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Ladri di biciclette
1948 · 드라마 · 이탈리아
1시간 29분 · 12세

![[내부] 구독권 할인 프로모션 보드배너_3차](https://an2-img.amz.wtchn.net/image/v2/3O-dFqcg8jb_tNrLh9idmw.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XpBd05qSTVORGcwTVRBeE1EWTJJbjAuelRRQzQzcldySkhMUWkxeW1DdGh0V0g3aElpRnJDODFDcUZRdHNyUHN1aw==)
![[내부] 구독권 할인 프로모션 보드배너_3차](https://an2-img.amz.wtchn.net/image/v2/dJifk6CQ_JkYfQSaPz2meg.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VRJMk1ERXdNVEU0TmpnME1Ea3dJbjAub3JCREJoN2RoZkRhSUNMeGtpcVk4eTBraFFPbzk4cy01S00wLXBuVEdrOA==)
2차 대전 직후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의 거리.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던 안토니오는 우연히 직업 소개소를 통해 거리에서 벽보를 붙이는 일을 맡는다. 그러나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자전거가 필요했고 이 사실을 안 아내 마리아는 남편의 직업을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침대 시트를 전당포에 맡기고 자전거를 구입한다. 한편 직업을 갖게 된 안토니오와 그의 아들 브르노는 기쁨을 참지 못하지만 아뿔싸! 이게 웬일? 이튿날 안토니오가 출근하여 벽보를 붙이는 사이 한 사내가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감상 가능한 곳
본 정보의 최신성을 보증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정보는 해당 플랫폼에서 확인해 주세요.

제시
4.5
괴물같은 세상에서 괴물이 되어야 했던 사내, 그러나 괴물이 되는 것 조차 허락받지 못한 지독한 현실
거리에서
3.5
영화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을 듯한 안타까운 현실.
예린
4.5
실제 노동자가 연기하는 네오리얼리즘의 삶
다솜땅
3.5
자전거 하나로 보여주는 사회상 시대상. 그리고 서민들의 생활상.. 재산과 같은 자건거.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자라가는 그 아들. 그 자전거분실에서 오는 서민층의 생활고와 함게 드러나는 분노. 지금도 비슷한 요지경 속이다.
이호윤
4.5
‘자전거 도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박완서 소설가의 단편 소설 ‘자전거 도둑’이 떠올랐다. 박완서 소설가가 그렸던 자전거 도둑은 본인의 배덕 행위가 사회의 자본적 응징과 자신의 도덕적 관념 사이에서 강하게 눌리고 있음을 견디지 못해 서울로부터 멀리 튕겨 나가게 된다. 반면에,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은 서서히 눌려오는 배덕 행위의 유혹에 참지 못해 본인 스스로가 사회의 자본적 응징과 자신의 도덕적 관념으로부터 팽팽하게 맞선다. 결국 두 자전거 도둑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지도 못한다. 두 자전거 도둑이 마지막으로 내린 각자의 결단은 해방이라기보다 삶의 또 하나의 빚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것이 영화 자전거 도둑의 철학이고 두 자전거 도둑의 현실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이다.’ 세계와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은 진창 같은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에 기초한 영화사의 새로운 물결은 자유의 의무로부터 도피처를 배제하고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파괴된 현실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그 물결의 운동성이 완전하게 작용한 걸작이다. 네오리얼리즘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패전국 이탈리아에 나타난 경향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예산이 부족해 길거리에서 즉흥으로 담아낸 나이브한 프레임은 네오리얼리즘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어린 아들이 겪어내는 사회와의 실랑이에서 이야기가 진전된다. 극 초반 주인공은 궁한 형편을 타개하기 위해 몇 푼 없는 돈으로 자전거를 구하게 된다. 구직의 늪에서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 간신히 프레임에 보여지는 주인공의 모습은 네오리얼리즘의 현실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벽보를 붙이는 일자리를 통해 드디어 돈벌이의 노른자위에 오르는 듯했으나 본인의 자전거가 강탈되는 사건이 눈앞에 생생히 벌어지게 된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필요했다. 주인공은 주인공 아들과 함께 자전거 도둑을 붙잡으려 쫓아간다. 그 일은 순탄히 진행되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이 그 부자에게 냉정한 온기들을 내뿜었다. 끝끝내 주인공 부자는 도둑을 붙잡는다. 주인공은 도둑을 붙잡기 위해 쏟아냈던 노력이 곧장 분노로 전환되었고 도둑은 그 분노를 온전히 받게 된다. 그로 인해 도둑은 간질 증세로 힘없이 쓰러지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 광경을 목격하곤 주인공을 타도하기 시작한다. 