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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2016 ・ 드라마 ・ 미국
평균 ★3.8 (17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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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light
2016 · 미국 · 드라마
1시간 51분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출연/제작
배리 젠킨스
감독
트레반테 로즈
주연 | 블랙
에쉬튼 샌더스
주연 | 샤이론
알렉스 R. 히버트
주연 | 리틀
마허샬라 알리
조연 | 후안
안드레 홀랜드
조연 | 케빈
자렐 제롬
조연 | 16살 케빈
제이든 파이너
조연 | 9살 케빈
나오미 해리스
조연 | 폴라
별점 그래프
평균 ★3.8
(17만명)
코멘트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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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빈
5.0
시선과 선율이 나르는 감정의 빛에 선명히 물든다. *이하 스포일러를 포함한 해석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세 파트로 구성되고, 파트마다 프롤로그가 있다. 파트 사이에는 검은 화면이 등장한다. 검은 화면의 중앙 상단에는 점멸하는 원의 형상이 보인다. 그런데, 리틀과 샤이론 사이에서는 청색점멸이, 샤이론과 블랙 사이에서는 적색점멸이 나타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후안은 물이고, 케빈은 불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장면은 후안이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는 장면이다. 해변의 물속에서 후안은 리틀을 안고, 삶의 변두리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그에게 절대 놓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 순간 찾아온 안정감은 샤이론에게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얼마나 큰 출렁임이 마음속에 일었을까. 견디기 힘든 순간들마다 샤이론은 물에 기대게 된다. 자신 보다 덩치가 큰 학생들 앞에서 성기를 노출해야 했던 사건 후에, 샤이론은 냄비에 물을 끓이고 그것을 힘겹게 들어 욕조에 부은 후 거품목욕을 한다. 구타를 당한 후에도, 악몽을 꾼 후에도 얼음물에 얼굴을 담근다. 케빈의 성교 장면을 목격하는 꿈에서나 케빈의 식당에서는 파도소리를 듣는다. 케빈의 집에서는 물을 달라고 한다. 샤이론의 무의식 속에서 물은 후안이다. “물 좋아해? 불도 소개시켜 줄게.” 해변에서 케빈이 샤이론에게 한 말인데, 정말 그렇게 한다. 이날, 케빈은 샤이론을 뜨겁게 만져준다. 샤이론의 마음에 불이 된다. 격정이 된다. 사랑이 된다. 물이 안정이라면, 불은 요동이다. 케빈은 불을 쓰는 직업을 갖는다. 케빈의 집에서 가스 불은 클로즈업 샷에 담긴다. 불은 케빈의 상징이다. 다시 한 번, 후안은 물이고, 케빈은 불이다. 물은 푸르고, 불은 붉다. 결국 리틀과 샤이론 사이에는 후안이, 샤이론과 블랙 사이에는 케빈이 빛을 내고 있는 셈이다. 빛은, 그리움이 아닐까. 그렇다면 두 번의 '블랙' 화면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관객은 볼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리틀과 샤이론은 후안을, 샤이론과 블랙은 케빈을 아주 많이 그리워했다고.
