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 송
India Song
1975 · 로맨스/판타지/드라마 · 프랑스
2시간 00분 · 전체

1930년대의 인도. 프랑스 대사관 부영사의 아내인 안느 마리(델핀 세이리그 분)은 인도의 더운 날씨가 견딜 수 없이 싫다. 그녀는 인도의 더위와 답답한 생활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그 짜증은 덥다는 이유로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안느는 사랑을 찾아나선다. 한편, 그녀의 남편(미쉘 롱달 분)은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지만 아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고 짐짓 모른 척 지낸다. 그러나 그녀가 정작 원했던 것은 남편의 사랑이었다. 단지 그가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밖으로만 나돌았던 것. 남편은 그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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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
2.5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보면 제대로된 감흥을 받기 힘들듯 일단 나는 그랬다
Dh
3.5
혼탁한 하늘의 캄캄한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 #허무 #절규 #서울아트시네마 × 로카르노 인 서울
Jay Oh
4.0
실체와 동떨어진 이미지 속에서 질식하기. In the love for mood. Suffocating in images, detached from the actual.
양기연
4.5
초반부의 한 장면. 인도인 집사가 방에 불을 켜고 움직인다. 그 순간 벽틀(프레임) 너머 또다른 공간이라 생각했던 공간에 인도인 집사의 모습이 비친다. 전혀 별개의 공간이라 여겼던 그곳이 사실은 거울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 벽틀(프레임)을 사이에 두고 그 너머 저 쪽의 공간은 이 쪽의 공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인도인 집사가 외화면으로 사라지고 백인 여자가 외화면에서 내화면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이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백인 여자가 거울 앞을 지나는데도 그 여자의 형상이 거울 앞에 비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백인 여자가 다시 외화면으로 벗어난 다음에야 그 여자의 형상이 비로소 거울에 비쳐 보이기 시작한다. 거울 이편의 세계를 반영하나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거울 저편의 세계. 거울을 사이에 둔 두 세계가 반영의 논리로 단단히 묶여 있으리라는 믿음은 너무 쉽게 무너진다. 카메라 렌즈라는 거울을 사이에 둔 두 개의 세계, 현실이라는 세계와 영화라는 세계가 서로를 온전히 반영하리라는 관객의 믿음 또한 이토록 빈약하고도 불안하다. . 뒤라스의 <인디아 송>은 이와 같이 불안한 영화적 믿음의 흔적을 이미지의 세계와 사운드의 세계 간의 불화로 표현한다. 영화는 부러 이미지의 세계와 사운드의 세계가 서로 조응하지 않도록 하다가도 이따금 둘의 세계가 조응하는 듯 관객을 착각에 빠뜨린다. 그 순간의 착각들로 인해 관객은 두 세계가 언젠간 어떠한 방식으로든 온전히 조응하리라는 믿음을 결코 버리지 못한다. 어쩌면 저 목소리들은 화면 속 인물들의 의식의 반영이 아닐까? 어쩌면 저 목소리들은 화면 속 시점의 과거 혹은 미래 시점의 목소리가 아닐까? 어쩌면 화면 속 인물들이 프레임 밖 외화면으로 벗어난 순간에나마 두 세계가 조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객은 이렇게 온갖 상상을 해 가면서까지 두 세계의 융합을 믿고 싶다. 이미지의 세계에서는 여자와 함께 하는 남자들의 수가 불어나고, 사운드의 세계에서도 나레이터들의 수가 불어나, 양쪽 그 각각의 세계 내에서도 서로 조응하지 않는 복수의 세계로 세포분열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관객은 끝내 그 믿음의 끈을 놓지 못한다. . 두 육체가 서로 맞닿은 채 함께 춤을 추는 그 찰나의 순간 나의 세계와 상대의 세계도 맞닿았노라고 착각에 빠져, 두 세계가 영영 다시 조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 세계가 언젠간 하나 되리라는 믿음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 바로 '사랑' 또한 이러한 영화적 믿음과 유사한 믿음을 공유한다. . 나아가 유럽이란 이름의 세계와 아시아란 이름의 세계가 제국과 식민지의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서구 열강 백인들의 일방적인 믿음 또한 위와 유사한 형태의 믿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여인이 결혼으로 새로운 성씨를 부여받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누군가는 그녀의 결혼 전 처녀 시절의 이름을 끝까지 비명처럼 호명하듯, 이미지의 세계를 백인들의 얼굴과 유럽식 건물로 채우고 사운드의 세계를 백인들의 언어로 채운다고 하더라도, 강제적으로 맺어진 식민의 더께를 걷어내고 지도에도 새겨져 있는 그 땅의 역사를 누군가는 끝까지 부르짖을 것이다.
김병석
4.5
주체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 몸짓과 목소리만이 거기 남아 나른한 왕복 운동을 한다. 결국에 그 둘도 서로의 곁만 맴돌다 잦아들겠지.
sendo akira
4.0
영화라는 이미지가 주는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는 어떤 작가들을 우연치않게 마주했을때에 그 희열은 말로 쉽게 표현할수가 없다 잘 만들어진 회화를 감상하듯 아름답고 럭셔리하고 품위있는 귀족들을 거울에 비춰보건데 그 반대편엔 무기력함,권태가 부유하듯 그렇게 거울속을 떠다니니 하루 하루 먹고살기위해 눈코뜰새없이 바쁘고 힘들었던 당대의 낙후된 아시아인들이 보건데 저 자기환멸과 지루함에서 오는 권태로움은 얼마나 사치스럽게 느껴졌을까 영혼이 나병으로 잠식당한것같은 그들이 들려주는 아이러니하게도 극도로 아름다운 선율과 보이스
지하인간
5.0
<인디아 송>은 1인칭 서술자 시점으로 3인칭 관찰자 시점에 의해 타자화된 스스로를 응시한다. 인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자아를 형성해 나아간다는 라캉의 말처럼 이 영화는 거울에 비친 형상에 유난히 집착하며 스스로를 객체로 분리시키는 동시에 주체가 되고 마치 하나의 인간이 된 듯 자아를 구성한다. 표상되는 이미지를 분리시키고 그곳에서 서술되는 사운드 끄집어내는 의도적인 불일치가 변증법적으로 맞물려 나아가며 영화는 자기 자신이 아닌 동시에 자기 자신이 된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자아는 역시나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며 그저 우울감과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인디아 송>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를 통해 지극히 영화적인 동시에 또한 지극히 문학적인 경지에 이르렀고, 여기에는 논리적인 오류는 없으며 그저 경탄스럽고 숭고한 이율배반만 있을 뿐이다. 지금껏 적잖은 영화를 감상했고 영화 예술의 매체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연출된 작품도 다양하게 경험해 보았다고 믿었지만 이 영화가 시도하고 있는 형식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수준이었다. 이런 식의 연출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그저 내 상식선을 벗어난 경지에 있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을 듯 싶다.
김재범
4.5
"<인디아 송>은 우리에게 모든 목소리들을 들려주는 음향 이미지와, 우리에게 침묵하는 지층도(stratigraphie)를 읽도록 하는 시각적 이미지가 이루는 준안정적 평형상태다" - 질 들뢰즈, 시간-이미지, 3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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