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2020 · 다큐멘터리 · 한국
1시간 41분 · 12세

전국 특수학교 재학생의 절반은 매일 왕복 1~4시간 거리를 통학하며 전쟁 같은 아침을 맞이한다. 장애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특수학교 아이를 위해 거리로 나선 엄마들은 무릎까지 꿇는 강단으로 맞서는데… 세상을 바꾼 사진 한 장, 엄마들의 용기 있는 외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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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3.0
더이상 아무도 절박함에 무릎 꿇지 않도록 하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simple이스
3.0
왜 분노는 약자를 향해 더 날카롭고 빈틈없이 파고들어 가는가. . .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고 외면하기엔 서울 모 아파트 단지에서 배달원들을 상대로 한 사건들이 떠오른다. 약자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는 지금, 공감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사회가 되길 바라며
Lemonia
3.5
이 영화가 옮겨온 현실은 정면으로 마주하기 만만치 않다. 우리와는 대체적으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과 장애인을 혐오하며 애써 무시해왔던 소외된 이웃의 목소리가 간접적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눈물로 읍소하며 학교 설립을 통해 모두와 함께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싶은 장애아 부모들의 바램에 거친 언행과 원색적인 비난은 물론이거니와 물리적인 폭력까지 행사하는 반대 측 주민들의 태도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정도이다. 인간이 어떻게 저리 잔인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들도 평소에 동네에서 만나면 지극히 평범한 동네 이웃일 텐데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스스로를 정상성의 범주에 두고 상상하는지, 그럴수록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밀려나버리면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는 시선과 이기적인 태도 속에 감춰진 다른 군상의 우리 모습도 존재한다. 만약에 "특수" 가 아닌 "특목" 이 붙는 학교의 설립이 추진 되었다면, 이렇게까지 극렬한 반대가 있었을까?
pizzalikesme
4.0
순전히 운이 좋아서 비장애인으로 사는 건데,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소수자의 입장이 될 수 있는 건데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거 말고 같이 적당히 먹고 적당히 살면 안 되나. 같이 살아요 우리. (단식, 삭발 등의 행동은 영화 속 엄마들처럼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하는투쟁인데 목소리 이미 큰 사람들이 릴레이 단식 어쩌고 하면서 그것까지 뺏어가려고 하지마라 즨쯔ㅏ...)
카이
3.5
'평범'이라는 단어를 🎁 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
혜빈
3.5
학창시절 친구가 실수를 하거나 웃긴 행동을 했을 때 우리는 “정진학교에서 왔냐” “정진학교 보내버려야겠네”라고 놀리곤 했다. 누구나 스스럼없이 말하고 웃어넘기던 표현이었다. 구로구에 있는 정진학교가 서울 시내 고작 열몇개 있는 특수학교 중 하나이고, 그 스쿨버스가 동네를 지나다녔던 이유는 원거리에서 통학해야 하는 우리 지역 학생들을 싣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생각 해 본다. 소수자의 슬픔과 괴로움에 공감할 줄 모르고, 조롱거리 삼아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 학창시절을 보낸 내가, 이십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것이 부끄러운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 지난 세월 나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차별과 가해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도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의 교육과 그걸 만드는 시민의식은 지금껏 딱 그 정도 수준이었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어린 세대들에게는 많은 희망이 있으니까, 더 늦기 전에 우리 아이들이 다르게 커나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 희망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입하거나 가양 4,5단지 아이들을 분리시키는 조치 따위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그 희망은 자신이 자라온 세상과 아이들이 자랄 세상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과 삶을 결심할 때 아이들 마음 속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속 학부모들의 투쟁이 비단 장애를 가진 자기 아이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완전하진 않지만 뚜렷한) 한 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나중에 자신의 행동을 부끄럽게 돌아볼 날이 왔으면 한다. 그리고 공적 제도를 통해 그 날을 앞당길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2020.12)