스포일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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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4.5
잔물결 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으리. (헨리 데이빗 소로)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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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4.0
리틀. 샤이론. 블랙. 어느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하려는 세상을 향하여. (※ 스포주의) 주인공이 흑인 게이라기에 마이너의 정체성 인정을 격렬히 외치는 영화일 줄 알았다. 그러나 <문라이트>는 자못 덤덤히, 그들도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영화를 지배하는 푸른색의 이미지는 일의적으로 설명되기 어려워 보인다. 최악의 순간에도, 최고의 순간에도 샤이론의 근처를 지키는 푸른색은 마치 양가적인 인상을 준다. 사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입체적이고, 다면적이다. '나'를 하나의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예컨대 후안이 마약상인 건 분명하지만, 샤이론(편의상 주인공 이름은 샤이론으로 이하 통일)에게 보였던 정을 생각하면 마약상은 그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단어다. 샤이론 역시 그렇다. 어릴 적 리틀이라 불리며 따돌림 당하던 유약한 모습도 그의 것이지만, 마약상이 되어 도리어 남을 억압하는 모습도 그의 것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두 모습 모두 샤이론이듯, 어느 하나만으로는 샤이론을 정의할 수 없다. 나아가 흑인과 게이라는, 마치 샤이론을 충분히 정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두 가지 정체성 역시 그라는 존재 자체를 완벽히 설명해주진 못한다. 이처럼 <문라이트>는 어떤 이미지들의 다면성을 말하려는 것만 같다. i.흑인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등장인물 모두가 흑인이라는 점이다. 지나가는 단역조차 대부분 흑인으로 백인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피부색에 관해선 일절 언급이 없다.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큼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두고서 경종을 울릴 법하지만 결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은 없다. 물론 지역적인 이유를 말할 수도 있겠으나, 여타 영화를 생각해보더라도 이 같은 인종적 풍경은 특기할 만하다. 즉 <문라이트>에서 흑인은 (특별하게 부각하거나 다뤄야 하는) 소수자, 타자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를 지배하는 또 다른 다수이자 주체다. 단순히 백인의 대립항처럼 여겨지던 그동안의 인종 영화와 달리, <문라이트>의 시공간은 오롯이 흑인의 것이다. 여기서 피부색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컨대 샤이론이 어릴 적 리틀이라 불리며 놀림을 당하던 것 역시, 그의 신체적 유약함 혹은 성 정체성과 관련해서였지, 결코 피부색 때문은 아니었다. 한편 마약상이나 약물 중독자와 같이, 어쩌면 흑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라 할 수 있는 모습들이 영화에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비록 샤이론의 엄마는 약물 중독자였으나, 또 다른 의미에서 엄마라 할 수 있는 테레사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드러낸다. 또한 샤이론은 마약상이 되었지만 케빈은 아니었으며, 샤이론이 마약상이 되고 만 것도 후안이나 엄마, 혹은 어린 시절의 따돌림 경험 등이 가까운 이유지, 결코 그가 흑인이라서 그렇다고는 일축하기 어렵다. 영화는 그들의 개인적인, 어쩌면 인종적인 고통을 파헤치거나 전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종적인 문제의식, 최소한 흑인이라는 특이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문라이트>의 미덕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구태여 흑백의 대립을 내세우는 정치적인 내러티브를 갖지 않더라도 인종은 '문제적'이다. 모두가 흑인인 영화 속에서 룰을 만드는 것도, 그 룰에 의해 배척 당하고 희생 당하는 것도 모두 흑인의 몫이다. 삶이 긍정적으로 흘러가든 아니든, 모두 피부색을 탓할 순 없다. 오직 그들만의 세계, 삶의 가능성을 꾸려준 <문라이트>는 주체/타자나 가해/피해의 이분법적인 처사를 넘어 모두를 양가적으로 아우르며, '검은색 피부'라는 단면에 갇히지 않는다. <문라이트>는 흑인(만)의 것인 동시에 흑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압축될 수 없는 이들의 것이다. ii.게이 어쩌면 게이라는 점은 샤이론의 삶을 설명하는데 가장 중요한지도 모른다. 어릴 때 모진 차별을 겪었고, 그로 인해 소년원을 가게 되었고, 또 그로 인해 마약상이 된 것처럼, 그의 성 정체성은 삶을 원천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게이라서 마약상이 되었나' 하고 바꿔 묻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가 흑인이라 마약상이 된 건 아니듯 게이라서 마약상이 된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3부에서 샤이론은 마약상으로 완벽히 적응한 듯 보인다. 부하에게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가르침을 전수하고, 후안의 말처럼 습관적으로 출입문이 보이는 방향으로 앉는 것처럼. 이에 흑인 게이라는 설정은 자못 아이러니하다. 