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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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윤 서
    star3.5
    놀란 : 네 기자 : 이 영화는 시간이동에 대한 영화인가요?
    스포일러가 있어요!!
    217136
    엑스트라들은 문워크 고수일듯 . . (이하 스포) . . <당신을 구하는 일은 곧 나를 구하는 일> . 놀란의 목표가 시간 되감기 같은 볼거리만을 찍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단적으로 그냥 지나가는 대화 장면에도 공간 구조를 활용한 연출을 넣었다. 사토르(케네스 브레너)의 요트에서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이 몰래 사토르 얘기를 할 때 방 안에 또 방이 있는 선실 구조로 사소하지만 특별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 인버전 현상이 포함된 세번의 액션 시퀀스는 (자동차-프리포트씬, 오슬로 공항씬, 스탈스크12씬) 단순 액션의 의미를 넘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숏바이숏으로 살펴보는 일종의 지적 유희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인버전 현상을 어떻게 편집할지에 관한 일종의 영상기술적 실험. . 씬 하나를 예로 들면, 주인공이 문을 따려다 간이열쇠가 부러지자 숨이 막혀 다급해진 닐(로버트 패틴슨)이 다른 문을 찾는다. 그가 차단문의 헤집어진 틈을 발견한 순간, 주인공이 열려던 문이 열린 바람에 차단문 틈을 놔두고 안으로 들어간다. 어차피 열릴텐데 잠시 텀을 둔 이유는 단순 긴장감만을 위한게 아니라 기어코 관객에게 차단문의 헤집어진 틈을 확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 없어도 무방했던 숏이고 딱히 부연설명도 없는데 왜 굳이 그 숏을 넣었을까? 닐이 숨이 막혔던 순간, 사실 놀란은 대수롭지 않다는듯이 관객들에게 비밀스런 신호를 보냈다. 헤집어진 차단문은 다름 아닌 미래에서 인버전한 주인공들의 흔적을 (서사적으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숏이다. 사실은 바로 그 숏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인버전 시퀀스가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 인버전 장면은 대부분 결국엔 정재생으로 보여주거나 혹은 다른 각도로 보여주곤 했기에 n차각의 가장 큰 원인은 닐의 마지막 말이었다. 모든게 처음이라 얼떨떨한 주인공을 보면서 닐의 머릿속에는 수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 주인공이 술과 탄산수를 안 좋아하는 걸 잘 알면서도 조사하고 왔다던 닐의 묘했던 그 표정, 공항 인버전 후 주인공이 누가 만든 규칙이냐 묻자 우리가 만든 규칙(Our rules, man)이라고 농담처럼 받아치던 그의 아련한 눈빛은 영화를 다 보고난 뒤에야 이해되기 시작한다. <굿타임>때도 돋보였던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가 빛난다. . "이제 절반 정도 왔어"라는 닐의 말은 닐의 경험은 이제 끝이지만, 그의 경험을 앞으로 주인공이 함께 겪으면서 나머지가 완성된다는 뜻으로, 좌우 대칭의 회문 TENET은 그들의 기묘한 우정을 닮았다. 닐의 마지막 말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지못한 바깥의 시간들을 순식간에 불러온다. 함께 했던 시간 동안 쌓였던 감정을 묘사하여 거꾸로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소환하는, 그냥 시간이 아니라 사람 내면의 감정의 시간을 찍은 영화. 놀란의 필모 중에서 아마도 가장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찍었을 시간. .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닐이 주창자가 될 주인공에게 남기는 철학이자, 미래를 알면서도 기꺼이 뛰어들 수 있는 희생정신이다.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이 테넷 요원으로 발탁될 자격이었으며, 닐은 기꺼이 아이브스와 주인공을 살리러 감으로써 (전작들에 이어) 이 모든 것이 "생존의 문제"라는 대테러 작전 "테넷"의 정치철학적 태도를 반영한다. "운명"이 아닌 "현실"이라는 닐의 말이 놀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대변한다. . "캣 아들 맥스 = 닐과 동일인물" 가설에 관하여. 