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윤4.0고다르의 도덕적, 윤리적인 견해는 철학적, 정치적 견해로 퍼져나간다. 영화 안/밖의 경계는 무너지고 인물은 서로에게 말을 걸며 다소 일정한 서사구조 안에서 폭주하고, 프랑스의 모든 역사와 사회에 대한 풍자 속에서 이 블랙코미디는 거대한 아이러니로 마무리 된다.좋아요35댓글0
다솜땅3.5해학극 같아 보이고 변태적, 블랙코미디로만 보기엔.. 해학안에 농염하고 더러운 것들에 대한 풍자들이 즐비하다! 보고 있으면 빠져들고, 빠져들어 가다보면 조금 지루해질 수도…. #24.9.13 (628)좋아요21댓글0
상맹5.0나 고다르가 이제 좋아진 걸수도…!? 이렇게 하고 싶은 말 영화로 다 구토해내는 그대 진짜 멋있는 걸지도? 다른 영화들보다 픽션인 척 안하고 그냥 뻔뻔하게 내 맘대로 할래가 진짜 멋진지도? 아무리 사회 혁명 맑스 얘기해도 1세계 지식인으로서 헛소리와 무력함 그리고 그 비루함으로 보여주며 말하는 게 진짜 진심일지도?좋아요17댓글0
토끼나루5.0당신은 고다르를 어디까지 보셨습니까? 또는 당신은 고다르의 어디에 머물러 계십니까? 고다르는 계속해서 도망갔고, 이 추적의 과정은 교양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무감과 영화를 보는 내 자신을 시험하는듯한 불편함 사이에 놓여져 있었다. 누구나 고다르의 영화 앞에선 탕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고다르의 영화들은 각자마다의 집이 있고 어느 집에 깊숙이 거한다는 건 다른 집의 탕자가 된다는 뜻이다. 영화사의 고다르와, 영화작가 고다르 사이의 간극을 메꾸려 노력할수록 허사가 되고, 심지어 이미 영화읽기가 종료되었다며 방심한 틈을 타고 새로운 21세기의 비평들이 고다르의 지나간 영화들 옆으로 도착했다. 그때그때마다 질문의 성격이 달라졌고, 특히나 영화사의 교양(또는 영화 이전의 예술에 대한 교양)을 요구하는 순간 고다르에게 도착하기 위해 수많은 행성을 경유해야 했다.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고다르 없이도 영화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빈정거림. (그럼에도 영화사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여전히 빈정거린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고다르가 없었어도 누군가의 불편한 사랑은 영화사에 자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만큼 많은 투정을 유발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고다르와 접촉한 이들의 마음이 시기이건, 혐오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마다의 역쇼트다. 때로는 거기서부터 영화에 대한 낯선 사유가 시작된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예술가가 죽어도 작품이 남지요. 하지만 고다르의 육신은 영화에서 유령처럼 떠돌 것 같다. 이미 그 이전에도 영화들 사이로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래서 고다르의 태도, 빈정거림, 투쟁, 그리고 사랑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당신 곁을 맴돌 것이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일련의 작업들은 마치 그 유령의 살아생전 마지막 기억인것만 같다. 이제 당신이 고다르 바깥에서 고다르를 기억해야할 순간이다. 당신의 뇌에서 마지막으로 상영될 당신의 편집본, 그 필름 내러티브에 고다르의 자리는 어디쯤에 있습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는 <주말>에서 고다르가 빈정거리며 지켜보는 그 어깨동무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저는 거기에 머물러있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당신, 혹은 더 멀리까지 나아간 고다르를 보고온 당신과 함께, 어쩌면 이후의 100년을 장담할 수 없고 흔들릴지 모를 (이 영화라는 이름의) 애증의 시간을 견뎌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차에는 누가 탑승하셨나요? 옆자리의 그 사람은 당신을 어떻게 괴롭히던가요. 지금 여기에 도착한 당신 곁에서 흐르는 영화 혹은 비평의 나레이션은 삶의 쇼트 안에서 당신이 어떻게 기능하길 원하고 있습니까? 또는 그것과 어떻게 충돌하고 계십니까?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건 대지가 흔들릴때 당신의 부르심이 저를 당신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믿겠습니다. 이제 당신이 고다르가 일으켰던 지진을 일으킬 차례입니다. 그것이 대지에 두 발을 붙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생자만이 할 수 있는 투정이자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보내는 추도문이자, 축례를 여기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오늘 작게나마 고다르가 기억했던 이름들을 속삭여볼 생각입니다. 그리피스.. 미조구치.. 그리고..좋아요17댓글0
Ordet5.0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때려부수는 고다르의 부조리 코미디극. 지금 봐도 하나도 진부하지 않고 신선하고 새롭다. <경멸>이 고다르의 안토니오니적인 영화라면 <주말>은 고다르의 브뉘엘적인 영화라고 할 만하다.좋아요17댓글0
최플린
4.5
Grand Theft Auto - by 고다르
Dh
5.0
쓰레기 더미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른다 시종일관 뼈때리는 고다르옹 #붉은색 페인트 #하얀 모닥불 #cabrón #모순
재윤
4.0
고다르의 도덕적, 윤리적인 견해는 철학적, 정치적 견해로 퍼져나간다. 영화 안/밖의 경계는 무너지고 인물은 서로에게 말을 걸며 다소 일정한 서사구조 안에서 폭주하고, 프랑스의 모든 역사와 사회에 대한 풍자 속에서 이 블랙코미디는 거대한 아이러니로 마무리 된다.
