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의 방
No Quarto da Vanda
2000 · 다큐멘터리/드라마 ·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위스
2시간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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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빈민 지역에 사는 헤로인 중독자 반다 두아르트의 일상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반다 두아르트는 페드로 코스타가 이전에 만든 극영화 '뼈'에서 여배우 역할을 했던 인물로, 이 영화는 리스본 교외의 슬럼가와 그곳의 빈민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페드로 코스타는 2006년 '행진하는 청춘'에서 또 다시 이들의 삶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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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Oh
4.0
중독과도 같이 탈출할 수 없는 '방', 찌들 수밖에 없던 사람들. 다큐멘터리보다도 리얼하다. 그들을 향한 시선을 스크린이라는 또 다른 방 하나에 담았다. The coexistence of reality and presentation in a cinematic deprivation chamber.
STONE
4.5
붕괴의 조짐 앞에서도 폐허로서 남아있기를 택한 사람들
강탑구
4.5
무너져가는 인생,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 굉장한 인내심을 요하는 실험 영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다면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체험하게 될 것.
양기연
4.5
당신에게 방은, 프레임은 어떤 의미입니까? . (스포일러) . 감옥에 갇혀 있는 넬라, 병원에 갇혀 있다가 퇴원하였으나 입원 기간의 금단 현상에 치를 떨며 다시금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마약에 빠져든 지타, 가끔 양배추를 팔러 마을을 도는 시간에는 방에서 벗어난다지만 그 외의 시간은 오롯이 방안에 스스로 갇혀 마약에 심취하는 반다, 아직 철거되기 전인 공가들을 돌며 마약을 하는 블론디와 파올로, 정해진 거처가 없어 늘상 떠돌며 마약을 하는 흑인 이민자 뉴로, 그리고 강제철거 및 강제이주의 상황에 놓인 그 밖의 폰타이냐스 주민들까지. . 영화는 타의로 인해 특정 공간에 갇힌 인물에서 시작해 스스로를 특정 공간에 가둔 채 무너져 가는 인물로, 그로부터 다시 정해진 거처 하나 없이 떠도는 인물들과 자신의 생의 공간을 박탈당하게 생긴 인물들까지 '반다의 방'이란 공간 안팎으로 촘촘하게 겹쳐 있는 인물들을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그리고 그들 각각에게 놓인 '방' 혹은 공간의 문제는 곧 카메라의 프레임의 문제로 대치된다. . 넬라에게 감옥이라는 방은 곧 억압이며, 카메라가 프레임 안에서 다시 문과 창을 경계로 공간 안팎을 나눌 때 프레임 역시 그러한 억압의 상징을 내포한다. 한 편, 반다와 지타에게 방은 비록 그것이 자신들의 삶을 갉아먹을지라도 결국 자신들의 선택이며, 이는 곧 매 숏의 프레임이 매 순간 작가적 선택의 연속이라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반면, 뉴로에게 있어 방은 안온한 거처에 대한 염원으로 다가오기에, 그에게 영화의 프레임은 저 깊은 어둠 안에 묻힌 그의 검은빛 얼굴조차도 기어이 약간의 조명에 힘입어 클로즈업으로 끌어안고 마는 따스한 품과도 같으며 마약이 그러하듯 그의 도피처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뉴로가 지나쳐간 수많은 폐가와 주민들이 떠나야 하는 폰타이냐스라는 공간이 그러하듯, 프레임이 마련한 영화라는 방은 결코 영원히 누군가를 품어주지 못한다. 