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räckis4.5X factor가 있는 호러 수작. - X는 섹스와 마약에 환장한 오만한 젊은이들이 고립된 시골에서 살인마들에게 난도질 당하다가 파이널 걸이 살아나간다는 고전적인 공식 안에서, 다른 이들이 놓친 가능성들을 파 남다른 무엇으로 만든다. - 먼저 짧게 언급할 것은 기술적이고 스타일적인 연출의 빼어남인데 촬영이나 편집, 특유의 리듬이 너무나 정갈하게 수놓여있고 스토리 텔링과 캐릭터 활용도 영리하고 의외의 구석들이 많아 고전 공식의 변주에 호러팬들은 신날 것이다. - 그래도 가장 빼어난 건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의식. 사실 섹스와 돈과 야망에 들끓는 젊은이들의 대척점엔 죽음을 목전에 둔 늙은이들이 있다는 건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요소이다. (스포일러) 늙는다는 건 모두에게 공평한 공포이다. 서로를 끊임없이 갈망하던 아름다운 몸들은 모두 늙어 아무도 쳐다보고 싶어하지도 않는, 몸에 닿으면 역겹다 느끼는, 그런 추한 존재가 된다. 그렇게까지 늙지 않아도 거리의 막나가는 무대뽀 아줌마 아저씨들에게서도 그런 정서가 있다. 어차피 아무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청춘이 지나버려 더이상 아름다운 존재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내멋대로 막나가는 무례함에는 일종의 분노나 질투, 슬픔의 정서가 있다. 젊어서 아름다웠던 사람일 수록, 아름다운 인생을 꿈꿨던 사람일수록, 야망이 컸던 사람일 수록 늙음은 더 힘든 일이다. 아름다운 댄서였던 소녀는 전쟁으로 인생이 망가지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 이제 그저 추하고 역한 존재로 여겨지며 죽음만을 기다린다. 죽기 직전의 이 할머니가 젊음과 욕망과 섹스을 적극적으로 갈망하고, 자신을 경멸하는 젊은이들을 질투하고 혐오한다. 여기엔 생각보다 너무 많은 정서와 이야기들이 뒤를 받치고 있고 이들의 살인극은 죽음과 의미 없이 끝나버린 인생에 대한 마지막 발악 같은 처절함이 있다. 이를 보며 많은 관객들이 웃으리라 생각하는데 그 웃음이 정확하게 이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살인하게 만드는 것이니 정말로 무례하고 오만한 웃음이라 하겠다. 니들도 다 그렇게 늙는다니까. “경계선” 볼 때도 웃는 관객들이 많았다던데 늙고 추한 사람들의 욕망은 웃긴 걸까. 진짜 어이 없네. - 언뜻 보면 노인이 젊은 여성을 창녀라 부르는 것이나 종교에서 그들의 행위를 죄라 부르는 것이나 모두 그저 젊음을 질투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 같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성의 해방을 외치며 젊을 때 욕망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이들은 외모와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섹스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포르노에 의미 부여를 하는 장면은 제법 그럴싸하다. 허나 결말부 (의외의 파이널 걸인) 맥신의 정체를 보면 이들의 욕망이 정말 이들의 욕망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날 알아보길 원하는 맥신의 욕망은 이상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그토록 줏대 있어 보였던 당찬 맥신의 모습은 사실 어떤 심리적 반작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욕망 역시 자연스럽거나 자기 주도적인 게 아니라 반대에서 그들을 욕하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자들에게서 온 것일 수도 있다. 맥신이 포르노 배우로 모든 이의 욕망이 되길 원하기까지, 보수적인 극우 목사 밑에서 얼마나 억압 당하며 자랐을지 훤히 보이니까. - “요즘 애들”에 대한 혐오와 “늙은 꼰대”에 대한 혐오는 항상 있어왔고 X는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가를 보여준다. 