놀란이 닐=맥스라고 단정짓진 않은듯하다. 엄마와 아들이라기엔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Max가 Maximilien의 약칭이고, 거꾸로 했을 때 첫 네 글자가 Neil이라는 점에서 서로 의미상 연결시켰음을 알 수 있다. 닐과 맥스는 주인공과 캣의 "후세대"로 태어났다. 닐은 주인공을 구했고, 주인공은 캣을 구했고, 캣의 아들은 맥스이다. . 여기서 닐과 맥스를 후세대로 묶는다면, 닐, 주인공, 캣이 서로를 구하는 과정 속에서 닐은 결국 자기 세대를 구한 셈이 된다. 인간은 누구든지 구조자인 동시에 피구조자가 될 수 있고, 타인의 생존을 도모하는 공동체적 행위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 더불어 자신의 공동체를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구원이란 결국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은 놀란이 이전부터 몇몇 영화에서 줄곧 쌓아온 철학이다. . . 흑인&여성 vs 백인남성의 대결구도, 결국 "주도자"가 되는 흑인, 무기거래상 싱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실세 프리야까지, (프리야는 남자들의 세상이니까 남자를 세웠다 말한다) PC 물결에 합류한 의의는 좋으나 의식해서 접근한 탓에 도식적인 느낌도 있었다. 가령 캣의 대사 50프로 정도가 아들 타령이라 모성애 프레임이 돌출된 느낌이 없지 않다. . . . . . . . .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상전 코멘트 <테넷>을 기다리다 지쳐 놀란 복습 1. 덩케르크의 마지막 장면 큰 배며 작은 배, 고급 요트, 어선까지 총동원한 구조선들이 오면 영화가 끝나나 싶더니, 갑자기 적 전투기가 굉음을 울리며 등장한다. 기적적으로 파리어의 스핏파이어가 나타나 위기를 넘겨준 덕분에 영국군은 무사히 철수 작전을 마친다. 그런데 아직도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철수 작전은 마쳤으나, 연료가 소진된 파리어가 남았다. 생존군인들이 환영받는 장면과 파리어가 전투기를 불태우는 장면이 교차편집되는데, 동시에 보여지는 이 두 상황은 엄밀히 말해서 동시에 벌어진 상황이 아니다. 스핏파이어가 그들을 구해줄 때는 동시간대였겠지만, 그후 시간이 서로 다른 밀도로 흘러서 다른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교차편집으로 이어붙여졌다. 교차편집은 마지막 두 쇼트가 교차될 때까지 이어지는데, 여기에 놀란 연출의 결정적인 결정이 있다. "파리어가 포로로 붙잡힌 뒤 전투기가 홀로 불타는 쇼트"에서 "기차에 탄 주인공의 얼굴 쇼트"로 바로 넘어가지 않는다. 파리어 씬이 디졸브로 암전되고 검은 화면이 확실히 나온 뒤에야 주인공 얼굴이 나오고 동일한 방식으로 디졸브되며 끝난다. 영화는 파리어의 얼굴과 주인공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이어붙이지 않았다. 이로써 교차편집된 두 개의 시퀀스는 독립적인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주인공과 파리어의 얼굴을 암전 없이 그냥 편집으로 이어붙였다면 생존한 주인공이 "그때 우리를 구해준 전투기 조종사는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하는 장면처럼 여겨질 여지가 남았겠지만, 영화는 희생자의 전투기와 생존자의 얼굴을 단지 나란히 병렬해서 보여주려 하고, 이를 편집을 통해 명확히 한다. 이렇게 서로 분리된 두 마지막 쇼트는 <덩케르크>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다. 한쪽에 생존자가 있으면, 다른 한쪽에는 희생자가 있다. 그들 각자의 존재를 서로에게 함부로 예속시키지 않는 존중의 방식인 것이다. 클라이막스곡의 장대한 선율은 영국의 대표작곡가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14곡 "9번 님로드"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 영국 현충일 행사에 쓰이는 곡이라고. 2. 인터스텔라 속 구원 크리스토퍼 놀란 표 트리 오브 라이프. 테렌스 멜릭의 팬이라는 놀란이 멜릭에게서 영향 받았다는 건 억측일까? 세상의 비밀스런 작동원리를 엿보게 되는 것만 같은 클라이막스의 태서렉트 씬은, 과학을 표방한 일종의 구도의 과정이다. 블랙홀에 기꺼이 몸을 던져서 스스로를 희생한 구도자에 의해 세상은 구원되었다. 그 다음 정말 이상하게도 순간 기이한 편집과 함께(이때 극 중반에 웜홀을 통과할 때의 특정 장면이 찰나에 반복된다) 죽음과 동일시됐던 동굴을 부활하여 빠져나온 뒤 쿠퍼는 태양계에 놓인다. 차가운 침묵의 우주과 대비되는 뜨거운 인간적인 감정과 노력에 관한 영화. 