흑인이라는 사회적 타자와 더불어 성 소수자라는 또 다른 타자를 불러온 것일 테나, 영화가 흑인의 타자성을 모른 체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게이라는 설정이 다시금 차별을 위한 장치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흑인의 피부를 말하지 않음에도 우리가 어떤 인종적인 기획을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에 흑인과 달리 성 소수자는 여전히 사회의 타자로만 머물게 하는 인상은 있으나, 흑인-마약상-게이를 포개어 놓으면서 (아이러니로 가득한) 편견 그 자체를 곱씹게 만드는 점은 특별하다. 이야기가 잠시 겉돌았지만, 결국 게이라는 정체성도 샤이론에게 중요하긴 하나 그것만으론 그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게이 역시 유약한 남성성이라던가 하는 통념의 이미지로 모아지지 않는다. iii.케빈 케빈은 샤이론을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어떨 땐 리틀로, 어떨 땐 샤이론으로, 또 어떨 땐 블랙이라고 부른다. 이름이란 그 사람을 지칭하는, 즉 그 사람 일반을 규정하는 말이다. 결국 케빈은 샤이론의 다양한 모습들을 모두 바라봐주는 인물인 셈이다. 샤이론의 마음 한 켠엔 그런 케빈이 언제나 존재했나 보다. 10년 만에 걸려온 케빈의 전화에 몽정을 하고, 결국 그에게 달려갈 정도니 말이다. 프레임을 가득 메운 (정면 클로즈업의) 케빈의 얼굴은 그야말로 샤이론 마음 속 풍경일 것이다. 케빈 외엔 누구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샤이론은 그간 사랑이라 할 만한 걸 하지 않은 듯 하다. 이는 단순히 게이라는 성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랑이란 감정 자체를 외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케빈을 향한 감정이 생겨나고 만다. 한편 케빈 역시 독특하다. 어릴 적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고도 샤이론과 성적인 접촉을 하고, 이후 다시 그는 이미 아이가 있을 정도로, 즉 이성애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또 다시 샤이론과 성적인 늬앙스를 풍긴다. 그럼 케빈은 이성애자인가, 동성애자인가, 아니면 그저 양성애자라고 쉽게 말해 버리면 될까. 결국 무용한 질문이 될 수밖에 없다. 케빈의 성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샤이론의 삶을 하나의 이름과 이미지로 정의하려는 것만큼이나 어렵고도 무의미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변화의 순간이 찾아오고, 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또한 굳이 변했다고 말하기에 앞서, 그만큼 양가적이고 다면적인 게 사람이다. 리틀도, 샤이론도, 블랙도 모두 한 사람의 이름이자 이미지이다. 단지 시간에 따라서, 주변인에 따라서 다르게 불렸을 뿐이다. 태양 아래선 검은 피부라 할 지라도 달빛 아래선 푸른 빛을 띠듯,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람은 끊임없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후안은 언젠가 자신이 누군지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건 단순히 흑인으로서, 혹은 게이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 내가 누구일 것인가, 어떤 내가 될 것인가에 관한 모든 결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약상으로서의 삶을 이미 한 번 선택했던 샤이론은 케빈과의 재회로 또 다시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할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이는 케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며,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그들이 샤이론과 케빈이라는 점은 변치 않는다. 지우고 싶은 리틀의 삶도, 마약 중독자인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샤이론의 삶도, 언제나 마음 속의 연인이었던 케빈이 붙여준 블랙의 삶도, 다시금 선택하게 될 새로운 삶도, 오롯이 그의 것이다.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필요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다. 세 얼굴이 합쳐져 하나의 얼굴을 이루는 포스터처럼 모든 모습이 합쳐져야 비로소 나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흑인과 게이라는 점은 무수한 나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_끝으로 사실 <문라이트>는 지극히 멜로드라마적인 영화다. 그동안 백인 주인공들이 누렸던 무수한 멜로의 서사마냥 <문라이트>는 흑인 주인공으로 시적인 멜로의 풍경을 완성한다. 단지 조금 가난하고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뿐이다. 요컨대 영화는 소외 계층으로서, 일종의 사회적인 마이너로서 소년의 특정한 정체성을 내세우기보다 그저 성장 영화이자 로맨스 영화로서 인간 자체의 입체적인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올바름이란, 단순히 차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무차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에 피부색의 문제를 말하지 않고도 (마치 흑인이라는 인종의 정상성을 전제한 채로) 서사를 완성함은 그 지향이 담긴 지점인지도 모른다. 물론 <문라이트>는 성 소수자 문제를 끌어 당김으로써 여전히 차별을 다루지만, 꼭 동성애 이슈에 국한하지 않고 확장될 수 있는 영화의 감흥은 굳이 특별한 것인양 말하지 않아도 관심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를 영화 스스로가 알기 때문일 것이다. <문라이트>는 뒷골목 흑인 게이를 내세움에도 소재적인/감상적인 편협에 머물지도 않을 뿐더러, 그를 주체로서 돋우며, 도리어 정체성과 주체성이라는 보편적인 화두를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스포일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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