
끊임없이 우리 소설문학의 지평을 넓히며, 언제나 열정적인 작품활동으로 독자들을 만나온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이 계간 『문학동네』 2008년 가을호부터 총 4회에 걸쳐 연재했던 『고산자』는 조선시대의 가장 정확한 실측지도로 평가받는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다수의 지도와 전국지리지를 편찬한 고산자 김정호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김정호는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 제작자이자 지리학자로 존경받고 있으나, 정작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전해져오는 생존 시기도 추정일 뿐이고, 그의 고향은 물론 본관, 신분조차도 여러 설(說)로만 전해질 따름이다. 또한 교통도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어떻게 그처럼 오차가 거의 없는 과학적인 축척지도를 그릴 수 있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동여지도>에 독도를 누락시켜 오늘날까지도 독도를 제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말거리를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고산자』는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작가가 내놓은 나름의 답이라 할 것이다.
작가는 『고산자』를 통해 김정호의 생애를 복원함으로써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했고, 그래서 세상과 계속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뼈저리게 지켜온 강토에서, 나와 우리가 지금 계속 이어 살고 있다는 큰 위로와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작가가 공들여 써내려간, 힘껏 벼린 한 문장 한 문장으로 다시 살아온 고산자 김정호. 평생 시대로부터 따돌림당했던 고산자(孤山子), 백성에게 지도를 돌려주고자 하는 높은 뜻을 품고 있던 고산자(高山子), 고요하고 자애로운 옛산을 닮고 그에 기대어 살고 싶어했던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물려준 위대한 유산은,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산처럼,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흘러가는 유장한 강처럼 우리의 삶과 영원토록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