무서운 건 이게 거의 자연의 섭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써클을 이룬다는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인간이 평생 발정기라는 건 정말로 저주이다. 그리고 외모 지상주의는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만큼이나 나쁘고 역겨운 것이다. 한국이 혐오 국가가 된 건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 ps) 할머니를 연기한 것도 미아 고스라 한다. 대단한 배우고, 주제의식이 더 강화된다.좋아요40댓글3
Paleblueye4.0극중에서 포르노 장르로 예술적인 작품을 만드려하는데, 이 영화 자체는 슬래셔 호러 장르로 예술 작품을 시도한 것 같다. 클래식 슬래서 무비의 틀을 가진 것 치곤 아름다운 쇼트들이 넘쳐난다. 아마 티 웨스트 감독은 기존의 클래식 슬래셔 무비들이 이루지 못 한 성과들을 내려고 여러 시도를 해본 것 같다. 그래도 영화적 상황들의 현저히 낮은 당위성은 배제하지 못했다.. 줌 인 / 아웃, 와이프, 분할화면, 교차 컷(로드무비 ‘이지 라이더’ 에 쓰였던) 등 70, 80년대 영화가 떠오르는 여러가지 기술적 매너들을 따라간다. 영화의 시작도 대부분의 고전영화의 화면비인 4:3을 따라가나 싶다가도 앞으로 Dolly 인을 하면서 헛간 입구에 화면이 가려져 4:3 비율처럼 보이게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실 영화의 화면비는 1.90:1), 처음부터 과거 영화들의 틀을 대놓고 모방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외적으로는 과거의 것들을 좇는 요즘의 것, 하지만 영화 내적으로는 요즘의 것들을 갈망하는 옛 것. . . . (근데 극중 제작진들은 실내에서 아무런 조명도 없이 어떻게 저런 퀄리티의 영상을 찍어낼까)좋아요26댓글0
Jay Oh
3.0
효과적으로 X같은 레트로 호러. X marked the spot, somewhat.
뭅먼트
2.0
지옥에서의 검질긴 청춘예찬.
Dh
3.0
외딴 농장, 절절한 독백 아래 내키는데로 발산하는 욕망러들 #욕망에는 나이가 없는 법
Skräckis
4.5
X factor가 있는 호러 수작. - X는 섹스와 마약에 환장한 오만한 젊은이들이 고립된 시골에서 살인마들에게 난도질 당하다가 파이널 걸이 살아나간다는 고전적인 공식 안에서, 다른 이들이 놓친 가능성들을 파 남다른 무엇으로 만든다. - 먼저 짧게 언급할 것은 기술적이고 스타일적인 연출의 빼어남인데 촬영이나 편집, 특유의 리듬이 너무나 정갈하게 수놓여있고 스토리 텔링과 캐릭터 활용도 영리하고 의외의 구석들이 많아 고전 공식의 변주에 호러팬들은 신날 것이다. - 그래도 가장 빼어난 건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의식. 사실 섹스와 돈과 야망에 들끓는 젊은이들의 대척점엔 죽음을 목전에 둔 늙은이들이 있다는 건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요소이다. (스포일러) 늙는다는 건 모두에게 공평한 공포이다. 서로를 끊임없이 갈망하던 아름다운 몸들은 모두 늙어 아무도 쳐다보고 싶어하지도 않는, 몸에 닿으면 역겹다 느끼는, 그런 추한 존재가 된다. 그렇게까지 늙지 않아도 거리의 막나가는 무대뽀 아줌마 아저씨들에게서도 그런 정서가 있다. 어차피 아무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청춘이 지나버려 더이상 아름다운 존재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내멋대로 막나가는 무례함에는 일종의 분노나 질투, 슬픔의 정서가 있다. 젊어서 아름다웠던 사람일 수록, 아름다운 인생을 꿈꿨던 사람일수록, 야망이 컸던 사람일 수록 늙음은 더 힘든 일이다. 아름다운 댄서였던 소녀는 전쟁으로 인생이 망가지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 이제 그저 추하고 역한 존재로 여겨지며 죽음만을 기다린다. 죽기 직전의 이 할머니가 젊음과 욕망과 섹스을 적극적으로 갈망하고, 자신을 경멸하는 젊은이들을 질투하고 혐오한다. 여기엔 생각보다 너무 많은 정서와 이야기들이 뒤를 받치고 있고 이들의 살인극은 죽음과 의미 없이 끝나버린 인생에 대한 마지막 발악 같은 처절함이 있다. 