영미남(영화에 미친 남자)
3.0
간절한 외침이 외침으로만 끝나지 않게. 👍 : 중요한 소재와 절절한 목소리, 👎 : 좀 더 깊이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었어도,
XEO
4.0
영화는 발달장애학생 지현이가 강서구 가양동에서 구로구 정진학교까지 1시간 반에 걸쳐 학교에 가는 길을 동행하며 시작한다. 곧이어 전국 특수학교의 과포화 상황과 공진초등학교 폐교 이후 해당 부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특수학교 설립 추진과 반발 상황을 자막으로 설명한 영화는, 곧바로 폐교된 채 방치된 공진초 내부 장면을 이어붙인다. 시퀀스 마지막, 줌 아웃된 원경에는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공진초등학교의 모습이 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이러한 장면 연결은, 지현이의 힘든 등교와 직결된 서진학교의 설립이 가양동 일대 지역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처음부터 서진학교 설립 문제를 단순한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으로 다루기보다 지역사회의 맥락과 함께 짚어보겠다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영화는 소외계층을 한 지역에 몰아넣은 가양동의 모순된 주택공급정책과 그 과정에서 시작된 차별의 역사, 그 차별을 고스란히 입은 채 폐교에 이른 공진초등학교의 과거를 돌아보며 한층 복합적인 관점으로 서진학교 설립 문제를 바라본다. "우리는 차별을 받아왔다"고 외치던 가양동 주민의 의견까지 짚어내려는 감독의 시선이 드러나는 부분. 공진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학부모들의 마음은 서진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발달장애인 어머니들의 심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공진초 학부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치인 거 아니냐." 이 말은 곧 공진초를 배제하더니 이제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거 아니냐는 의미를 자조와 냉소로 뒤섞은 표현일 것이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면서 비대위에 합류하지는 않은 공진초 학부모들의 모습은, 차별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그렇기에 그간 국가와 정책이 직접 차별을 조장하고 강화시켜왔다는 문제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문제는 토론회에서 어머니들을 향했던 원색적인 혐오 발언들은 그러한 복잡한 상황을 생각나지 않게 만들 정도로 끔찍했다는 것. 재준 엄마 정난모 씨는 씨네21과의 인터뷰(1304호)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까지 우리한테 다 분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았다". 상대를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눌 사람이 아니라 상대적 약자로 프레이밍 하는 순간, 그를 향한 혐오의 언어는 끝을 모르고 날카로워진다. 주인공들은 장애 자식을 가진 어머니, 그리고 여성으로서 교차적 약자의 위치에 있었기에 더욱 노골적인 말들을 들어야 했다. 나조차 숨을 쉬기 힘든 구간이 많았는데 저 말들을 오롯이 받아낸 어머니들의 몸과 마음이 어떨지 잘 헤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영화가 이렇게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를 화면에 애써 담아낸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느낀다. 그 말들은 비장애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강서장애인부모회 어머니들의 유대는 무수한 담론을 펼치는 영화 안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김정인 감독은 2차 토론회에서 쏟아지는 혐오 발언 속에서도 꿋꿋하게 의견을 밝히던 어머니들을 보던 순간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 <학교 가는 길>의 영화적 동력은 이들의 강인함으로부터 나온다. 돌봄노동에 지친 엄마를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이곳에 없다. 카메라는 이들이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 했고, 어떻게 다같이 뭉쳐야 했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데에 정성을 쏟는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어머니들은 자식 덕분에 변화된 자기 모습을 진심을 담아 말한다. 이들 역시 자식과 함께 성장을 거듭해 온 한 명의 평범한 개인이었다는 이야기. 이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온 몸을 내지르던 어머니들의 행동 역시 자기 내면의 변화로부터 출발했다는 내밀하고 개인적인 고백이었다. 