날카롭게 대치되던 접전에서 주인공 아들은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이 싸움의 중재를 위해 주인공 부자와 함께 자전거 도둑의 집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훔쳤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 어떠한 것도 주인공의 주장을 대변해 줄 증거물을 찾지 못한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질타에 파도처럼 떠밀려 그 공간에서 나오게 된다. 주인공에게는 한가득 처연함과 막막함만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주인공의 두 눈을 매료시킨 것은 다른 누군가의 자전거였다. 주인공은 그 자전거를 제 딴으로는 잽싸게 훔치려 하지만 결국 얼마 도망가지 못해 그 자전거 주인에게 붙잡힌다. 주인공은 순식간에 몰려든 군중들로부터 뭇매를 맞는다. 더 이상의 폭력이 행사되기 전에 자전거 주인은 주인공의 아들의 무서워하는 표정을 보고 측은함에 주인공을 풀어준다. 그리곤 주인공 부자가 주변 군중들의 따가운 시선을 엄호 삼아 힘없이 걸어가는 것으로 마지막 쇼트를 장식한다. 극중 인물 간의 마찰이 빚어지거나 주인공 부자의 무기력함이 커질 때마다 인간 군상은 항상 매몰차고 줄기차게 현재 처지의 각박함을 확인시켜 준다. 주인공에게 내리치는 고통은 전부 사람들이 주었고 주인공에게 내밀었던 기대는 전부 한 개인이 주었다. 도둑을 쫓는 것도, 도둑을 놓아준 것도, 도둑이 되어버린 것도 전부 주인공의 몫이다. 그 몫을 행하는 것은 주인공의 자유였지만 1950년대 암울한 인간 군상은 더욱 그 자유 행위의 엄중함을 가중한다. 그나마 주인공에게 희망으로 다가올 존재는 전부 단일 인물이다. 단순 군중 1, 군중2 등으로 정원을 채우는 것이 아닌 존재는 주인공의 아들이고 자전거 도둑이다. 주인공 아들의 발걸음은 주인공의 터벅거리는 발걸음에 비해 종종걸음이었고 그 대비는 주인공에게 있어 상대적으로 유쾌한 삶의 진실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당시 시대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영화의 배경은 실제 그 당시 길거리 풍경이었으며, 주인공 부자는 길거리 캐스팅된 일반인이었다. 이 한편의 비극은 가공된 것이 아니라 관찰된 것으로 관객에게 제시된다. 이토록 저항적인 누벨바그 영화의 사상적 배경을 알기 위해선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보여 준 그의 철학을 알아야 한다. 시지프 신화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시지프의 형벌은 가혹하다. 평생을 돌을 굴려 올리고 의미 없음의 우로보로스로서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카뮈는 이러한 삶의 부조리를 깨달은 사람은 자살하거나 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이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카뮈는 삶의 이유를 신이나 가족, 국가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지 말고 삶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무의미함의 연속, 고(苦)의 반복을 사랑한다면 삶이라는 무의미한 작업의 반복, 삶의 진리를 가슴 벅차게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알베르 카뮈의 철학은 누벨바그 영화의 근간이 되어 네오리얼리즘의 반시적 페이소스를 앞세우기 충분했다. 사르트르는 구토감이 올라온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나는 그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아도는 불필요한 존재. 자기 모습이 비로소 낯설고 막연한 불안감으로 점철된 것으로 다가온다. 사르트르는 구토감이 올라온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나 자신도 마찬가지임을 알게 되고서 구토가 치미는 것이다. 이 구토감은 당대 이탈리아의 현실 저항 의식과 맞닿아 있다. 누벨바그의 시조는 기존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한 저항이다. 저항의 근원은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으로부터 계승된 것이다. 네오리얼리즘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영화를 통해 제기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특징이 담긴 누벨바그 영화는 대중 영화보단 예술 영화에 가깝다. 즉흥적인 연출과 핸드헬드, 롱 테이크 등의 파격적인 영화 연출법이 누벨바그 영화를 대표하는 연출 기법이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따뜻한 인간에 대한 정을 갈망하는 영화이다. 시종일관 극중 인물은 주인공 부자에게 비관적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하루하루가 고통이고 고역이라면 산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깊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말의 희망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키거나 믿고 싶은 어떤 것이 실존의 의미, 희망에 가까울 것이다. 고달픈 현실을 기존 영화 문법을 일그러뜨리고 담아낸 이 걸작은 날이 지나도 여전히 위대할 것이다.
Cinephile
5.0
어떻게든 살아야만 한다는 개인들의 절박한 의지가 모여서 가난한 자들의 이 세상을 부당하게 만든다. 비극으로 관객의 눈물을 훔치려는 얕은 수를 보이지 않고, 어째서 우리가 포함된 세상이 부당할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무겁게 던진다.
권혜정
5.0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네오리얼리즘 영화 입문작 이토록 고달픈 인생,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명씨네, 디지털 리마스터링 개봉
류월
4.5
결국은 자전거도, 도둑도 찾지 못한 자전거 도둑이 돌아갈 곳은.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