다솜땅
3.5
해학극 같아 보이고 변태적, 블랙코미디로만 보기엔.. 해학안에 농염하고 더러운 것들에 대한 풍자들이 즐비하다! 보고 있으면 빠져들고, 빠져들어 가다보면 조금 지루해질 수도…. #24.9.13 (628)
상맹
5.0
나 고다르가 이제 좋아진 걸수도…!? 이렇게 하고 싶은 말 영화로 다 구토해내는 그대 진짜 멋있는 걸지도? 다른 영화들보다 픽션인 척 안하고 그냥 뻔뻔하게 내 맘대로 할래가 진짜 멋진지도? 아무리 사회 혁명 맑스 얘기해도 1세계 지식인으로서 헛소리와 무력함 그리고 그 비루함으로 보여주며 말하는 게 진짜 진심일지도?
토끼나루
5.0
당신은 고다르를 어디까지 보셨습니까? 또는 당신은 고다르의 어디에 머물러 계십니까? 고다르는 계속해서 도망갔고, 이 추적의 과정은 교양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무감과 영화를 보는 내 자신을 시험하는듯한 불편함 사이에 놓여져 있었다. 누구나 고다르의 영화 앞에선 탕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고다르의 영화들은 각자마다의 집이 있고 어느 집에 깊숙이 거한다는 건 다른 집의 탕자가 된다는 뜻이다. 영화사의 고다르와, 영화작가 고다르 사이의 간극을 메꾸려 노력할수록 허사가 되고, 심지어 이미 영화읽기가 종료되었다며 방심한 틈을 타고 새로운 21세기의 비평들이 고다르의 지나간 영화들 옆으로 도착했다. 그때그때마다 질문의 성격이 달라졌고, 특히나 영화사의 교양(또는 영화 이전의 예술에 대한 교양)을 요구하는 순간 고다르에게 도착하기 위해 수많은 행성을 경유해야 했다.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고다르 없이도 영화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빈정거림. (그럼에도 영화사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여전히 빈정거린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고다르가 없었어도 누군가의 불편한 사랑은 영화사에 자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만큼 많은 투정을 유발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고다르와 접촉한 이들의 마음이 시기이건, 혐오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마다의 역쇼트다. 때로는 거기서부터 영화에 대한 낯선 사유가 시작된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예술가가 죽어도 작품이 남지요. 하지만 고다르의 육신은 영화에서 유령처럼 떠돌 것 같다. 이미 그 이전에도 영화들 사이로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래서 고다르의 태도, 빈정거림, 투쟁, 그리고 사랑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당신 곁을 맴돌 것이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일련의 작업들은 마치 그 유령의 살아생전 마지막 기억인것만 같다. 이제 당신이 고다르 바깥에서 고다르를 기억해야할 순간이다. 당신의 뇌에서 마지막으로 상영될 당신의 편집본, 그 필름 내러티브에 고다르의 자리는 어디쯤에 있습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는 <주말>에서 고다르가 빈정거리며 지켜보는 그 어깨동무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저는 거기에 머물러있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당신, 혹은 더 멀리까지 나아간 고다르를 보고온 당신과 함께, 어쩌면 이후의 100년을 장담할 수 없고 흔들릴지 모를 (이 영화라는 이름의) 애증의 시간을 견뎌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차에는 누가 탑승하셨나요? 옆자리의 그 사람은 당신을 어떻게 괴롭히던가요. 지금 여기에 도착한 당신 곁에서 흐르는 영화 혹은 비평의 나레이션은 삶의 쇼트 안에서 당신이 어떻게 기능하길 원하고 있습니까? 또는 그것과 어떻게 충돌하고 계십니까?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건 대지가 흔들릴때 당신의 부르심이 저를 당신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믿겠습니다. 이제 당신이 고다르가 일으켰던 지진을 일으킬 차례입니다. 그것이 대지에 두 발을 붙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생자만이 할 수 있는 투정이자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보내는 추도문이자, 축례를 여기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오늘 작게나마 고다르가 기억했던 이름들을 속삭여볼 생각입니다. 그리피스.. 미조구치.. 그리고..
Ordet
5.0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때려부수는 고다르의 부조리 코미디극. 지금 봐도 하나도 진부하지 않고 신선하고 새롭다. <경멸>이 고다르의 안토니오니적인 영화라면 <주말>은 고다르의 브뉘엘적인 영화라고 할 만하다.
JH
3.0
유쾌한 화풍의 추상화에 인위적인 정치 선전물을 섞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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