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노벨문학상 수상
다성악 같은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
_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살아남은 여성 200여 명의 목소리
침묵을 강요당했던 그녀들의 눈물과 절규로 완성된
전쟁문학의 기념비적인 걸작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가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 백만 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하여 싸웠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되지 못한다. 이 책은 전쟁에 참전했던 200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여성들은 참전하여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기도 했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전쟁을 겪은 여성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변했으며,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건 어떤 체험이었나?
이 책에서 입을 연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전쟁 가담 경험을 털어놓는다. 여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은 전쟁 베테랑 군인이나 남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온 이야기이다.
여성은 말한다, 전쟁의 추하고 냉혹한 얼굴, 배고픔, 성폭력, 그들의 분노와 지금까지도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이 책은 1985년 첫 출간되었고, 2002년 저자는 검열에 걸려 내지 못했던 부분까지 추가하여 다시 책을 출간했다.
작가가 인터뷰한,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200여 명의 여인들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네들은 숭고한 이상이니 승리니 패배니 작전이니 영웅이니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전쟁이라는 가혹한 운명 앞에 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여인들은 전장에서도 여전히 철없는 소녀였고, 예뻐 보이고 싶은 아가씨였고, 자식 생각에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엄마였다.
처음 사람을 죽이고 엉엉 울어버린 소녀, 첫 생리가 있던 날, 적의 총탄에 다리가 불구가 돼버린 소녀, 전장에서 열아홉 살에 머리가 백발이 된 소녀, 전쟁에 나가기 위해 자원입대하는 날 천연덕스럽게 가진 돈 다 털어 사탕을 사는 소녀, 전쟁이 끝나고도 붉은색은 볼 수가 없어 꽃집 앞을 지나지 못하는 여인, 전장에서 돌아온 딸을 몰라보고 손님 대접하는 엄마, 딸의 전사통지서를 받아들고도 밤낮으로 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늙은 어머니……
여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우리는 죽음이 맴도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따뜻한 피가 흐르고 맥박이 뛰는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들을 만난다. 평범하고 순박한 우리의 여동생과 언니 또는 누나와 엄마를. 전쟁 앞에 산산조각 나버린 그네들의 일상과 꿈과 사랑을. 그래서 더욱 전쟁이 잔혹하고 무섭다. 여인들은 요란한 구호나 거창한 웅변 하나 없이 조용히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돌아보게 한다.
_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은 여자들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우리에게 하지 않은 전쟁 이야기, 전쟁의 민낯. 그런 전쟁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남자들은 전쟁에서 거둔 승리와 공훈과 전적을 이야기하고 전선에서의 전투와 사령관이니 병사들 이야기를 하지만, 여자들은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들은 전장에서도 사람을 보고, 일상을 느끼고, 평범한 것에 주목한다.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의 공포와 절망감이라든지, 전투가 끝나고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진 들판을 걸어갈 때의 끔찍함과 처절함을 말한다. 전장에서 첫 생리혈이 터져나온 경험, 전선에서 싹튼 사랑 이야기도 있다. 그녀들의 눈에 비친 전사자들은 모두 젊거나 어린 병사들이다. 적군인 독일 병사도 아군인 러시아 병사도 모두 가엾기만 하다.
전쟁이 끝나고도 여자들에겐 또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들은 전쟁을 기록한 책이나 부상자들에 대한 서류를 숨겨야 했다. 왜냐하면 다시 예쁘게 미소짓고, 높은 구두를 신고,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여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전우였던 여자들을 잊어버렸고 또 배신했다. 여자 전우들과 함께 거둔 승리를 빼앗고 독차지했다. 그렇게, 여자들의 전쟁은 잊혀버렸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돌보는 가정이 여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제2차세계대전은 여자들을, 심지어 어린 소녀들까지 전장으로 내몰았다. 조국과 가족의 이름으로 여자들은 총칼을 들고 전선에서 남자들과 똑같이 싸워야 했다.
작가는 이처럼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목격한 여자들 200여 명의 이야기를 정리해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들의 처절하고 가슴 아픈, 다양한 사연들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가감 없이 들려준다. 그녀들 각각의 이야기는 200권의 소설과도 맞먹는 강렬한 충격을 준다. 평범한 소녀이고 아가씨였던 각 사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침착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엔 그때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