쿠퍼는 자녀에 대한 사랑을 쫓았고, 그것은 인류의 구원이 되었고, 인류의 구원은 도로 쿠퍼의 구원이 되어버렸다. 이상하지만 어딘가 성스러운 논리구조. 실현돼야 마땅하다고 영화가 내심 생각하는 정의로운 결말을 무의식적으로 실현시키는 신의 손길.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열망이 되돌아와 아버지를 구원하는 결말은 <인셉션>에서도 선행된 바 있다. <다크 나이트>에서는 조커는 배가 폭발할 거라 확신했지만, 영화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결말이 갑자기 무의식적으로 작동되어버린다. 배에 탄 수감자들의 선택은 아마도 영화의 선택이자 놀란의 선택이다.) 상위차원의 존재를 상상할 때 우리는 그 존재와의 관계를 상상하게 되는데, 쿠퍼는 놀랍게도 인류를 구원한 그들더러 "우리"라 말한다. 결국 구원은 인간 안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런데, 팝콘을 먹으면서 이 영화를 봤을 관객들은 미국의 옥수수가 언제나 과잉 생산된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는다.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 속 미세먼지의 기승은 종종 인터스텔라의 디스토피아 이미지들을 떠오르게 하는데, 모든 종의 끝엔 멸망이 예정돼있다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명제를 차치해두고라도, 인간은 선악과를 스스로 먹었다. 모든 문제는 인간에게서 생겨난다. 3. 인셉션의 첩보전 기술적으로 놀랍지만, 재관람할수록 다른 곳에 관심이 간다. 이젠 메멘토의 거의 확실한 속편 격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 기묘한 영화는 "나의 생각이 온전히 나의 것인가?"라는 인간의 불안감을 파고 든다. 나의 생각은 정말로 나의 것인가? 설정상 꿈속에 들어갔다 하지만, 마치 마음에 들어간 것과도 같다. 편도체에 저장된다고 하는 트라우마는 인간을 물리적으로 위협하지 않지만, 주인공들이 활보하는 곳이 마음 속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트라우마의 규모가 클수록 치료는 어려워지고, 마음속 세상에 들어간 그들에게 위협적일 것이다. 표면적으로 인셉션은 코브가 멜의 마음에 쓰러지지 않는 토템을 심어놓는 것이지만, 멜의 죽음으로 인셉션 당한 건 코브일 것이다. 자아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심어진다는 절망적인 세계관. 자아의 실체란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 질주하는 기차의 느닷없는 횡포와도 같은 것이다. 통제 가능한 꿈(자각몽)에 관한 영화로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마음 속의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관한 영화. 인간의 삶이 한낱 꿈이라 한다면, 바로 이러한 무의식에 잠식당한 삶, 트라우마에서 분리될 수 없는 뒤틀린 자아. 트라우마는 죄의식으로 발전하고, 죄의식은 도피로 이어지며, 현실을 등진 채 죄의식의 언저리에 영원히 머물며 자학하게 되었다. 마음의 참혹한 진실을 숨기기 위해 코브는 이중으로 연기하기 시작한다. 코브가 아서에게 그렇게까지 화낸 건 팀원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다. 팀원들은 애당초 꿈이 위험한 줄 전혀 모르고 작전에 임했다. 그러나 코브는 제발 저려서, 게다가 작전이 실패하면 가장 위험해지는 건 자신이므로, 누가 봐도 과도하게 화를 낸다. (도심 한복판 기차의 습격을 받은 후, 코브는 아마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거의 본능적, 반사적으로 팀원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렸을 것이다.) 꿈의 질감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는데, 논점이 잘못되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연출의 목표이기에 꿈 장면의 연출도 보기에 현실 같아야만 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인간의 인지가 분간할 수 없는 느낌을 만들어내며 진행되는 영화다. 결말이 꿈이냐 현실이냐 따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도달한 뜻밖의 역설. 인간은 꿈이라는 걸 모른 채 꿈 속에 살고 싶다.
    스포일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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