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天気の子
2019 · 애니메이션/드라마/판타지/로맨스 · 일본
1시간 52분 · 15세
"이제 비는 그치고, 우리의 세상이 빛나기 시작할 거야” 비가 그치지 않던 어느 여름날, 가출 소년 ‘호다카’는 수상한 잡지사에 취직하게 되고 비밀스러운 소녀 ‘히나’를 우연히 만난다. “지금부터 하늘이 맑아질 거야” 그녀의 기도에 거짓말 같이 빗줄기는 멈추고,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빛이 내려온다. “신기해, 날씨 하나에 사람들의 감정이 이렇게나 움직이다니” 하지만, 맑음 뒤 흐림이 찾아오듯 두 사람은 엄청난 세계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데… 흐리기만 했던 세상이 빛나기 시작했고, 그 끝에는 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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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of "Weathering with You"

The Taste of Kindness

Welcome to Senpikan

Voice of Wind

Voice of Wind (Movie Edit)

Saving Hina


이동진 평론가
2.5
맥없이 재활용하는 전작의 모티브들, 심지어 단점까지도.
주 영 화
1.5
약자의 희생으로 도쿄의, 일본의 정상성이 지켜진다는 비정상성을 고발하는 듯 하면서도 그 부조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영화.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또, 또, 또 다시 지겹게 언급하는 거지만 극 중 여성인물의 신체가 성적 대상화가 될 필요는 이 영화에서 단 1도 없다. 심지어 <날씨의 아이>는 더욱 위험한 선을 넘는다. 바로 미성년자 여자아이의 신체까지도 성적대상화 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그게 아니라고? 괜한 것 가지고 꼬투리 잡지 말라고? 안타깝게도 ‘그렇고 그런’ 장면 몇 개가 이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의식에 완벽한 후진기어를 넣는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물론 많은 여성들이 성노동에 빠져들고, 가출한 청소년은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며,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사회의 골칫거리로 밖에 존재하지 못하는 이곳 도쿄에서 나는 세 명의 아이가 비내리는 거리를 함께 걸을 때 뭐랄까 작은 연대의 희망을 느꼈다. 어른 여럿이 아이 하나에게 총을 겨누고 수갑을 채우고 결국 그 아이가 자살과 맞먹는 추락을 감행할 때도, 나는 그 아이들이 부조리한 어른 사회에 맞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결말에서 호다카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켰어!” 라고 외칠 때 나는 밀려오는 회의감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뭐가 변했다는 거니? 화자는 아이지만 결국 속 시커먼 어른 남성들이 만들었을 게 뻔한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그저 작화의 아름다움과 음악의 웅장함에 취해 두 시간을 ‘잘 보냈다’며 자위하면 그게 니가 말한 변화인 거니? 정말로 ‘인간제물’이 되는 건 현실의 일본 여자 아이들이 될 거라는 소름끼치는 생각에 곱씹을수록 이 영화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Your body is a battleground”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속 캐치프레이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몇 달 후면 2020년이 되는데 아직도 영화 속에서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는지에 대해 비판하려니 말하는 내가 먼저 질린다. 그럼에도 침묵은 부조리를 용인하므로, 나는 또 다시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한다.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내 가슴 만져봐”하며 섹스어필 하고, 여자 주인공의 몸을 훑으며 ‘TV에 나올 몸매는 아니다’라고 읊조리며, 남고생이 여자의 가슴을 뻔히 훔쳐보려는 것을 단순히 사춘기 때의 치기 정도로만 치부하려는 이 익숙하고도 교묘한 혐오야말로 절대로 그치지 않을 저주받은 장마일 것이다. 화려한 볼거리에 현혹되지 말며, 익숙한 것에 속지 마라. <날씨의 아이>를 비롯한 일본 애니가 당신들의 머릿속을 어떻게 워싱하는지 똑바로 자각해라.
Flan
2.0
매번 이름을 그렇게 극적이게 불러야 직성이 풀리나싶다.