이를 보며 많은 관객들이 웃으리라 생각하는데 그 웃음이 정확하게 이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살인하게 만드는 것이니 정말로 무례하고 오만한 웃음이라 하겠다. 니들도 다 그렇게 늙는다니까. “경계선” 볼 때도 웃는 관객들이 많았다던데 늙고 추한 사람들의 욕망은 웃긴 걸까. 진짜 어이 없네. - 언뜻 보면 노인이 젊은 여성을 창녀라 부르는 것이나 종교에서 그들의 행위를 죄라 부르는 것이나 모두 그저 젊음을 질투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 같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성의 해방을 외치며 젊을 때 욕망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이들은 외모와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섹스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포르노에 의미 부여를 하는 장면은 제법 그럴싸하다. 허나 결말부 (의외의 파이널 걸인) 맥신의 정체를 보면 이들의 욕망이 정말 이들의 욕망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날 알아보길 원하는 맥신의 욕망은 이상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그토록 줏대 있어 보였던 당찬 맥신의 모습은 사실 어떤 심리적 반작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욕망 역시 자연스럽거나 자기 주도적인 게 아니라 반대에서 그들을 욕하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자들에게서 온 것일 수도 있다. 맥신이 포르노 배우로 모든 이의 욕망이 되길 원하기까지, 보수적인 극우 목사 밑에서 얼마나 억압 당하며 자랐을지 훤히 보이니까. - “요즘 애들”에 대한 혐오와 “늙은 꼰대”에 대한 혐오는 항상 있어왔고 X는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가를 보여준다. 무서운 건 이게 거의 자연의 섭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써클을 이룬다는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인간이 평생 발정기라는 건 정말로 저주이다. 그리고 외모 지상주의는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만큼이나 나쁘고 역겨운 것이다. 한국이 혐오 국가가 된 건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 ps) 할머니를 연기한 것도 미아 고스라 한다. 대단한 배우고, 주제의식이 더 강화된다.
P1
2.0
x같이 재미없네
134340
4.0
순서대로 봐야하는 줄 모르고 봤는데 펄 맥신 엑스 순으로 보는 것도 좋은듯
Paleblueye
4.0
극중에서 포르노 장르로 예술적인 작품을 만드려하는데, 이 영화 자체는 슬래셔 호러 장르로 예술 작품을 시도한 것 같다. 클래식 슬래서 무비의 틀을 가진 것 치곤 아름다운 쇼트들이 넘쳐난다. 아마 티 웨스트 감독은 기존의 클래식 슬래셔 무비들이 이루지 못 한 성과들을 내려고 여러 시도를 해본 것 같다. 그래도 영화적 상황들의 현저히 낮은 당위성은 배제하지 못했다.. 줌 인 / 아웃, 와이프, 분할화면, 교차 컷(로드무비 ‘이지 라이더’ 에 쓰였던) 등 70, 80년대 영화가 떠오르는 여러가지 기술적 매너들을 따라간다. 영화의 시작도 대부분의 고전영화의 화면비인 4:3을 따라가나 싶다가도 앞으로 Dolly 인을 하면서 헛간 입구에 화면이 가려져 4:3 비율처럼 보이게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실 영화의 화면비는 1.90:1), 처음부터 과거 영화들의 틀을 대놓고 모방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외적으로는 과거의 것들을 좇는 요즘의 것, 하지만 영화 내적으로는 요즘의 것들을 갈망하는 옛 것. . . . (근데 극중 제작진들은 실내에서 아무런 조명도 없이 어떻게 저런 퀄리티의 영상을 찍어낼까)
감성적인너구리
3.5
서서히 끓어오면서 광란의 자극과 함께 뻔뻔하게 폭주하는 슬래셔 무비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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