그 말들이 자연스레 영화가 바꾸어낼 개인들에게도 변화의 단초가 되어 도착했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또한 영화는 어머니들 뿐 아니라 이들의 자녀인 지현 씨, 재준 씨, 현정 씨, 혜련 씨가 저마다의 특징과 성격을 가진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특수학교 자체가 사실은 존재하면 안 된다"는 김남연 대표의 말은 장애인 교육 운동이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을 내포한다. 하지만 특수학교 설립 자체가 이토록 지난한 현실에서 그 말은 아직 잡을 수 없는 이상향에 가깝다. 발달장애인은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 인구의 8%를 차지한다. 하지만 장애인이 수용되어 있는 거주시설에서 발달장애인 비율은 무려 80%가 넘어간다. 이러한 수치 사이의 괴리는 한국 사회가 이들을 전혀 자립가능한 존재로 여기지 않으며, 발달장애인이 우리 시야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감독은 영화에 '발달장애인 국제책임제 도입촉구 결의대회' 현장을 담아내며 이런 논의를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서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겠지만.) 애초에 살면서 본 별로 적이 없으니, 비장애인들은 발달장애인에 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막연히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발달장애인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하는 것은 더욱 쉽지가 않다. 그러니 일단 발달장애인 한 명 한 명이 우리에게 가시화되어야 한다. "생애 처음 만나는 장애인이 우리 애일 수 있어요. 우리는 학교 가서 아이들의 인식을 개선한다고 생각하면 돼." 이은자 씨가 했던 말은 왜 그들이 이런 막중한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한 명의 발달장애인을 만나는 일은 어쩌면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일이 될 수 있다.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 고유하고 특별한 한 명 한 명의 발달장애인을 보여주는 것에 마음을 다하는 한 이유다. 이외에도 감독은 영화에 최대한 많은 관점을 담아내려 애쓴다. 이를 테면 애초에 교육부지였던 공진초 터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국립한방병원 부지로 적합하다'는 적절치 못한 보고서를 냈고, 이를 토대로 가양동 3선 김성태 국회의원이 한방병원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그에 따라 별 문제 없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서진학교가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마치 한방병원의 자리를 빼앗는 형국이 되어버린 지역정치 맥락을 영화는 정확히 짚어낸다. 토론회나 설명회 자리에서 나온 ‘종북’과 ‘빨갱이’를 위시한 실체 없는 비난의 언어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는 그에 더해 서초구와 중랑구 특수학교 설립 투쟁,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 개관 당시 투쟁,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서비스 확보 투쟁까지 다룬다. 서진학교 공사가 착공한 뒤에도 어머니들의 투쟁은 멈출 수가 없다. 특수학교 설립 '대가'를 지역주민에게 약속하며, 특수학교를 반드시 보상이 필요한 기피시설처럼 못 박아 버린 합의문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또한 정진학교 졸업식 풍경을 비추며 특수학교 이후 발달장애인의 사회편입 문제까지 들춰내는 영화. 물론 이러한 폭넓은 논의는 전부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엮여있는 문제들이다. 무엇 하나 빼놓기는 쉽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 다만 이렇게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 장면의 연결이 종종 매끄럽지 않아 즉각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영화의 톤 역시 상황의 변화에 따라 격차가 컸다. 그때그때 상황에 적응하며 영화를 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은 어머니들과 자녀들이 향유하는 일상과 그들이 처한 상황의 결이 너무 다르다는 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연출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영화는 어머니들 인터뷰를 일종의 길잡이로 삼고 그에 따라 점차 더 복잡한 이야기와 깊은 감정을 다루어 간다. 그런 스토리텔링이 있었기에 영화의 여정을 그래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김정인 감독은 본인의 영화를 "아빠가 딸에게, 그 딸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 같은 다큐멘터리"라고 표현했다. 영화 시작 전, ‘마로와 마로의 친구들에게’라고 쓰인 자막이 보인다. 같은 사회에서 함께 자라나야 할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들에게 시급하게 읽혀야 하는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영화 <학교 가는 길>은 정확히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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