박찬현
4.0
※다회차 관람 추천 신카이 마코토, 이하 신혜성 감독의 열혈 팬인 나에게는 나의 기대와 곽광을 한 몸에 받을 수 받게 없는 위치에 놓여진 차기작이였다. 영화 날씨의 아이에 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우선적으로 영화에 대한 평가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이 날씨의 아이에서 하고 싶은 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한다. 1. 개인적 해석 신카이 마코토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은 대중들에게 찬반이 갈리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첨언했는데 그 말은 사실대로 이루어졌다. 우선적으로 나라의 배경이 다른 한국에서 어쩌면 이번 작품은 개연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최근들어 일본의 동향은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희생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사회의 경향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명확하게 가난해졌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돈이 돌지 않는다. 라는 신카이 마코토의 인터뷰가 있다. 작중의 어른들과 도쿄의 모습은 아무렇지 않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표현되지만 실제로 작중에 비치는 도쿄의 모습은 넷카페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호다카와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한 히나의 모습이 현재 일본 젊은층의 현실이고 일본도 정규직 비정규직의 격차는 천차만별이며 나츠미가 필사적으로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다는 그런 모습이 일본의 젊은 세대가 직면한 현실이다. 일본의 장기간의 경제 불황, 방사능의 지속적인 유출 등 여러 사회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기성 세대가 신세대의 젊은층에게 문제를 그대로 전가하면서 그러한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들을 영화 속 그치지 않는 '비'로 표현해내지 않았나 싶다. 흐린 날씨를 개어지게 하는 행위는 신세대들이 기성세대가 창조해낸, 대신해서 값을 치뤄주길 원하는 작금의 문제들을 희생하여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과 행태와도 같다. 맑음 소녀인 히나가 비를 그치게 하면서 흐리고 꺼무잡잡하며 쟂빛의 세상을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이며 평화롭고 청명하며 온후한 세상을 향유하는 것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으로 갖가지 재해(기성세대의 문제)를 연명하고 결국에는 한계에 귀착하여 계속되는 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인신공양인 제물로 귀결되면서 희생을 강요하는 비극에 당도한다. 날씨의 아이 자체는 지금까지의 신카이 마코토 작품과 같이 세카이계 장르물로서 이전의 너의 이름은이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와 같이 다른 시공간에 위치한 남녀를 두고서 이루어지는 심리적 거리나 공간적 거리를 초월한 사랑을 중점으로 주제를 잡는다. 초속5센치미터는 두 남녀 주인공의 공간적 거리는 가까웠지만 마음의 거리는 서로 좁혀지지 않은 채 멀어져 사랑을 이뤄내지 못했고 언어의 정원에서는 나이차를 극복하지 못한 채 가능성만을 시사하고 열린결말을 맺었다. 그리고 전작들은 작중의 도쿄나 배경의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든 적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혀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한 점이 사뭇 전작들과 비견되는 요소인데, 너의 이름은에서 이러한 자연 재해나 상실의 아픔을 딛고 함께 운명에 저항하자 라는 주제의식이 강했다면 이 작품은 그저 내버려 두자, 흘러가는 대로 운명에 순응해서 세상의 형태가 변혁해가는 것을 관조하자는 염세주의적인 시선으로 변모했다. 그동안 일본의 사회상이 어떻게 변형되어 갔는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가치관과 사회를 보는 사회상이 어떻게 변주되었는지 드러나는 지점이다, 마치 이전 작품들과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다. 어른들과 기성 세대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할 바에야 그들의 강요와 잣대에 저항하고 몸부림친다는 것에서 주제 의식과 감독의 의중이 변천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너의 이름은에서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이상 개인의 영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했음을에 낙관적으로 관망하던 신카이 마코토가 비관적인 시선으로 변색된 이 작품에서는 기성세대에 대한 조소까지 엿보이기 까지 한다. 2. 