영화 내내 수도 없이 등장하는 철거 현장의 모습처럼 결국 방의 벽과 지붕과 문과 창은 무너질 것이고 영화의 프레임은 암전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 페드로 코스타는 이처럼 계속해서 벽과 지붕과 문과 창으로 구획된 '방'과 프레임으로 구획된 '영화'의 의미를 전복시켜 가며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방 혹은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 방 혹은 영화는 당신에게 안온한 거처로 기능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로부터 탈주한다고 하여 그 프레임 밖의 세상이 무언가 더 나은 것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 프레임 안에 갇혀 스스로를 갉아먹기로 결정한 스스로의 선택과 그 프레임에 누군가를 가두거나 그 프레임으로부터 누군가를 내쫓기로 결정한 외부의 압력 앞에 과연 무엇이 낫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이는 아마 독재로부터 혁명을 통해 민주화의 길로 나아갔으나 혁명 이후로도 한동안 진통을 겪어야 했고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담보잡아야 했던 포르투갈의 역사와도 겹쳐 있는 질문들이리라. . 영화의 마지막 세 숏은 이 질문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그 세 숏 중 첫 번째 숏. 프레임 내화면에서 반다와 지타가 방안에서 마약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외화면에서 생을 상징하는 듯한 아이의 소리와 생의 공간을 파괴하는 철거 현장의 소리가 동시에 들려오고 있다. 방안이자 프레임 내부에서 스스로의 생을 마약으로 갉아먹고 있는 와중에, 방 밖이자 프레임 외부에도 생과 사가 병존하고 있다. 안과 밖, 어디가 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순간, 반다는 양배추를 팔기 위해 방 밖, 프레임 밖으로 나서고 지타는 방 안, 프레임 안에 남는다. 두 개의 다른 길. 반다가 방밖으로 나선 뒤, 아이가 철거의 잔해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들어온다. 다시 말해, 방안의 일부가 방밖으로 나가는 순간 방밖이자 프레임 외부의 생(아이 소리)과 사(철거 소리)의 흔적이 한꺼번에 방안으로 물밀듯 쏟아져 들어온다. . 그리고 숏이 바뀌면, 프레임의 내부는 더 이상 방안이 아닌 방밖의 거리이다. 거리에는 동물의 사체가 걸려 있다.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간다. 프레임의 외부에서는 더 이상 철거 소리는 들리지 않고, 각자의 공간 안에 있을 주민들의 활기찬 일상의 소리들만이 들린다. 이전 숏에서 반다가 방밖으로 나서고 아이가 철거 잔해와 함께 들어온 순간 이루어진 전복에 이어, 이번 숏에선 프레임 내부가 곧 방의 바깥이 되고, 프레임 외부가 곧 방의 안이 되며, 프레임 내부엔 동물의 사체와 산 사람이 공존하고, 프레임 외부엔 일상의 소리가 뒤섞여 들려오며, 다시금 총체적인 전복이 이루어진다. . 다시 숏이 바뀌면 프레임 내부엔 암전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숨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삶을 상징하는 숨소리인가 아니면 죽음으로 향해가는 마약 흡입 소리인가? 이 소리는 프레임 내화면에서 나는 소리인가 아니면 프레임 외화면에서 나는 소리인가? 암전에서는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아예 모든 질문들이 무의미해져 버린 또 한 번의 전복의 순간이다.
춘백
3.5
더럽고 누추한 현실의 무게에 함께 질식할 것만 같은 극한체험의 필름. 연결성이 약하고 정제되지 않은 흩뿌려진 씬들이 갑갑하고 어지러운 빈민가의 모습과 어우러져 기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로즈버드
5.0
영화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존재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카메라는 불을 켜지 않은 채, 빈 공간만을 응시한다.
Hoon
5.0
내 삶, 방에다 새겨두고 가세요. 다소 눅눅한 이름일거예요.
상맹
4.0
어우 보기 너무 힘들다. 단순히 내러티브와 시간때문이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저 세계에 갇히게 하는 색조와 화면비 그리고 고정 카메라의 그 프레임 그리고 롱테이크가 몰입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 배경 사이에서 하염없이 반복되는 방을 철거하는 소리. 콜록이는 기침과 중얼거림. 빈곤 포르노라고 하기엔 주인공들을 착취하지도 않고 담담히 보여주기만 하는 다큐와 극영화 어디 사이에 위치한 슬로우 시네마. 지구 반대편에서 적당히 먹 고 사는 또 절대 공감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문화자본 가득한 룸펜 프롤레탈리아가 왜 연민이 아닌 불안감을 느끼는가. 그게 이 영화의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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