인물들에 대해 호다카나 히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사연들이 소품이나 대사로서 간접적으로 묘사되어지는데(스토리텔링이 미흡하거나 개연성의 허점이 드러나기도 한다는 반증) 상처들, 호밀밭의 파수꾼을 보아할 때 고립되어진 섬 생활에서 가정 불화나 마찰로 인해 파생되는 외로움이나 고립감에 사춘기 나이 때의 반항심과 충동적인 생각으로 가출을 마음먹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히나 또한 초반부에 병중에 있는 어머니가 나오는데 어머니의 팔찌를 초커로 만들어 항상 착용하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후반부에 제물로서 저항하고 자신의 길과 생각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호다카에 의해 구원되어 지고 비로소 초커가 깨진다. 초커라는 것은 포박의 의미나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거나 묶여 주체적으로 본인의 의지대로 기를 펼 수 없을 때 많이 사용되는 도구인데 맑음 소녀로서 하늘의 신에 공양하는 것의 의무를 포기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어머니의 악세서리가 물방울 모양이였는데 이를 두고 히나 일가의 가족들은 대대로 하늘의 섭리대로 공양하며 산제물이 되어지는 역할을 맡는 대리인 일가였을 가능성이 있다. 중반에 나온 신사의 할배가 이를 설명하는데 이전 시대부터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의 기도나 희망을 모아 이를 하늘에 전하고 희생을 함으로서 본래 맞이했어야 할 재해를 현재까지 억제해왔음을 간접적으로 설파했다. (히나의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한 이유 또한 이 이유를 근거로 들어 확증할 수 있다.) 그럼으로서 결론은 히나는 직간접적으로든 이러한 핏줄이나 운명에 봉착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스가라는 인물인데 이 인물은 호다카가 도쿄에 오면서 삭막한 분위기와 사람들의 인심에 혼란을 겪고 지쳐있을 때 그를 인자하게 도와준 유일한 인물이다. 이 인물은 호다카와 히나에게 온화하고 측은하게 대하지만 집중 호우의 재해를 멈추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한 명이 희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다수의 희생보다 개인 한 명의 희생이 중시되는 공리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인 즉슨 스가는 결국 어른이고 기성세대다, 어른으로서 나이가 드니 소중한 것의 순서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라고 말한다. 기성세대로서 누군가의 희생한다는 것의 암묵적인 규율에 그 또한 간접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호다카의 도주를 막고 자수를 권장하도록 설득하지만 결국 변심하여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비호하는데 타계한 아내가 남긴 딸아이의 양육권을 두고 갈등한다. 뜬금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호다카를 회유하기 위해 기존의 관념이나 경찰들이 호다카를 제압할 때 (성세대가 신세대를 억압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보며 불끈하며 어른들이 아이한테 무슨 짓이냐며 일침을 가한다. 그 때 결론적으로 호다카와 히나같이 앞으로의 미래를 주역으로 살아갈 같은 처지의 '신세대'인 자신의 딸을 보며 희생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기성세대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스가 또한 기성세대임이 분명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동의해 왔던 희생에 호다카나 히나의 심정을 이해하고 처음으로 신세대의 입장에서 반발을 가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3. 총기에 대해여 총, 실제로 일본에서는 야쿠자 무리들의 군벌들이 도쿄에서 밀집되고 운집해있는 광경이 목도된다. 총이라는 물건의 상징은 어른들의 폭력의 최상위 수위에 준한다. 많은 사람들이 총기를 휴대하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는데 체호프의 총이라고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가 정립한 것으로 1막에서 총을 등장시켰다면 3막에서는 쏴야한다. 안 쏠거면 폐기하라는 내용이다. 총기를 왜 등장시켰을까? 하는 의문을 쫓아가다 보면 괜히 넣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른은 아이를 무시하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더 낮으니 아래로 본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소품적인 장치로서 작용하기도 하지만 이 총은 작중에서 두 번 발포되는데, 한 번은 호다카 본인을 땅바닥 아래로 눕히며 구타하는 어른에게 충동적으로 발포한다. 이전의 가정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나 상기되는 재현으로 순간적으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또한 '어른'에 의해 일어난다. 두 번째로는 희생을 강요하기 위해 어른들의 포위에 구석으로 몰릴 때 (스가에게 발포하기는 하지만) 총을 든다. 호다카의 캐릭터성은 순수인 것은 작중에서 예측가능한 것을 고려했을 때 순수한 아이를 총까지 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총이라는 물건 자체는 자신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의견은 묵살하며 자신의 발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에 대한 저항이라는 상징이다. 결론적으로 호다카는 위해를 가하기는 했지만 아무에게도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총을 내버리고 도망가기에 이른다. 어른들의 폭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총으로 어른인 그들에게 저항한다, 꽤나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해 볼만 하지 않을까? 4. 비에 대해여 영화 전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칠 줄 모르는 비라는 존재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기성세대가 배출해낸 치부가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렇게 되면 흥미로워 지는데 비는 하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늘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다시는 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기도 하다. 치부의 형상화인 비가 도쿄에 그치질 않고 계속해서 퍼붓는다.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기성세대의 치부가 히나의 기도(신세대의 노력)을 통해 불가능하고 불가항력적인 치부라는 이름의 비를 하늘로 돌려보낸다. 4. 영화 본론에 대해서 세계관 자체가 뚜렷하지 않고 맥거핀이나 설정 구멍으로 남아버린 것들이 많아서 불명확하지만 이렇게 보면 히나 일가 대대로 제물이 되면서 본래라면 이미 이행되어야 했을 재해를 억제해오는 무녀 일가에 대한 설정, 너의 이름은때부터 이어져 오는 샤머니즘적인 설화나 신화, 전설적인 구전을 통하여 서사를이끌어 나가는 주된 요소로 사용되어지는데 신카이 마코토는 이를 견고하게 구상하지 못했다. 물론 간접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풀어나가는 것도 좋다. 영화는 온전히 보여주는 시각적 이미지의 나열이니까. 그러나 세계관에 대하여 불친절해도 너무나 불친절하다. 감독 본인이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말과 메세지가 많은 것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 너무 과다한 설정들과 메세지 내포에 치중해버려 인물들의 감성이나 감정이 공감이 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전작인 너의이름은과 플룻이나 서사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도 있고, 비슷하다고 비판받을 이유야 없지만 너의 이름은과 같이 감정을 폭발시키는 클라이맥스의 감정 호소의 시간 배분이 부족하다. 전체적으로 기승전결의 구조는 뚜렷하지만 위기-절정의 임팩트나 여운이 20분 남짓이라 분량 완급 조절의 실패라고 확연하게 공언할 수 있다. 사실 너의 이름은 때도 우연에 치중한 서사 전개에서 지적을 받았지만 이번 날씨의 아이에서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고 개연성의 구멍을 감정의 호소로 타파하려고 하니 장면이 주는 여운은 짧고 공감하기에도 시간에 쫓겨 벅차다. 왜 제물로 바쳐져야 만 하는가? 구름 위의 세계에 대한 묘사나 신에 대한 장치는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일회성 소모품으로 활용되고 맥거핀으로만 남았다.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너무 빨라 그들의 심경을 집중하기 힘들다. 물론 풍경의 묘사나 빛을 십분 활용한 실제로는 보여줄 수없는 일상의 장면을 어느 것 보다 빛나는 한 폭의 예술로 사진을 찍고 그 위에 덧칠 하는 것 같은 경탄을 자아내는 영상 미학의 재능을 발휘한다. 비주얼은 장인의 경지에 이른지 오래다. 감독 신카이 마코토에게서 아름다운 비주얼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고, 누구나 인정하는 장인이다. 하지만 이제는 각본의 빈틈이나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어른의 시점에서 이들의 행위를 받아드리냐, 이해할 수 없냐의 차이를 두고 극명하게 평가가 갈린다. 어른의 입장에서 질풍노도의 전란을 겪고 있는 망상 가득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어른과 너희들의 감성과 운명에 저항하려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 어른이냐 아니냐에 따라 영화의 평가나 주제 의식 자체는 필연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뚱이에요
3.0
때깔만 좋은 '빛좋은 개살구.' - 뚝뚝 끊기는 서사. 그로인해 희미해진 메시지와 공감하기 힘든 각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 반대로 마코토답게 비주얼과 OST는 역대급을 자랑하는. 이걸 좋아해야하냐. 미워해야하냐.
백수골방
2.5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과 현실을 잘 구분하자
JH
2.0
논리와 행동거지에 모순이 있고 중요한 목적의식이 결여되니 성장 드라마인지 판타지 재난영화인지 분간이 안간다. 끝까지 힘주어서 주장하지만 끝끝내 와닿지 않는다. 2시간짜리 일러스트레이션과 음악감상.
Jay Oh
3.0
너와 함께인 오늘의 날씨: 괜찮음! 하늘로 치솟은 작화와 아이디어. 근데 스토리도 구름 위로 붕 떠버렸다. A visual force of nature, but otherwise a bit under the weather. + 선배님, 당신은 대체... + 오글주의보 발령. (오글경보까진 아님.) + OST 갑툭튀 느낌도 살짝. + 감독님, 각본가 필요하신가요? + 역시 비주얼은 황홀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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